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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자식 키우니? 도와주게?

by 하루살이

"나 정도면 잘 도와주는 거 아니야?"

"남의 자식 키우니? 도와주게?"


부부의 세계는 육아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육아 전, 부부의 관계는 상당히 단순하다. 서로의 감정이 중요하고, 함께 결정하는 것들은 저녁 메뉴와 식당을 정하는 수위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부부의 세계가 육아의 세계로 접어들 때, 본격적인 공동 노동과 공동의 책임을 마주한다. 거기서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게 된다. 새벽녘 눈을 뜨기도 몸을 일으키기도 힘든 시간, 아이는 울어 젖히기 시작한다. 여기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인내심이 시험대에 올라선다. 조별과제를 맡았을 때 얌체같이 요리조리 빼는 친구는 나중에 만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안타깝게도 육아는 조별과제 때 만난 얌체 같은 친구처럼 쉽게 용서가 되거나 금방 헤어질 수가 없다.


그 어떤 부부도(자녀가 있다면) 육아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부부는 없다.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서로에게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남편과 육아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남편이 곧잘 이런 말을 한다. “나 정도면 잘 도와주는 거 아니야?” 난 이렇게 화답한다. “남의 자식 키우니? 도와주게?”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남편의 지나가는 한마디도 편안하게 흘려듣기가 되질 않는다. 도와준다는 말은 내 일이 아님을 근본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그동안의 한국의 경제구조로 보나 정서상으로 보나 (그나마 착한) 남편은 주로 도와왔고, 여자가 주로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왔다. 외벌이 구조 때에는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으나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러니 남자도 바뀌어야 한다는 뻔한 말들을 늘어놓고 싶지 않다. 세상이 천지개벽을 해도, 부모의 역할과 책임은 천년이 지나고 또다시 천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돕는 역할을 자처하는 부모는 자신을 스스로 주연에서 조연으로 강등시키며 배우자에게 그 책임을 살짝 미뤄놓게 된다.


은근 칭찬을 기대했던 남편은 남의 자식 키우니? 도와주게? 이런 말을 들으니,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고, 무슨 그런 소리를 하냐며 자리를 이내 피해버린다. 하지만 늘 육아와 살림에 있어 한 발을 살짝 빼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건가 하는 깊은 빡침이 올라온다.


누군가는 나에게 말꼬리를 잡는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속에 깊이 박힌 사고의 단단한 뿌리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뿌리를 걷어내고자 한다면 몸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육아는 공동의 몫이다. 누가 몸을 한번 더 움직였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이 세상에 나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부모의 역할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임하느냐의 문제이다. 그 책임 앞에 진지한 고민을 한 번이라도 해 보았다면 본인 자신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떤 부모인지 어떤 배우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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