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데이즈', 완벽한 하루들이라는 애처로운 자기기만

by harutada


배를 타고 바다에 빠져 죽지 않는 방법을 몇 가지 떠올려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항로를 잘 고르거나 날씨와 파도를 잘 만나서 사고 없이 바다를 건너는 것이다. 다음은 으레 그러하듯이 여러 어려움을 겪지만 그것들을 어찌어찌 헤치고 항해를 끝마치는 것이고, 가장 쉬운 방법은 애초에 항해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스카이트리라는 것이 돛이 걸리지 않은 거대한 마스트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돛을 걸 필요는 없다. 파도를 헤칠 필요가 없고, 사실 애초에 바다로 향할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항해에 나서지도 않는 사람이 매일매일 돛의 안위를 확인하는 건, 뭔가를 기원하는 사람이 서낭당의 나무를 대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그렇게 선원은 어색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바람을 맞이하지도 않으면서, 순풍이 배를 바다 끝까지 무사히 바래다주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주인공은 구원을 목표로 하지도 않는 가짜 구도, 기원, 혹은 망각을 위한 노력에 가까운 것을 이어나간다.


그러한 구도는 이제 형식을 지키는 것의 문제가 된다. 구도라는 특정한 형태를 숙제를 하듯이 이어나가는 것이다. 일례로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나 그들의 사정에는 사실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나 상황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구도의 어려움라던가 연극무대의 장치 같은 것들이다. 사람들이 화장실 청소원인 자신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구는 건 그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의 어려움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 가운데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일 뿐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반면에 이런 식이다. 아야가 왜 울먹거렸는지는 관심이 없으며, 그저 그녀의 볼키스에 며칠간 설렐 뿐이다. 타카시가 왜 일을 그만두는지, 돈을 언제 갚는지는 관심이 없고 타카시의 친구를 대신 챙겨줄 마음도 없다. 그저 자신이 공들여 꾸며놓은 하루의 의식이 깨부수어질 위기에 처하자 편리한 전화를 이용해 자연스럽고 솔직한 목소리로 화를 낸다. 니코가 왜 가출했는지는 사실 궁금하지 않고, 자신이 언제 니코에게 카메라를 선물했는지 기억하지도 못한다. 무엇보다 그녀와의 역할극 안에 처해있을 뿐, 그녀가 얼마나 영악한지를 보지 못한다. 스스로에 대한 존중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홈리스 노인에 대해서는, 그의 안위가 실제로 걱정되어서 무엇을 하지는 않는다. 선술집 여주인의 실제 사정에 관심이 있지 않으며 실제로 그녀와 이어질 생각은 없다. 그저 여주인의 사정과 그것에 대한 감정을 자기 나름의 상상으로 각색하고 그 결론에 만족하며 웃음 지어 넘길 뿐이다. 매일 새벽 집 앞을 빗질하는 사람을 알지 못하고 인사를 나눈 적도 없다.


매일 앉던 자리에 무사히 앉고, 술집 주인은 그가 항상 먹던 술과 그날의 한 접시짜리 안주를 가져다 낸다. 그러면 비로소 그는 웃으면서 퇴근하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웃지 못한다. 전날 정해진 정도의 일을 끝내고, 저녁의 일상을 잘 마친 뒤 편하게 잠이 들고나면 그는 문을 나서 하늘을 보며 웃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그는 매일 그러던 것처럼 웃지 못하고 두 캔의 커피를 뽑아서 마셔야 한다.


완전한 삶은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그게 흠이 없는 하루하루의 더하기로 구해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때가 누구에게나 더러 있다. 평생을 그렇게 하기도 하고, 잠깐 그렇게 하다 운이 좋아서 또는 힘든 일을 겪고 또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렇게 하는 것을 그만두기도 한다. 여동생이 오빠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진심 어린 선물을 건네던 것, 그리고 샌드위치를 먹던 은행원이 남자를 의아하게 바라보던(혹은 주인공 스스로 찝찝함을 느끼던) 시선이 그런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남자에게는 그래서 뭔가가 더 필요했던 것으로 짐작한다. 과거의 사진들은 기억이라기보다 미래에 대한 담보와 같다. 그렇지만 완벽한 항해기록이 완벽한 내일의 날씨를 보장하지는 못하며, 그게 꿈속에서의 항해기록이라면 더 얘기할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는 노래가 마치 연극의 지문이나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과 같이 느껴진다. 노래는 시이기도 하니까 어떻게 보면 시적인 지문, 음률이 있는 내레이션인 것이다. 그래서 그게 더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꿈속에서든, 사진 속에서든, 아니면 남자가 직접 바라보는 장면에서든 나무의 그림자는 마치 상상 속의 돛을 생각나게 한다. 돛은 배가 나아가게 도와주는 것이면서 두려움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바람 너머를 보고 싶기에 남자는 상상 속의 돛을 펼친다. 두려움은 가리고 배는 나아가게 도와주는 그런 완벽한 돛. 그런데 그러한 돛은 모순이기에 어렴풋한 이미지 그 이상의 것을 주인공에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 돛은 남자가 기억과 생각에 직면하는 걸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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