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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요가를 시작하다

우아한 아침은 덤!

by 하루살이


나는 저녁형 인간의 대명사였고 지각은 내 인생의 일부였다. 밤은 늘 아름다웠고 매력적이었으며 왠지 그냥 보내기 아쉬운 시간이었다. 반대로 아침은 녹슨 미닫이 문처럼 삐그덕거리며 열기조차 버거운 문이었고 늘 허겁지겁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한 번도 약속시간 30분 전에 나간 적이 없으며 거의 +/-5분 차이로 약속장소에 도착하였다. 남들에게 민폐까지는 아니었지만, 절대 일찍 나가서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침밥은 포기할 수 있어도 아침잠은 포기할 수 없었다.


아침은 누구나 그렇듯 정신없고 바쁘다. 20년 차 노련한 직장인으로서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과이지만, 아이 둘의 어린이집 등원이라는 미션이 우선순위가 되다 보니 나는 언제부터인지 아침마다 아이들을 닦달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쉽게 일어나지도 밥을 먹지도 옷을 입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수십 번 말을 하고 도움의 손길이 가줘야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아이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은 바쁘지 않으니까, 지각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어서 일어나", “빨리 먹어라”, “옷 입어라”, “이러다 늦겠다”는 공허한 외침이었다. 이렇게 등원을 마치고 출근길에 오르면 이미 나의 체력은 바닥을 친다.


사실 오랜 시간 동안 아침형 인간을 갈망하며, 여러 가지 도전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책도 사서 읽어보고 운동도 끊어 보고 학원도 다녀보았지만 잠깐일 뿐 그 어떤 것도 나의 생활패턴을 바꾸지 못했다. 나는 그야말로 뼛속까지 저녁형 인간이었던 것이다. 아이 낳을 때 정말 이것만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을 꼭 닮아 나와서 소름이 끼친다는 말들을 부모들은 가끔씩 나눈다. 이런 저녁형 인간의 습관만큼은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나의 이런 근원적 고민은 둘째 치고, 아침마다 영문도 모른 채 소몰이를 당하는 아이들은 무슨 죄인가 싶었다. 잘 자고 일어났는데 아침부터 엄마의 다그침에 밥도 정신없이 먹고 쫓겨나듯이 집을 나서게 만드는 일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면 편안한 아침을 보낼 수 있는데 아이가 더 빠릿빠릿 행동하길 기대하는 건 나의 욕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 천의 고민 끝에 새벽 요가를 결심했다.

5시 반 기상

6시 새벽요가

7시 15분 집에 돌아와 등원 및 출근준비


스스로를 저녁형 인간이라 판단하고, 꿈도 꾸어 보지 않았던 새벽운동을 내가 정말 해 낼 수 있을까 걱정이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생활패턴을 바꿔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고, 요가에 대한 갈증도 있었던 지라 돈을 날리더라도 도전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맹모삼천지교를 유난스러운 엄마들의 치맛바람이라고 줄곧 생각해 왔던 내가 새벽 다섯 시 반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뜨는 것을 보며 나도 만만치 않구나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고통스러우리만큼 힘들었지만,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시간이 조금 넉넉해지니 나도 더 이상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았고, 아이들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등원 준비를 하게 되었다. 사실 시간이 크게 늘어나진 않았지만 요가를 마친 후여서 그런지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 훨씬 편안한 아침을 맞게 되었다. 아이들도 점차 적응하여 지금은 내가 돌아올 즈음에 스스로 일어나 요가를 마치고 온 나를 반겨주곤 한다.


새벽요가를 시작한 지 세 달째에 접어들었다. 이젠 익숙해져서 슬슬 요령을 피우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아직은 새벽운동이 주는 기쁨과 효용이 더 크다. 한 가지 더 좋은 것은 아침에 운동을 마치고 나올 때의 뿌듯함과 그것을 자랑하는 것도 상당히 큰 즐거움이다. ㅋㅋ 사람들이 5시 반에 일어나서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이야기하면 그야말로 갓생을 사는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현실은 수면아래 백조처럼 고통스럽게 끊임없이 물질을 해야 하는 다리지만 또 다른 현실은 물 위에서는 우아한 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엔 새벽운동 이야기를 지인들과 종종 나누곤 한다. ‘나 이렇게 열심히 살아’라는 자랑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열심히 지금처럼 살아보고자 하는 스스로의 다짐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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