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력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삶의 의미를 창조하는 감상력에 대해

by 하루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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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조곤조곤 내리는 날이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빗소리를 배경 삼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를 조용히 따라 부르며, “엄마는 비 오는 날이 좋아”라고 말하던 어렸을 적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렸을 적, 나의 어머니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해서 비를 감상하고, 봄비에 알록달록 꽃이 활짝 피어있는 날이면, 늦잠 자느라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를 깨우려고 예쁜 유리그릇에 꽃잎을 동동 띄워서 예쁜 걸 보며 잠을 깨라고 보여주시곤 했다. 하늘의 달과 별이 예쁘고, 노을이 지는 석양이 아름다우며, 그것을 노래하는 노래 가사마저 아름다움을 알려주셨다.


세상에는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 이토록 많다는 걸 어쩌면 나는 엄마를 통해서 알게 된 것 같다.

엄마의 눈에는 매 계절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에 아름답고 멋지고, 놀라운 것들은 가득했고, 나도 옆에서 그 눈을 닮아갔다. 40년을 넘게 봐온 계절의 변화에 대한 모습은 나이와 상관없었다.


덕분에, 그걸 보고 자란 나는 현실의 어려움이 어떻든 간에 잠시 멈춰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와 낭만정도는 챙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삶의 태도에 영향을 준 엄마의 감상력


생각해 보면, 엄마는 삼 남매 중 내게 유난히 그런 감상하는 모습을 꽤 많이 보여주었던 것도 같다.

어쩌면 가장 무뚝뚝하고, 말이 없고, 생각을 밖으로 꺼내보이지 않는 내가 걱정되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너무 서투르다 못해, 집에 손님이 오면 엄마 뒤로 숨어버리고는 입을 꾹 닫아버리는 내가 아마도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난히 엄마의 그런 모습을 많이 보고 자랐고, 그 모습이 스며들어서인지 몰라도, 작은 계절의 변화를 더 크게 받아들이고, ‘가을’, ‘겨울’, ‘봄’, ‘여름’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곱씹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서도 계절을 잘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의식(?)을 챙기며 스스로도 일상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고 세상에 나만의 시선으로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엄마가 보여주었던 일상의 감상은 어떤 단순한 습관 같은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알려주었던 것 같다.



이렇듯 엄마의 감상은 나에게 일종의 교육이었고 다행히도 나는 표현은 서툴러도 ‘감상’은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고등학교 친구가 “넌 진짜 소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안다. 그리고 그게 네 가장 큰 장점이다”라는 말을 꽤 자주 해줄 정도로.


물론, 항상 그런 일상의 소소함을 잘 챙길 수는 없었다. 만약 그런 것들을 챙기지조차 못할 정도로 바쁘다면, 그건 정말 나의 삶이 팍팍해졌다는 증거였다.





내가 생각하는 감상력


최근, 누군가 삶에서 '감상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을 때 왜일까, 무언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감상력'이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상'이란 내 삶의 태도를 관통하는 키워드였고, 감상의 태도마저 잃어버렸던 시기엔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여겨질 만큼 내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감상할 줄 아는 태도란 무엇일까? 내가 정의 내린 '감상력'은 다음과 같았다. 사실, '감상'이라고 하면 영화나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 분야의 어떤 작업물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감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것,

아름다운 상태의 것을 어디서든지(일상이든지, 조형물이라든지, 어떤 작업물이라든지) ‘포착’할 수 있는 것. 혹은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아름다운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능력.

한편, 이러한 감상은 창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내가 생각하는 ‘감상’이란 좋은 것을 좋다고 여길 수 있고, 그것에 영감을 받고, 자신이 갖고 있는 배경지식과 연결 지어 ‘의미’를 도출해 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주변의 작은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내 일상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기회를 그만큼 더 많이 갖게 해 주었다.






심리학적 강점으로서의 감상력이란


한편, 심리학에서는 ‘감상력’이라는 성격 강점을 분류하여 하나의 성격 특성, 강점의 개념으로 분류하는 체계가 있다. 여기선 감상력을 단순히 자연이나, 예술 분야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수학, 과학과 같은 학문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경험,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까지도 감상의 대상으로 정의한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도덕성, 재능, 그런 것의 반짝반짝함을 느끼고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는 능력.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뭘 잘하는 지도, 어떤 강점을 가졌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던 시절 내 옆에서 ‘넌 이런 걸 잘해’ 혹은 ‘이런 걸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라며 나에게 한 마디 씩 던져주던 사람들. 그런 말들은 나에게 남아 알 수 없는 미로 같던 내 안의 지도를 조금씩 완성시키는 힌트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런 말을 던져주었던 사람들은 세상의 한 구성요소로서의 나를 조금이나마 ‘감상’ 해준 것이 아닐까 싶다.








‘세상은 아름답다’는 생각


위의 정의를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이런 감상력은 모두 ‘세상은 아름답다’라는 공통된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아름다우니, 그걸 구성하는 모든 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연을 구성하는 과학법칙이든, 수학이든.


우주 안에 있는 모든 현상과 개체가 아름다울 수 있는 가능성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쉽게 포착할 수 있고, 그것을 포착하여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또 한 번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어차피 잠깐 머물다 가는 세상이고, 그래서 삶은 무의미하다고, 그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시도조차 무의미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살아가는 것’ 자체, 그리고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세상의 것들을 의미의 여부에 관계없이 ‘아름답다’고는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끼다 보면, 내 삶은 살아가고 싶은 이유가 많아지는 풍요로운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감상력은 의미를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