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아들의 까막눈 탈출기
공짜로 친자확인 가능
한글공부, 요새 아이들은 선행학습을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나는 어릴 적 집에서 깍두기공책에 내 이름을 받아쓰던 게 기억난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한글 원리를 깨우치게 되었는데 그 순간이 꼬마아이에게도 인상적이었는지 아직도 그 깨달음의 순간이 사진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굳이 인지교육에 조급하지 않아서 아이에게 한글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다니는 어린이집도 인지교육을 시키지 않아서 따로 한글이나 숫자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이도 딱히 책을 볼 때에 글자나 문자에 관심을 보이지 않기도 해서 더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7세가 되니 주변에서 글을 읽는 아이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집에서 둘짜인 아이들이 먼저 읽기 시작했다. 약간의 압박이 느껴지지만 아이도 아직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그냥 더 지켜보기로 했다.
7살 여름방학이 되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방학이 꽤 길다. 3주나 되다 보니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나가기엔 아쉬운 시간이다. 내년엔 학교도 가야 하니 한글을 한번 엄마표로 가르쳐 보기로 했다. 이런 무모한 결정을 이리 쉽게도 했다. ㅋㅋ 아이는 레고를 좋아해서 조립을 시작하면, 하루 종일 거기에 붙어있는다. 물론 중간중간 자리를 뜨긴 하지만, 일곱 살 집중력치고는 꽤나 몰입감이 좋은 편이라 생각했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한데 이게 웬일, 엄마표 한글 수업은 너와 나의 친자확인만 해 주었을 뿐, 그 어떤 진도도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열불이 나서 얼음물만 몇 컵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닌 건 아닌 거다. 빠른 포기와 함께 대안을 고민했다. 이대로 접고 겨울방학을 노려볼지, 아니면 학원이라도 아니면 학습지라도 시켜야 하는 건지 고민하는 통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집 주변에는 보낼만한 학원이 마땅치 않아 패스. 학습지는 방문교사가 와야 하는데 외부인이 오는 건 또 싫어서 패스. 그렇다고 겨울방학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자니 그것도 내키지 않았다. 결국 다시 한번 내가 가르쳐야 하나 고민하다 문명의 이기인 어플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미디어 노출을 지양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접근이었다. 게임 형식의 어플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콘텐츠로 만들어져 있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티브이도 자주 못 보고 게임이란 걸 접할 기회가 없는데 태블릿에 게임을 하라고 펼쳐주니 아이는 아주 신이 나서 태블릿에 빨려 들어갈 기세다. 결국 하루 30분으로 시간을 제한하고 한 달 정도 무료 어플을 사용해 보았다.
한글 어플의 기전은 간단했다. 처음에는 자음과 모음을 기억하게 하고, 나중에는 자음과 모음을 합쳐 글자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반복 학습을 시킨다. 중간중간 나오는 영상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곳곳에 심어 놓았다. 다행히 나와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자음과 모음은 익혔지만, 조합은 어려워했다. 즉 여전히 한글을 깨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이는 그저 동영상이 재밌어서 자꾸 어플을 꺼내 보는 것이었다. 한 달 정도 사용하던 무료 어플은 삭제하기로 결정하고 다른 유료 어플을 구독하기로 했다. 유료 어플에는 도서관이 포함되어 있어서 다양한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를 포함하고 있었다. 나의 책 읽기 목소리 노동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하는 욕심에 깔아주었더니 아이들이 제법 다양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유료 어플도 두어 달 사용하고 결국은 삭제하게 되었다. 아이의 사용습관을 잘 관찰해 보니 어플에서 제공하는 책도 지겨워했고, 아직도 한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단계별로 올라가는 미션을 클리어하지 못하게 되니 아무래도 재미가 없어진 듯 보였다.
이래 저래 시간은 흘러 겨울방학이 되었고, 조금 있으면 그야말로 학교에 가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아이는 여전히 통글자로만 글자를 읽고 있었고, 어플을 통해 자음 모음 정도만 인지하게 되었고 한글 조합을 이해하는 큰 진전은 얻지 못했다. 결국은 모든 어플은 우리 집에서 퇴출되었다.
엄마인 내가 인지교육에 조급함이 없다 보니, 아이를 재촉하진 않았다. 대신 이젠 겨울 방학이 되었으니 방법을 조금 바꿔 보기로 했다. 원래 집에서 자주 읽던 책을 아이와 내가 한 장 한 장 번갈아 가며 소리 내어 읽기를 시작했다. 사실 아이는 이미 그 책을 달달 외우고 있었기에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늘 읽어주던 책만 보다가 직접 자신이 한글을 보고 읽으니 느낌이 또 다른 지 내용을 분명 알고 있음에도 약간 더듬거리며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작전은 대 성공이었다. 처음에는 여러 번 읽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외우는 수준의 책 읽기를 한 달 정도 (매일 밤 15분 정도) 했더니 이제는 자기가 새로운 책을 들고 오기 시작한다. 물론 여전히 더듬거리며 읽는다. ㅎㅎ 그래도 이제는 받침 없는 글자들은 제법 그럴듯하게 읽어낸다. 역시나 책을 많이 읽으면 알아서 깨우친다는 말이 진리였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삼시세끼 밥을 입에 넣어줘야 밥을 먹던 아이가 어느 순간 스스로 숟갈을 들고 밥 먹기를 시작하는 것 같이 때가 되니 아이가 글을 읽기 시작한다. 셀 수 없는 끼니를 직접 먹여야 밥숟갈을 스스로 들게 되는 것처럼 아이들이 배우는 모든 것은 부모의 직접적이고 세세한 도움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문명의 이기의 도움을 좀 받아 볼까 하는 마음으로 요행을 꾀했으나 결국은 함께 책을 읽음으로 글을 깨우쳐 간다.
감사한 것은 첫째와 까막눈 탈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다섯 살인 둘째는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혼자 한글을 깨쳐버렸다. 와우! 역시 둘째의 생존 본능이란. 이래서 둘째부터는 발로 키운다는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둘째야 고마워 ^^ 우린 친자확인 안 해도 돼서 고맙다~~
비록 한글을 완전히 깨치지 못하고 입학을 하게 되었지만 크게 걱정이 되진 않는다. 한글 때문에 내 마음이 여러 번 욱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여전히 아이가 즐겁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놀기를 바란다. 한글은 조금 천천히 배워도 되니까, 언젠가는 받침 있는 글자도 술술 읽어 나가겠지. 가끔씩 너보다 빨리 나가려고 급발진하는 내 마음을 다 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