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by 하루살이

눈이 오는 날이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눈사람을 만드는 일이었다.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골목길이나 동네 놀이터에서 가장 새하얀 눈을 뭉치려고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눈사람은 게으른 어린아이를 깨울 정도로 대단한 힘을 가진 존재였으며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할 만큼 어린 생명이었다. 일요일 아침 방영하는 만화영화에서처럼 눈덩이를 이리저리 굴리면 순식간에 커지리라 믿었던 순진했던 시절, 눈덩이는 생각만큼 크게 불어나진 않았고 오기가 붙은 나는 몇 시간이고 눈을 괴롭혔다. 그렇게 한참 푸닥거리를 하고 바라본 것은 눈사람이라기보다는 그저 욕망으로 불어나버린 덩어리였다. 나는 노력이 담긴 그 물건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눈사람은 자고로 하얀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이 처음 내리던 순간에 하얀색이었다면 그것은 영원히 순백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나는 어린 마음에 새하얀 눈사람을 원했으나, 땅에 닿은 눈은 금세 순결을 잃었다. 그러면 또 나는 흙이 묻어 더러워진 눈사람을 순수하게 빚으려고 아침나절 정신없이 밟아댄 주변의 눈을 쓸어 모아 덧대었고, 그게 또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털어냈다. 하지만 내가 짓밟아 버린 눈을 아무리 덧댄다고 다시 온전히 하얀색으로 돌아갈 리는 없었다. 나는 알지 못했기에 헛된 욕심을 부리며 하루 종일 눈사람과 씨름을 했고, 엄마에게 잡혀 집으로 끌려갈 때까지 눈사람은 여전히 어딘가 지저분한 몰골이었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순백의 눈사람과 달랐던 탓에, 나는 온종일 눈사람을 만들었다고 엄마에게 자랑을 하지 않았다.


내가 떠난 자리에 쓸쓸하게 남겨진 눈사람은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며칠이면 뭉그러져 그 삶을 다하곤 했다. 덧대었던 보람도 없이 녹아내리는 과정에서 그것은 점점 지저분하고 더러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아니, 애당초 겉모양에서 속내까지 눈사람은 한 번도 깨끗했던 적은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신경 쓰지 않았지만 눈사람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제 속의 흙과 때를 다 내보이고 스러졌을 것이고, 나뿐 아니라 눈사람의 최후를 바라본 사람들도 그것을 아름답게 여기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다 녹아내리고 나면 약간의 흙과 먼지만이 비가 오거나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쓸어낼 때까지 작은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나의 눈사람은 태어나자마자 흙이 묻고 때를 입었다. 다 녹아 없어지는 순간까지도 그것은 한순간도 순백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눈사람으로 불리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돌이켜 보는 지금도 그것은 여전히 눈사람이었다. 나의 어린 날엔 단지 그것이 부끄러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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