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것들
그 어려운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외치던 저 말은 때대로 찾아오던 선거철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구호다. 현 정권 하에서 전보다 재산이 늘었냐, 먹고살만하냐 등의 의미정도 일게다.
한국민속 대백과사전에서 의미를 찾아보면 살림살이란,
'의식주를 비롯하여 육아, 생업 등 한 가족이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본 가재 용품과 가구, 설비 일체를 가리키는 말'이라 명하고 있다.
'한 가족"이라...
한 가족이란 말이 떠올릴 만한 구성원은 몇일까? 3명? 4명? 5명? 1명?
구성원은 또 어떠한가, 남녀? 남남? 녀녀? 솔로족? 대가족?
시대가 변하다 보니 가족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혼자 사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가 하면 모 유명 연예인은 아빠 없이 홀로 자녀를 가지기도 했다.
가족을 집단화하여 표준으로 삼던 위 선거구호는 요즘 같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 앞에 퇴물이 된 지 오래다.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 불 수 있는 요즘,
틈만 나면 들여다보는 나와 관계없는 타인의 삶은 스스로를 불안과 좌절로 몰고 간다.
그럴듯하게 잘 꾸며진 집, 살림도구 등 사진 몇 장에 우린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는 시대가 돼버렸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이 늪과 같은 알고리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 대는 중이지만...
우리 집엔 전기밥솥이 없는데 몇 달 전, 내 반쪽이가 밥솥을 구매했다.
일본산이라 하는데 밥맛이 기가 막힌다 해서 구매했다고 한다, 모양은 특이했다.
조그마한 항아리 같이 생겼는데 신기하게 뚜껑이 두 개다, 이과 출신이 아니라 어떤 구조인지는 모르겠으나 주관이 강한 잡곡밥 같은 경우 따로 노는 듯한 식감을 잘 잡아주어 탁월하다고 했다.
'좋아봐야 밥솥 아닌가?' 했는데 달랐다.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좋았고 찰지기도 그만 이었다.
밥이 식은 후에도 레인지에 돌리면 처음 밥 맛과 비슷했다. 밥 맛 좋아진 살림살이가 늘은 셈이다.
주말에 소파에 앉았는데 긴(?) 다리를 어찌할 바 모르고 있어 보였는지 자그마한 나무 발 발받침대를
놓아주었다, 그거 하나 올렸을 뿐인데 한결 편해졌다. 집에 있는 살림살이가 대부분 그랬다.
손만 뻗으면 책이 닿을 수 있도록 놓인 소파. 허리의 자유를 선물해 준 로봇청소기.
특히 식사와 관련된 살림살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애착이 간다.
낡아도 차가운 스테인리스 수저보단 나무 숟갈과 젓가락. 쓸모를 잘 모르겠는 여러 음식 도구들은
맛있는 거 해준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마치 수술대 옆 도구처럼 가지런히 놓여 쓸모를 기다린다.
복작거리고 시끄러운 시간이 한바탕 쓸고 간 주방은 조용한 음식으로 식탁에 내려앉고 색을 맞춘
그릇과 음식들은 준비의 요란함과 달리 조용하고 소박하며 따뜻하다.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살림살이를 통해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는 순간이다.
사람이 머무는, 삶이 지속되는 집은 살림살이가 복잡하다.
일회용 도구가 가득한 삶은 자신의 삶도 일회용으로 살면 그만이란 뜻과 같다.
혼자라면 스스로를 위한 예쁜 그릇과 챙겨 먹기 위한 주방도구, 따뜻한 이불 등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도구를 마련하는 게 좋다.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지 말라는 뜻이다.
살림살이는 단순히 늘어만 가는 생활도구가 아니다.
나와 가족의 하루살이가 행복으로 채워질 수 있는 집 안 어느 공간에 놓일 그 무엇이다.
그런 도구를 통해 삶이 투영되고 가족의 하루, 한 달, 일 년 평생살이가 배어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난 이런 도구들과 함께
'살림'을 받고 '살이'를 이어간다.
하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