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kg 대용량 돼지불고기

부활절 만찬

by 하루만

4월의 셋째 주도 어김없이 정신적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생일대의 위기가 바로 이런 것인가 싶었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아프다는 남편은 토요일 아침 겨우 해답일지도 모르는 창구를 하나 찾고서야 얼굴이 조금 편안해졌다.


"고기는 주문해 놨으니 가는 길에 찾자."

"얼마나 주문했는데?"

"16kg"

"그걸 집에서 다 할 수 있을까?"


남편은 부활절 예배 후 다 같이 나눌 만찬음식을 부탁받았는데, 좁은 집으로 이사와 처음 하는 대용량이라 나는 걱정이 앞섰다.



집에 도착한 남편은 쿠팡으로 배달된 특대사이즈의 양파와 파를 바로 손질한다. 좁아진 부엌이지만 못할 일이야 없다. 스텐볼을 사이즈별로 다 꺼내놓고 양파, 파, 당근을 채 썰어 담는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양파를 채 썰던 남편이 갑자기 칼을 갈고 있다.

"칼도 제때 갈아주질 못하고 정신없이 1년을 살았네."

끝나지 않는 인생 위기 앞에 인내심이 많이 늘어난 그가 담담하게 날카로운 칼을 돌 위에 납작 붙이고는 슥슥 빠르게 밀어낸다.


옆에 놓인 흰색 수납박스 안에는 일본 숯돌이 1000방부터 종류별로 담겨있다. 요리를 시작하며 칼갈이까지 전문가가 된 그의 애정템이다.


좁은 식탁이 조리대로 변신했다


"고기를 미리 재워두고 아침에 볶기만 하자."

"안돼. 아침에 양념 버무려서 바로 볶을 거야."

"왜? 불고기는 원래 다 미리 양념해 두는데.."

"바로 볶는 건 이번에 내가 해보고 싶은 방식이야. 또 흰밥이 아니고 김밥이랑 같이 드시니까 짜면 안 될 거고."


예배장소를 빌려 쓰는 우리 교회는 안타깝게도 부엌이 없다. 집에서 조리를 끝낸 상태로 가져가 데워서 드려야 한다.


막 볶은 맛을 보여드릴 수 없으니 가장 맛이 좋게 유지될 메뉴와 방법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


"그럼 몇 시에 일어나? 새벽 6시?"

"5시 반에는 일어나야지."



5시 반에 일어난다던 남편은 새벽 4시 반부터 눈을 뜨고 난리다.

"내가 알람 맞춰놨어."

나는 걱정 말고 더 자라며 손으로 토닥거려 본다.


남편은 조금 누워있나 싶더니 더는 못 참고 부엌으로 나간다.

'아... 아니...'

옆에 누운 보조는 눈치가 보여 이상 잘 수가 없다.


임무를 맡은 우리는 동트는 새벽빛을 맞으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내가 고기를 계량하고 소스를 버무리면 남편이 가져가 볶는 식이다.


예전 집은 가스불 화력이 좋아 중국집 웍을 얹고 웍질을 하면서 볶아냈는데, 이사 온 집은 인덕션이라 그럴 수가 없다.

웍에 가득한 불고기. 이 양을 총 4번 볶는다.


불맛을 그리워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화구가 있는 공간을 대여할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리를 좋아하는 그가 불을 잃은 게 얼마나 슬플까 싶어서다.


드디어 장만한 캠핑용 강력버너


똑같은 레시피지만 대용량은 희한하게도 맛이 틀려진다. 계속 요리를 해가면서 더하고 빼기의 센스가 필요하다.


다 볶아진 고기는 가장 큰 들통을 한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딤채 김치통 하나를 더 꺼내야 했다. 두 손 가득 마음도 든든하다.


손님맞이 채비를 끝낸 불고기


비가 올지도 몰라 천막을 못 쳤다는 잔디밭 위로 해가 쨍하게 내리친다. 지난주 비바람은 어디 가고 여름이 당겨온 기분이다.


따뜻하게 데워 맛있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등에 와닿는 햇볕의 뜨거움도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고기를 담으면 공동체분들이 서빙을 도와주셨다.


"남편분이 셰프세요?"

"혹시 가게 하세요?"

"언제부터 요리를 하게 됐어요?"

맛있게 드셨는지 궁금한 게 많으신 분들이 남편이 아닌 내게 와서 질문공세를 하신다.


"육질이 좋고 소스가 어쩜 이리 딱 어울리게 잘했대?"

나이 많으신 권사님들의 칭찬은 찐이다.

"이 고기는 흰밥이랑 먹어야 더 맛있는데~"

나는 마지막으로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본다.


"맛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잘 먹었어요."

머리가 희끗해지신 어른들이 건네는 인사는 격려와 사랑이다.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주름 가득 진 손으로 악수를 청하시니 황송하기도 하고, 손주처럼 애교를 떨고 싶기도 하다.


새벽부터 일어나 몸은 고생했는지 몰라도

잘 먹었다는 인사를 주워 먹은 우리는 배가 부르다. 웃을 일 없던 한 주였는데 광대가 연신 승천해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나눔의 묘미 싶다.


텅텅 빈 들통과 김치통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이다.

"어떤 분이 목살로 했냐고 물으셨어."

남편과 얼마나 실험했던가. 앞다리살, 목살, 삼겹살 종류별로 해본 뒤 그 후엔 두께 때문에 지겹도록 여러 번을 먹었던 돼지불고기다.


"이건 앞다리살로 해야 이 맛이나. 돼지불고기야 뭐 이젠 식은 죽 먹기지. 이젠 100인분도 눈감고 해."

남편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난 깜짝 놀란다.

'세상에. 자꾸 양을 늘려서 어쩌려고.'

달리는 창밖의 풍경을 보는데 왜 또 어디선가 들통에서 음식을 담는 모습이 흐릿하게 그려지는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래, 얼마든지."

운전하는 남편의 뒷목을 왼손으로 쓸어주며 봄의 문턱에서 막 태어난 순한 연둣빛 잎들의 물결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 삶에도 제발 봄이 찾아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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