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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마음 Dec 26. 2021

[집장이 그리운 날] 비릿함이 그리울 때


© congerdesign, 출처 Pixabay


딸이 멀리서 밥상을 스캔한다. 열무김치, 깻잎조림, 콩자반, 멸치볶음, 고추부각, 들기름 두르고 구운 두부, 된장찌개. 야채와 콩을 싫어하는 딸은 거실 찬 바닥에 누워 구시렁거린다. 최대한 불쌍한 척 비스듬히 웅크리고 누워 나를 힐끗 쳐다본다. 딸의 모습이 익숙하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딸의 속상함은 전혀 모른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어릴 적 식이의 모습을 딸한테서 본다. 태술 씨가 콩칼국시를 했을 때 속상하고 서러웠던 그때를. 딸도 심사가 서러울 것 같다. 투덜거리는 다 큰 딸이 귀여워 보이는 건 왜일까. 그 옛날 엄마 태술 씨도 콩칼국시에 투정하는 식이가 저리 보였을까.


태술 씨는 또 홍두깨를 들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칼국수 가게를 하나보다 할 정도로 칼국수 반죽을 자주 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콩칼국시를 끓였다. 국시는 국수의 사투리로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이 즐겨 먹어 ‘안동칼국시’로 알려지기도 했다. 요즘은 멸치, 다시마, 양파들 갖가지를 넣고 육수를 내어 칼국수를 삶지만 태술 씨는 특별한 요리 비법이 없다. 맹물에 국시와 얼갈이를 넣고 끓이면 끝이다. 그리고 시백 씨의 국시는 찬물에 휘리릭 한 번 헹궈 건진 후 칼국시를 끓였던 국물을 한 국자 얹어 준다. 식이는 도대체 그 국시의 맛이 뭔지 몰랐다. 아니 아예 입에 대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런 태술 씨의 칼국시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이가 또 있었다. 고향에서 면장을 하던 큰 외삼촌이었다. 외삼촌은 점심시간이면 직원들과 함께 누나 태술 씨의 칼국시를 먹으러 종종 왔다. 어린 식이는 생콩가루의 비릿한 맛의 그 국시를 먹기 위해 시간을 내서 오는 외삼촌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시백 씨는 면을 좋아한다. 특히 태술 씨가 한 콩칼국시는 매일 먹어도 질려 하지 않는다. 태술 씨의 칼국시 반죽에는 노란 생콩가루가 들어간다. 태술 씨는 여태 한 번도 밀가루만으로 국수 반죽을 한 적이 없다. 콩칼국시는 밀가루에 생콩가루가 1/7 정도 들어간다. 콩가루는 밀가루에 부족한 단백질도 보충하고 국수가 붇지도 않게 하며 구수한 맛을 보탠다. 하지만 식이는 생콩가루가 들어가 국시가 싫었다. 맛은 혀로 보는 게 아니라 냄새로 먼저 맡는다고 하지 않든가. 식이는 국수를 먹기도 전에 생콩가루의 비릿함이 훅 끼쳐 국시를 하는 날은 굶는 걸 자처했다.


그날도 저녁 메뉴는 국시였다. 온 가족이 상에 둘러앉아 나물을 넣고 끓인 칼국시를 후루룩 거리며 먹었다. 식이는 또 국시냐며 심통을 부렸다. 식구들이 모두 칼국시를 먹고 있는 안방을 나와 냉방에 가서 누웠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괜스레 찬 방바닥에 누워 서러움을 보탰다. 식이는 가족 중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와 서러움을 달래며 앞으로는 칼국시를 자주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만 더 고프고 온몸으로 전달되는 방바닥의 냉기는 서러움을 한껏 더 포섭했다. 이 즈음, 태술 씨는 식이의 서러움이 절정에 다다르기를 기다렸다는 듯 식이를 불렀다.


“식아, 오늘따라 국시가 더 맛있어여. 국시 안 먹어여?”



© mpmoraga, 출처 Unsplash



식이는 비릿한 콩칼국시는 싫었지만 태술 씨의 홍두깨질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국시꼬랭이를 얻기 위해서였다. 국시꼬랭이는 반죽을 얇게 밀어 국수를 만들 때 두 끝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 잘라 낸 자투리이다. 홍두깨로 칼국수 반죽을 넓적하게 밀고 밀어 얄팍해지면 태술 씨는 척척 접어 숫돌에 간 칼로 가지런히 국수를 썰었다. 채반 가득 칼국수가 똬리를 틀 듯 들어앉을 즈음이면 접었던 반죽의 끝부분은 식이와 언니들 몫이었다. 간식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국시꼬랭이만한 간식이 없었다. 밀가루와 콩가루 그리고 약간의 소금으로만 맛을 낸 소박한 간식거리지만 세상 어떤 간식보다 식이와 언니들을 행복하게 했다.


태술 씨는 기린 목이 되어 기다린 딸들을 위해 국수 양을 줄이고 국시꼬랭이를 조금 더 잘라주기도 했다. 국시꼬랭이를 받아 든 딸들은 금방 쇠죽을 끓여 불씨가 남아 있는 아궁이 앞으로 가 앉았다. 순이 언니는 엄마한테 방금 받아 온 국시꼬랭이를 펴 짚불 위에 올렸다. 국시꼬랭이는 화라락 타오르는 장작불에는 구울 수가 없다. 짚불처럼 약한 불씨에 천천히 구워야 타지 않고 골고루 익으며 제대로 잘 구워진다. 맛있는 국시꼬랭이를 먹기 위해서는 기다림을 배워야 한다. 국시꼬랭이가 벙글벙글 부풀어 오른다. 구수한 냄새가 아궁이에서 짚불처럼 은은히 퍼진다. 부지깽이로 살살 꺼낸 국시꼬랭이는 아궁이에서 나오자마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식이와 언니들 입속으로 사라졌다.


요즘은 홍두깨로 국수를 미는 집이 별반 없어 국시꼬랭이를 맛보기란 쉽지 않다. 특히 부엌의 문화가 달라져 아궁이가 귀하니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 기계를 이용해 국수 면을 뽑기도 하고, 칼국수 자체를 사서 먹는 경우가 더 흔하기 때문에 국시꼬랭이는 추억의 간식이 되었다. 단짜단짜하는 요즘의 간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국시꼬랭이를 먹으면 뭔 맛이여 할 테지만 짚불에 은근히 구워 먹는, 기다림과 인내심이 필요한 그 국시꼬랭이가 한없이 그리울 때가 있다.


딸은 투정하다 지쳤는지 잠이 들었다. 오늘은 뭘 해 먹을까. 부엌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게 묻는다. 태술 씨가 반죽한 콩칼국시는 아니지만 슈퍼에서 사다 놓은 콩칼국시를 삶아 먹어볼까. 때로 고소함 보다는 비릿함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식이의 투정이 든 콩칼국시가 그립다. 흐릿한 찬 날씨 때문일까. 짚불 위에 구운 국시꼬랭이가 바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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