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린이집 밥해주기

30명 아이들은 밥을 얼마나 먹을까

by 하루살이

어린이 집에서 밥을 해주고 왔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어린이집 운영에 많은 부분을 부모가 감당한다. 맛단지(조리사) 월차에는 부모가 아이들 밥을 책임진다. 부모들이 돌아가며 하는 일이라 자주 하진 않지만 그래도 제법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챙겨 나갔는데, 예상했던 대로 역시나 지각. 아이는 갑자기 등원시간을 당기지 못한다는 걸 실감했다. 가자마자 점심때 쓸 육수와 밥을 안쳐 놓고, 아침 간식을 준비했다. 오늘 간식은 배였는데, 얼마 만한 크기로 잘라야 하는지 양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갈팡질팡의 연속이었다. 다 먹고 빈 그릇을 들고 온 7살 아이가 ‘오늘은 유난히 배가 얇네’ 하며 돌아간다. 컴플레인은 아니겠지만, 뒤통수가 약간 따끔했다.


오래도록 해온 일이라 매뉴얼이 제법 갖추어져 있어서 매뉴얼대로 하면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아이들 밥을 해줄 때 가장 큰 고민거리는 간을 맞추는 일이었다. 집에서 먹을 때야 짜게 먹든 싱겁게 먹든 상관없지만, 30여 명 되는 아이들의 점심이라 생각하니 도대체 어느 정도가 아이들 입맛에 맞는 간인지 고민하게 되고, 내 입맛을 의심하게 되었다. 결국 고뇌와 번민 끝에 난 간장 조금 소금 조금 더 넣고, 어른 입에 맛있는 건 아이들도 좋아한다고 합리화하며 밥을 지어본다.


테이블에 반찬과 밥과 국을 순서대로 올린다. 4살 5살 동생들은 선생님이 떠서 나누어 주고, 6살 형님부터는 직접 자기 먹을 것을 담기 시작한다. 맛없어 보이는 깻잎 순은 한줄기만 담고, 노란 계란물에 부친 동그랑땡은 여러 개를 담는다. 7살 형님들은 마지막에 와서 조용히 식사를 한다. 코로나 기간이라 종알종알 떠들어댈 아이들이 조용히 식사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내가 미안해진다. 깨끗이 먹은 빈 그릇을 그릇 모으는 통에 넣고 잘 먹었습니다 인사말까지 잊지 않는 일곱 살은 역시 형님 티가 절로 난다.


점심식사를 마치니 설거지가 밀려들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설거지를 하고 나니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쯤 되니 아이들도 양치질을 마치고 낮잠 이불을 펴고 꿈나라로 들어가 시끌벅적하던 어린이집이 빈집처럼 고요해졌다. 나도 커피 한잔 타서 마루에 걸터앉아 한숨 돌리었다.


커피 한잔 마시고, 오후 간식 준비하고 또 설거지하고, 정리를 마치니 4시쯤 되었으려나, 하루 종일 나와 놀고 싶었으나 용케 참았던 아이가 나랑만 놀자고 내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후기에 쓰려고 사진도 여러 장 찍었으나 역시나 후기는 기억이 생생할 때 써야 하는 법. 하루 종일 밥만 하며 보냈는데 긴장을 해서인지 도통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되려 평생 우리 밥을 해주시던 엄마 생각이 났다. 천성이 잠꾸러기인 나는 매일매일이 엄마와의 전쟁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딸과 아침을 꼭 먹여서 학교를 보내고픈 엄마와의 전쟁. 제일 싫은 건 주말에 정말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늘어지게 자고 싶은데 꼭 밥 먹고 자라고 깨우는 건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다. 엄만 왜 그렇게 밥밥밥 밥타령이었는지…


세월이 흘러 시간은 돌고 돌아, 요샌 내가 아침마다 저녁마다 밥을 먹이느라 아이들 뒤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있다. 아이 셋 점심 저녁 도시락 7개(오빠는 3개)를 매일같이 싸야 했던 엄마와 비할 바 아니지만, 나도 매일 뭘 해서 먹일까 가 제일 큰 고민거리이다. 시간이 한참 더 지나면 나도 이 녀석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걱정하는 할머니가 되어 있겠지.


아이들 밥 해주다 여전히 철마다 김치를 해서 나르는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 사랑은 밥이었던걸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 이제야 조금 알게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3년 인생 연말정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