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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마음 Jun 21. 2020

[집장이 그리운 날] 태술 씨를 닮은 집장

브런치x우리家한식

태술 씨가 손짓을 한다. 나는 태술 씨가 손짓하는 부엌으로 갔다. 식탁에는 집장 그릇이 나와 있었다. 

“이거 한 그릇 싸 줄까?”

“나야 좋지, 엄마.”

나는 태술 씨의 눈을 빤히 쳐다보고 말을 또박또박했다. 93세 태술 씨는 보청기를 낀다. 고도화된 과학도 태술 씨의 삶에 얹혀지는 세월을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보청기를 껴도 잘 듣지 못한다. 가뜩이나 말이 많지 않은 편인데 잘 듣지 못하고부터는 말 수가 더 줄었다. 태술 씨는 아무 말 없이 거무뒤튀한 집장을 작은 반찬통에 퍼 담는다.     


집장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에서 만들어 먹던 장 종류 중의 하나이다. 장 종류라고 하면 으레 된장, 간장, 고추장을 떠올리며 짠맛을 기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장은 짜고 매운 장과는 다르다. 지방마다 들어가는 재료와 불리는 이름 또한 조금씩 다르다. 어느 지방에서는  ‘즙장’이라 하고, 거름에서 삭힌다고 해서 ‘거름장’이라고 한다. 또 채소를 많이 넣어 담기 때문에 ‘채장’이라고도 하고, 삭은 집장이 검은색이어서 ‘검정장’이라고도 한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태술 씨도 거름장을 했었다고 한다. 거름장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를 키우는 집이어야 가능했다. 소 외양간에서 나온 두엄을 모아둔 두엄더미에 묻어서 발효를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소를 키우지 않으니 자연스레 거름장을 할 수 없고, 시대가 편리해지다 보니 음식 또한 그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요리를 할 수밖에. 하지만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태술 씨의 딸들에게 집장 맛만은 변하지 않고 유효하다. 딸들에게 집장은 영혼의 음식이다.    

  

“엄마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뭐야?”

언니들은 모두 집장을 꼽는다. 그리고 덧붙여 칼국수와 장떡을 이야기한다. 태술 씨의 여덟 번째 막내딸로 태어난 나는 태술 씨의 장떡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태어나 기억이 생성될 쯤의 나이가 됐을 때는 장떡은 흔히 해 먹던 음식에서 별미로 어쩌다 해 먹는 음식이 되었다. 먹거리가 풍족해진 것도 있지만 밥을 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도 한몫한다. 태술 씨의 장떡을 맛보지 못한 내가 못내 아쉬워하자 태술 씨는 “요즘은 가마솥에 밥을 안 하니…….”라고 한다. 시백 씨도 옆에서 아내 태술 씨의 장떡을 생각하나 보다. “엄마 장떡이 최고지!” 태술 씨는 장떡을 할 때 밥 위에 얹어서 쪄냈다고 한다. 허니 가마솥을 대신하는 전기밥솥에서 장떡 맛을 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고 보면 집장도 마찬가지다. 두엄더미가 없어진 요즘 거름장은 할 수 없다. 소를 키운다고 해도 대량으로 사료를 먹여 키우니 옛날 같은 거름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태술 씨는 시대가 변해 부엌 풍경이 바뀌고 요리 방식이 달라졌어도 집장만큼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 거름에 묻는 방식 대신 전기밥솥을 이용해서 말이다. 

“집장은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해 먹던 음식이었지.”

태술 씨가 결혼 전이나 후, 아흔이 넘은 촌로가 되어서도 평생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담근 집장. 태술 씨는 집장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태술 씨도 나처럼 집장이 그녀의 엄마인가. 집장 담그는 법을 묻는 내게 태술 씨가 수다스럽다.    

  

집장을 담그는 시기는 특별히 정해진 것은 아니다. 보통 늦가을이나 초겨울, 끝물인 채소를 갈무리하면서 많이 담근다. 하지만 지방에 따라서 여름이나 정월에 담그기도 한다. 태술 씨는 추수가 끝나고 김장을 할 즈음 집장을 담근다. 한해의 의식을 치루 듯 말이다. 19세에 결혼을 하고, 20세에 신행을 온 태술 씨는 결혼을 하고 한해도 집장을 거른 적이 없다. 태술 씨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김장은 딸이 해주기도 하고, 태술 씨 집에 와서 함께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집장만큼은 여전히 93세 태술 씨가 담는다. 집장은 메줏가루에 살짝 절인 무, 무청, 가지, 고추 등의 채소와 엿기름 삭힌 물을 넣고 버무려서 따뜻한 곳에 두어 발효시킨다. 채소를 많이 넣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맛이 시큼하게 변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태술 씨의 집장 항아리는 늘 음력설이 되기 전에 동이 났었다. 요즘이야 냉장고가 있으니 맛이 변할 염려를 덜 수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만들어 짧은 기간 안에 먹는 것이 좋다. 그래야 집장의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집장은 단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짠맛이 나는 것도 아니다. 거무스레한 색깔은 식욕을 당길만한 색깔도 아니다. 그럼에도 어떤 반찬보다 나의 허기를 채워주는 것이 집장이다. 무, 무청, 가지, 고추 등을 새들하게 말려 소금에 살짝 절여 넣은 채소는 물컹하지 않고, 쫀득쫀득 씹히는 식감이 좋다. 집장 속 채소는 집장과 버무려져 어우러진 맛을 내기도 하고, 채소 각각의 고유한 풍미를 지니기도 한다. 나는 태술 씨에게 집장 만드는 법을 묻긴 하지만 담글 줄은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언니들도 마찬가지다. 일흔이 넘은 언니도, 예순이 넘은 언니도 집장을 담글 줄 모른다. 그저 태술 씨에게 한 그릇씩 얻어먹는다. 요리법이 번거로워서일까. 고추장도 된장도 손수 담아 먹는 그들이 태술 씨의 집장을 담그는 법을 배우지 않는 이유는 뭘까. 나는 태술씨와 집장을 분리시켜 생각하지 못한다. 집장은 그냥 태술 씨다. 어쩌면 언니들에게도 그렇지 않을까. 언니들에게도 집장은 태술 씨다.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촌로, 태술 씨. 태술 씨의 집장은 그녀를 닮았다. 태술 씨의 집장은 화려하거나 특별한 맛을 내지 않는다. 자극적이지 않다. 평범하다 못해 소박한 태술 씨의 집장은 특별한 비법이 없다. 특별함이 없어 특별한 태술 씨의 집장이다. 집장은 그래서 여운이 짙다. 둘째 딸은 태술 씨의 집장을 곰삭은 맛이라고 했다. 곰삭은 맛은 어떤 맛일까. 태술 씨가 견뎌 낸 뭉근한 삶의 맛일까. 막내딸인 나는 태술 씨의 집장 맛을 뭐라 표현하지 못한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아직 태술 씨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나 보다. 태술 씨가 허공을 향해 담배 연기로 내뿜었던 그 삶을 무슨 수로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기와를 곱게 빻은 가루로 놋그릇의 녹청을 닦아내던 그 삶을 어찌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이해도 헤아릴 수도 없는 태술 씨의 삶처럼 집장 한 그릇은 그저 내게 엄마, 태술 씨일 뿐이다.      


태술 씨는 19세에 결혼을 하고, 20세에 신행을 왔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결혼 한 시백 씨와 가정을 이룬 지 74년이다. 시백 씨는 태술 씨를 처음 봤을 때 달덩이처럼 예뻤다고 했었다.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경상도 남자 시백 씨의 눈에 태술 씨는 달님이었다. 19세 태술 씨는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를 맞이한 그날을 무덤덤하게 떠올렸다. 

“결혼이라고 그냥 하는 거라고 했지 뭐. 좋고 싫고 가 어디 있었나…….”

태술 씨의 삶은 갖가지 채소가 버무려져 만들어지는 집장과 같았다. 결혼 후 군대에 징집되어 간 시백 씨. 1950년 9·28 수복쯤이었으니 군에 가 있는 시백 씨나 그런 시백 씨를 대신해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할 태술 씨나 전장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태술 씨는 베틀을 사 베를 짜 팔아가며 가정 경제를 지켜야 했었고, 중공군이 둘째 딸을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었다. 한시도 숨 돌릴 틈이 없는 태술 씨의 삶은 질퍽한 집장이었다. 거무스레한 집장만큼이나 녹록하지 않은 삶이었다. 그러면서도 집장 속 채소처럼 각각의 고유한 맛을 지켜내는 외유내강의 힘을 지닌 태술 씨. 누구에게도 내 삶이 맵니 짜니 말하지 않았다. 십 여일을 두엄더미의 은근한 열기를 견뎌내야 제 맛을 내는 집장처럼 그렇게 주어진 삶의 열기를 견디고 살아냈었다.   

  

반찬통 한 귀퉁이에 남아 있는 집장 한 숟가락을 퍼 밥 위에 얹어 쓱쓱 비빈다. 그런 나를 보던 남편은 태술 씨가 영원한 이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집장 만드는 법을 배워두라고 한다. 지난 주말에도 태술 씨한테 가서 집장 만드는 법을 배웠다. 아니 들었다. 잘 듣지 못해 말 수가 줄어든 태술 씨는 당신의 요리법을 말할 때만큼은 세상 수다스럽다. 잠깐의 수다에 행복해하는 태술 씨가 좋아서 묻는다. 난 태술 씨한테 집장 담그는 법을 아무리 들어도 만들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집장을 담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게 태술 씨의 집장은 요리법을 들어서 뚝딱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태술 씨의 곰삭은 세월을 담은 집장 맛을 내 얄팍한 삶의 무게로 어찌 그 맛을 낼 수 있단 말인가.  태술 씨가 아무리 가르쳐 준다고 해도 그 맛을 낼 수 없기에 그저 듣기만 한다. 수다스러운 태술 씨의 모습을 보기 위해.     


늦게 태어난 나는 태술 씨가 늘 그립다. 뜨거운 태양이 땀방울을 재촉하는 계절이다. 이 더위에 초겨울이 기다려진다. 태술 씨가, 나뭇등걸 같은 태술 씨의 손으로 만든 집장이 그립기 때문이다. 올 겨울에도 93세 그녀, 태술 씨의 집장을 얻어먹을 수 있겠지. 내 영혼을 달래주는 거무뒤튀한 그 집장을. 무슨 맛이냐고 물으면 뭔 맛인지 모르겠다는 그 집장을. 나는 오래도록 태술 씨의 집장을 얻어먹고 싶다.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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