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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마음 Jan 26. 2022

[집장이 그리운 날] 미역국을 끓이며

미역국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부엌문을 열고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의 인기척에 미역국에 간을 하던 나는 엄마 쪽을 보았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내 등 뒤에 섰다. 나는 간을 하던 것을 멈추고 엄마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엄마는 보청기를 사용하지만 잘 듣지 못한다.


“엄마, 필요한 거 있어?”


엄마는 내 말을 들었는지 어쨌는지 대답 없이 쳐다보기만 한다.


“거실 소파에 앉아 계셔.”



탄생은 축복이다. 그 자체로 말이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탄생이 축복이 아닐 수도 있다. 어렸을 때 생일이 슬프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난 후 어렴풋이 알게 됐다. 내 생일이 엄마에게는 아픔이었겠구나를. 딸 부잣집에 또 딸을 얹었으니 그 속이 오죽했겠는가. 매번 딸만 낳은 엄마의 마음이 녹록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엄마는 여태 한 번도 딸들만 낳아서 참 아팠다거나 속상해서 살맛이 나지 않았다는 말을 뱉은 적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 내 생일만 되면 엄마가 느껴져 눈물바람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한테 미역국을 끓여드리고 싶었다. 엄마의 유한한 삶이 언제까지 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를 낳느라 몸 고생 마음 고생한 엄마에게 뜨끈한 국 한 그릇 대접하고 싶었다. 내 생일이라고 축하만 받았지 엄마를 위로해드린 적이 없었다.


산모용 미역을 사고 국거리 고기를 샀다. 몇 가지 밑반찬을 준비해 엄마한테 갔다. 먼저 물에 불린 미역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후 달궈진 솥에 들기름을 넣고 미역을 달달 볶는다. 들기름은 국물을 구수하고 진하게 해준다. 소고기를 넣고 조금 더 볶는다. 볶은 후 물을 붓고 집간장으로 간을 한다. 간이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소금으로 간을 한다. 집간장으로만 간을 하면 미역국이 시커멓고 국물이 탁해질 수 있다. 음식은 맛으로도 먹지만 눈으로도 먹는다지 않든가.


뿌우연 수증기를 토하며 미역국이 끓는다. 오십여 년 전 탯줄을 쏟고 애 태웠던 엄마는 미역국 한 그릇 제대로 드시지 못했을게다. 이제서야 미역국 한 그릇 대접한다. 철부지 나쁜 딸은 미역국 한 그릇으로 엄마의 삶을 퉁 치려 한다.



뿌우연 미역국이 끓는다. 엄마의 주방에서도 나의 주방에서도.


동이 트기 전, 주방에 그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차르르 지글지글 한참을 씻고 볶고 끓인다. 뿌우연 수증기가 온 주방을 집어삼킨다. 수증기가 잦아들 즈음 흰쌀밥과 미역국 한 그릇이 짝을 하고 내 앞에 놓였다. 남편이 끓인 내 생일 미역국이다. 황태 미역국이다.


남편은 미역국에 다진 마늘을 넣고, 새우 젓갈로 간을 했나 보다. 미역국에 간간이 새우가 보인다. 그만의 방식이다. 그는 새우 젓갈로 간하기를 좋아한다. 때로 과하게 새우 젓갈을 넣을 때도 있지만 오늘은 맛있게 간간하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늘 황태 미역국을 끓였다. 소고기를 마음 놓고 사 먹을 형편이 아니기도 했지만 제사를 지낸 북어포가 집에 늘 있었기 때문이다. 들기름에 달달 볶은 미역과 황태는 뿌우연 국물을 한 솥 토해냈다, 시원한 바다를 토해내듯. 엄마의 황태 미역국은 온 바다를 품은 듯 구수하고 시원했다.


짭조름한 바다가, 뜨끈한 미역국이 창자를 훑는다. 그의 사랑이 뜨뜻한 국물 되어 흐른다. 철부지 딸이 끓인 미역국도 엄마를 뜨끈하게 위로할 수 있을까. 뿌우연 미역국 한 숟가락을 뜬다. 엄마와 함께여서 더 구수하다. 그의 뜨끈한 마음이 고맙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생일 미역국 한 그릇으로 엄마의 삶을 퉁 치는 나쁜 딸이고 싶다.


뿌우연 미역국이 끓는다, 엄마의 삶을 위로하듯 뭉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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