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된다는 것

by 하루살이

내가 코흘리개 적에 ‘달려라 부메랑’이라는 만화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다들 미니카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모형 자동차를 만들어 경주하는 단순한 내용의 만화였다. 동네 꼬마 아이들은 만화영화에 푹 빠져들었고, 학교 마치면 너나 할 것 없이 교문 앞 문방구에 놓인 경주용 트랙으로 달려갔다. 지금에야 풋풋했던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그땐 정말 미니카 경주를 하는 세계 대회가 생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열기였다. 심지어 학교에서 준비물로 미니카를 가져와 수업시간에 조립을 했던 기억도 있으니까.


어렸던 탓에 부모님 지갑 사정은 잘 몰랐으니, 학교에서 미니카를 사 오라는 말에 뛸 듯이 기뻤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집으로 달려간 것 같다. 그리곤 엄마를 보자마자 외쳤다. ‘엄마, 학교에서 준비물로 미니카 사 오래. 거짓말 아니고 진짜 선생님이 사 오라고 그랬어.’ 엄마 손을 잡아끌고 동네 문방구를 향하면서 드디어 나도 미니카를 가져 보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비록 그 감정은 오래가진 못했지만.


문방구에 진열된 미니카들은 비싼 일본 제품이 대부분이었는데, 아마도 어린아이에게 쉽게 사줄 만한 가격은 아니었을 거다. 당시에 몇 천 원 하는 미니카 하나면 아이스크림을 수십 개는 사 먹을 정도였으니까. 내가 갖고 싶었던 미니카는 엄마에겐 너무 비쌌던 것 같다. 엄마는 어차피 다 같은데 저렴한 걸로 사자고 했고, 소심했던 나는 엄마에게 별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싸구려 국산 카피 제품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야 주인공이 가지고 있던 미니카를 갖고 싶었지만 엄마의 안 된다는 말이 너무 단호했다.


이건 너무 느리고 주인공의 미니카가 아니라고 항변을 해봐야 아이들의 세계를 알 리 없는 엄마가 이해하지도 못할 것 같고, 우리 집은 가난했으니까. 아쉬운 대로 미니카를 가지게 됐다는 사실에 만족하자. 그런 불만 섞인 포기였는데, 아들의 속사정을 모르는 엄마는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고, 엄마의 주머니 사정을 모르던 아들은 아직도 그때 엄마가 사줬던 싸구려 미니카를 추억한다. 반장네 엄마는 주인공이 쓰는 미니카를 사줬다는 말을 꾹 참고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그런지 주변의 지인들을 만나면 제 자식들 이야기를 한다. 가만 듣다 보면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을 사려고 아침부터 줄을 섰다는 이야기도 하고, 국내에선 동이 나 해외에서 공수해 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고 보니 장난감이 일본어로 말을 해대는 통에 아이가 속상해한다는 웃지 못 할 일화도 덧붙인다. 그럼 한참을 같이 웃으면서도 다들 정말 자식들을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괜스레 대단해 보인다. 만약 나도 아이가 생기면 이 사람들처럼 온 힘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 엄마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한참을 살았지만 나는 부모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으로 살아왔다. 막상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되면 그땐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말은 대부분 비슷하다. ‘너도 자식 생기면 다 똑같아. 남들 하는 건 다 해줘야 되고, 다른 애들이랑 비교 안 되게 하려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사주고, 돈 아껴서 가족여행도 다니고. 돈 들어갈 일만 수두룩해서 정작 술 마실 돈도 없는데, 그냥 자식이니까 그렇게 하게 돼.’


부모라는 이유로 제 자식에게 다 해주게 된다는 말에 그게 과연 행복한 걸까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어릴 적 엄마가 사줬던 미니카를 떠올리게 된다. ‘엄마, 엄마는 왜 내 엄마로 태어나서 나 때문에 속상해하면서 살아?’ 언젠가 생각 없이 엄마에게 물었던 질문에 그때 엄마가 뭐라고 대답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멍청했던 그 물음이 마음에 걸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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