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늦다 보니 장장 이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뿌려놓은 축의금을 전부 회수할 것인가, 현재 가까운 사람들만 부를 것인가, 꽤 고민이 되었다. 청첩을 돌리는 일 못지않게 돌잔치에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도 상당히 애매하고, 복잡한 인간관계의 계산이 깔려있는 작업이다.
돌잔치란 무엇인가? 유아 치사율이 높았던 때에 1년간 잘 살아남아 준 것에 대한 기쁨과, 앞으로 더 오랜 시간 무병장수하길 축복하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내가 정말 잔치를 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의 계산서를 맞출 필요 없이,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저 나의 기쁨을 감출 수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오직 내가 베푸는 그런 잔치 말이다. 돌잔치 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기쁨을 누구와 나눌까가 아니라, 누구에게 이 계산서를 내밀어야 할까라니 참으로 슬픈 현실이었다.
사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 다니던 돌잔치는 그저 비싸고 맛없는 뷔페를 먹으러 가는 영 귀찮기만 한 자리였다. 결혼식도 귀찮은 판에, 남에 아이 생일까지 가서 봐야 한다니 영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그래서인지 생각해 보니 결혼 전 돌잔치는 비즈니스 혹은 가족관계 아닌 이상은 거의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돌잔치는 더 이상 예전의 돌잔치가 아니었다. 정말 내가 사랑하는 자식이 일 년간 무탈하게 잘 커준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의 긴 인생을 잘 살아나가길 축복해 주는 위의 정답지와 같은 자리였다. 아쉬운 것은 마음으로만 축하해 달라고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는 내 사정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첫아이 때는 그래도 이 사람 저 사람 친척들도 꽤 방문했고, 지인들도 적지 않은 인원이 방문해 주었다. 둘째 때는 코로나라는 특별한 상황으로, 가족들과 조용히 식사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최근에는 코로나도 있고, 워낙 결혼도 안 하니, 돌잔치에 초대를 받는 일이 아주 드물어졌다. 그래도 이제는 돌잔치에 갈 때 예전과 달리 기쁜 마음으로 간다. 아쉽지 않을 만한 돈봉투도 미리 알아서 준비하고, 첫 번째 생일을 맞은 주인공 아기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나가길 진심으로 빌어주고 온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돌잔치 사진을 열어보았다. 너의 첫 번째 생일 사진이야! 아이들은 기억도 없을 텐데 기억난다는 듯이 이야기를 꾸며내고 사진을 뒤적거린다.
아이가 열 살이 되면 의미 있는 생일잔치를 열어주고 싶다. 십 년을 잘 성장해 준 아이를 축하하고, 앞으로의 삶을 축복하며 그 기쁨과 감사를 온전히 내 이웃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연예인들이 경사가 있을 때 어디엔가 기부를 했다는 신문기사들이 이제야 기억 속에서 살아난다. 그들처럼 호기로운 기부는 못하더라도, 아이와 의미 있는 잔치를 열어볼 계획이다. 그때까지 아이들이 잘 자라주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