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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 Oct 25. 2024

이 남자 고쳐 써도 될까요?

#10 에필로그

흔히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한다. 만약 고쳐 써야 사람이 아이까지 같이 낳은 배우자일 때는 결정을 내리기가 더 난감하다. 고쳐 쓴다는 것은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인데, 잘못됨의 영역과 범위, 또 잘못된 상태로 산 시간은 이 사람을 고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진정한 변화는 정체성의 변화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정체성 중심의 습관형성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사람을 고쳐 쓰기 위해서는 먼저 당사자가 올바른 정체성을 형성하고 그에 따른 습관을 형성해야지만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질문을 하게 된다.

'그를 고쳐쓸 수 있을까?'


일단 매우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드라마틱한 외도를 했던 그와  집에 머물 남처럼 사는 것은 좀 더 쉬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를 변화시켜 다시 회복해 살겠다 마음먹었다면, 적어도 그가 잘못된 목표와 가치관으로 살았던 시간만큼을 투자해야 겨우 마이너스에서 제로의 상태로 올 수 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내 남자도 단순히 잘못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틀을 갖추는 데까지 그가 죄의 길에 섰던 4년만큼 꼭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했고 그 일에 푹 빠져 열정과 꾸준한 습관으로 겨우 작은 씨앗에 불과했던 새 자아를 아름드리나무로 무럭무럭 키워나갔다. 요리하는 아빠라는 그의 부캐는 가족을 더할 나위 없이 즐겁게 했고 기분 좋아진 가족들의 충만한 피드백은 막 태어난 아기나 다름없는 빠의 새 정체성을 먹이고 살찌웠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가지. 지금이 좋다고 마지막까지 좋을지는 안타깝게도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배신을 당하거나 황혼이혼등의 대반전 위험요소가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는 치유의 정석을 제대로 밟 이 변화의 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본인의 강렬한 의지가 필요하다. 다행히 남편은 가  길이 똥이었다는 걸 자각하면 뒤도 안 돌아보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상담사가 남편은 실행력이 매우 강한 편에 속한다고 했다.


둘째, 싸워서라도 제대로 된 길로 데리고 가 줄 파트너가 필요하다. 거짓말하며 다른 가치관으로 살았는데 어찌 갈등이 없을까? 다툼이 싫지만 교집합을 가질 때까지 갈등을 잘 이용해서 당사자를 붙들어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혼자서는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이미 몸에 밴 나쁜 습관은 자동화되어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 한 번에 완전히 끊어낼 수가 없다. 차차 횟수가 줄어들면서 동시에 새로운 습관이 그 자리를 채울 때 마침내는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기간 동안 정신 차리라고 등 때려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누가 그런 역할을 도맡아 하고 싶을까?


셋째, 가장 소중히 지키고 싶은 것이 가정이어야만 한다. 변화의 과정에서 일어나고 넘어지기를 무한 반복하게 된다. 그때 포기할 수 없는 것, 꼭 지켜내고 싶은 것이 가정이어야 시너지를 얻을 수 있을 터. 고쳐 쓸 대상자가 남편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어쩌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다툴지도 모를 일이다. 아빠가 잘못 걸어 들어간 길, 단지 그거 하나 되돌리는 것인데 가정 안에서는 엄청나게 큰 파장이 일어나고 풍비박산 날 지경이 되기 때문이다. 온 가족 마음에 생채기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결국 바닥까지 치는 안타까운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애쓰는 서로를 불쌍히 여겨 부둥켜안고 미안하다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을 때, 가정은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화학작용을 마치고 새로운 분자로 재탄생한 듯 새 얼굴이 된다. 놀랍지 아니한가!


그 작용을 아이들 모르게 하라고?

절대 그럴 수가 없다. 결국은 다 알게 된다. 어리더라도 부부의 의견다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부모가 노력 중에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때론 처음 보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 놀랄 수도 있지만, 그들도 알아야 부모의 갈등을 이해하고 가족구성원으로서 도울뿐 아니라 변화되어 가는 부모칭찬하고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싸우더라도 잘 화해하는 법을 가족 모두가 배워가는 시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자, 여기까지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생각을 나누어보았다. 고쳐 쓸지 말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대들의 행복을 빈다.


올해 여름, 우리 집 세 남자


총 10화까지 저와 함께 치유행 열차탑승해 주셨던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숨겨져 있던 시한폭탄에 놀라진 않으셨는지, 천천히 바깥 풍경을 음미하시며 즐거운 여행이 되셨는지 궁금할 따름이네요. 사실 상처가 완벽히 아물어 새 얼굴로 탄생되기 위4년간의 기록은 아직 글로 다  풀기에 너무 방대합니다. 짧게나마 그 과정을 글로 적다 보니 새삼 가슴이 저릿하기도 하고 때론 온기가 돌기도 했어요.


무슨 정신으로 매일 발행을  눌렀는지, 변경은 한 달 에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정말 좌절스러웠어요. 글을 쓸 기운이 꺾이기도 했지만 정신없이 발행한 뒤 처음으로 날아온 하트발사 하나에 낙심된 마음이 사르륵 사그라들며 바보같이 히죽 웃음이 났답니다. 덕분에 짧은 2주간 얻은 행복으로 또 아주 평범한 날들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좋은 글로 만나 뵙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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