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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마음 Feb 16. 2022

[집장이 그리운 날] 매옴한 짬뽕 국물에서

짬뽕



© pixabay




짬뽕이 먹고 싶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심하게 먹고 싶었다. 빨갛고 얼큰한 국물이 눈앞에 왔다 갔다 했다. 통통한 면발 위로 야채와 주꾸미가 올려져 있는 짬뽕. 이상하리 만치 짬뽕이 먹고 싶었다. 아프고 난 후라 더 그런가. 그녀는 며칠 전부터 짬뽕이 먹고 싶은 걸 참았었다.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싱크대 서랍 속에서 중화요리 전단지를 뒤적거렸다.


초스피드였다. 전화 한지 10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철가방을 든 배달맨이 나타났다. 그는 무심히 짬뽕 한 그릇과 단무지를 두고 갔다. 젓가락을 들기 전부터 침이 고였다. 그녀는 혼자 정신없이 후루룩거렸다. 세상 이렇게 맛있는 짬뽕은 없었다는 양. 짬뽕을 시켰던 전단지를 다시 보았다. 다음에도 여기에 시켜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중화요리 상호를 기억해둔다. 안방에서는 그녀가 짬뽕 한 그릇 뚝딱할 때까지 아기가 조용히 자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밥 한 숟가락 먹기 위해서 매일 전쟁을 치르듯 했는데. 곤하게 낮잠을 자는 아기 얼굴 위로 초겨울 햇살이 한 가닥 내려앉았다. 그녀는 아기의 얼굴을 힐끔거리며 남은 짬뽕 국물을 마저 마셨다. 깨끗이 빈 그릇이 그녀의 속을 채워주었다.


아들이 태어난 지 13개월째였다. 산후휴가를 받았지만 회사를 나갈 때가 되니 갈등이 생겼다. 아이는 그녀의 언니가 돌봐주기로 했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라고는 하지만 아기를 1주일에 한 번 봐야 할 거리였다. 세상 해맑은 아기를 보면서 그녀는 생각했었다. 내가 나가서 벌면 얼마나 번다고. 에미야, 적게 먹고 적게 싸라. 나이가 들어 결혼했으니 한 2년 후 둘째 계획도 해야지. 그래 아들이나 잘 키우자 등 갖가지 이유가 생겼다. 그녀는 산후휴가가 끝나 갈 무렵 복직이 아닌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매일 아들의 육아에 매달렸다. 매일 초보 엄마였지만 아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 그녀의 하루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왜 자꾸 속이 부대끼지. 그녀는 아이의 육아에 끼니를 잘 챙겨 먹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양가 부모님은 대가족을 거느리면서도 잘도 키우셨는데, 왜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헤매고 있을까 싶었다. 그녀는 감기 기운도 있고 체기도 느껴졌었다. 병원에 가 주사도 한 대 맞고 약 처방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며칠이 계속되자 그때야 퍼뜩 딴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약국에서 사온 임신 테스트기에 나타난 두 줄. 이상하다. 아들을 낳고 1년이 넘도록 생리를 한 적이 없었는데. 그녀는 참으로 원시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미련스러웠다.


자장면 먹으러 가자고 하면 그녀는 늘 짬뽕이었다. 아들을 임신했을 때는 항상 자장면을 선택했었다. 아들이 태어나 피부가 까만 걸 보고 사람들은 그녀가 자장면을 먹어서 그렇다고 농담을 했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자장면이 당기든지.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그녀에게 묻지도 않고 자장면을 시켜 줄 정도였었다. 얼큰한 짬뽕 국물이 그리울 때도 말이다.


유산을 했다. 몇 날 며칠을 그녀의 꿈속에 형체 없는 아기가 나타났었다. 그녀는 아기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울음을 삼키기도 하고, 꿈을 꿀까 두려웠다. 잠드는 게 무서워 밤을 새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은 그 모든 것을 안고 무심히 흘렀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들을 보며 매옴한 짬뽕이 떠올랐다. 얼큰하다며 후루룩 마신 뻘건 짬뽕 국물. 그날 이후 그녀는 오래도록 짬뽕을 먹지 않았다. 매옴한 짬뽕 국물에 속이 너덜거렸다. 뻘건 짬뽕 국물에서 심장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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