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연결되고 싶어한다.
집에 다 못 쓰고 몇 페이지 남아도는 공책들이 집 책장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던 어느 날, 이걸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엄마는 이 쓰지 못한 페이지를 모아서 두꺼운 새 노트를 만들어주면서 친구들과 '교환 일기'를 쓰는 건 어떻겠냐고 하셨다. 아마도 엄마의 학창 시절, 친구들과 썼던 그 추억에 생각나서 제안해 본 것이겠지. 친구들이 좋아할까, 반신반의했지만 나름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한 규격에 맞지 않은 삐죽빼죽 튀어나온 두꺼운 그 노트에 나는 '교환일기'라는 이름을 붙이고선, 다음 날 학교에 가져갔다. 우리 여기에 돌아가며 일기를, 글을 무언가를 쓰자고.
뭔가를 해보자고 제안하는 건 처음 시도해 보는 거라서 그런지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새 반 친구들은 돌아가며 그 일기장을 자신의 가방에 넣고 집에 가서, 일기를 쓰고, 비밀을 공유하고, 또 다른 친구의 손에 넘겨줬다. 그렇게 그 일기장은 조금씩 공동의 애정이 담긴 물건이 되었고, 일기뿐만 아니라 만화, 그림, 투표 등 우리끼리만의 일종의 콘텐츠를 만들며 마음껏 생각을 표현하는 곳이 되었고, 그것은 우리에게 재미있는 놀이거리였다. 그래서인지 그 두꺼운 공책은 금방 너덜너덜해져서, 교환일기 버전 2를 만들어야 하는 날이 금방 찾아왔다.
교환 일기장을 만들 땐 우리끼리의 룰이 있었다. 바로 집에 쓰다 만 공책들을 한 데 모아 엮어서 만들 것. 사실 그 규칙은 내가 만들었는데, 교환 일기를 시작하게 되었던 그 시작점을 일종의 전통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새 공책을 사서 만들면 우리가 처음 시작했던 그 두꺼운 일기장을 만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페이지를 넘길 때 그때 그때 달라지는 형식의 자유로움도 부족했던 것 같다. 뭐, 초등학생이 거기까진 생각은 못했겠지만 어쨌든 새 공책의 교환 일기장은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생각보다 그 교환 일기의 문화는 꽤 오래 지속되어서, 우리는 아마 4권 이상의 일기장을 만들었던 것 같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친구들에게도 이 일기장은 특별한 것이 되어 있었고, 누군가가 일기장을 잃어버렸을 때는 그 안에 담긴 추억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다 함께 아쉬워했다.
물론 그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점점 일기를 쓰는 빈도가 줄어들고, 한두 명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흥미가 떨어지자 이내 더 이상 일기장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었다. 어떤 것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표현을 잘하던 친구의 전학도 한몫했던 것 같고, 결정적으로는 '네이트온'이나 '싸이월드'로 집에 가서도 너무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기술의 발달이었다.
그때 우리의 '자기표현' 방식은 각자의 미니홈피를 꾸미는 곳으로 이동했다. 아날로그 교환 일기와는 다르게, 배경음악, 캐릭터, 게시글, 방 꾸미기 등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더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한편, 공유 일기장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제공하는 '공유 다이어리' 기능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교환 일기를 쓰던 추억은 점점 잊혀서 한 때 내가 그런 것을 주도해서 만들었다는 기억조차 못하고 있을 때쯤, 10년, 아니 거의 20년 후 고향 친구의 입에서 그 '교환 일기'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그때 쓰던 교환일기장, 그거 아직도 우리 집에 있는데."
'아참, 그런 걸 했었지. 왜 했었더라?...' 점점 무관심 속으로 사라졌던 그 일기장이 사실 우리 집엔 남아있지 않았다. 제대로 간직하지 못한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알고 보니 몇몇 고향 친구들 집에 한 두 권씩 그 일기장이 여전히 있다는 걸 알게되었고, 그래서인지 내가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그 일기장의 존재를 누군가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시작했던 교환일기가 1년 정도 지나서 점점 모두의 관심이 줄어들고 흐지부지 된 것에 대해,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큰 아쉬움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고, 그것을 회피하고자 금방 잊어버리고 주의를 다른데에 돌리고 말았던 것이다.
놀랐던 건, 생각보다 친구들은 그 교환일기에 대해 꽤 '소중한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가끔 만나는 고향 친구들 입에서 그 교환일기장이 나올 때면 뭐랄까,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아주 까마득하게 먼 일로 느껴졌다. 어쩌면 그 일기장을 어쩌다 보니 집에 간직하게 되어버린 친구들은 어쩌다 한 번 일기장을 열어보면서 더 소중하고 생생한 추억으로 여기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일기장을 한 번 더 시도한 적이 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나는 어쩌다 보니 2학년 때 반 집행부 일원이 되었고, 아마 나는 '문화국'이라는 이름의 부서의 일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뭐, 나름 반 운영의 일로 '새내기를 부탁해'와 같은 새내기 가이드 책도 만들고, 네이버 밴드와 같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도 만들고, 이런저런 활동들이 있었지만 여기서도 나는 '교환일기'를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공유 일기장'이었다.
그냥 두꺼운 노트 하나 사서, 과방 테이블 한가운데에 펜과 함께 둔 것이 전부였다. 왜 하자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각자의 생각은 많아 보이는데 여기에라도 적어보면 좋지 않을까도 있었고, 누군가 다녀갔다는 방명록으로 쓰일 수도 있을 것 같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딱히 운영 리소스가 필요한 일은 아니었던지라, 결국은 '그냥'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도 생각보다 지속이 잘 되긴 해서(지속이 된 건지, 방치가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약 4년 전 찾아갔던 과방에는 새로운 공유 일기장이 놓여있었고, 얼굴을 모르는 새내기 혹은 까마득한 고학번의 방명록, 고민 많은 일기, 오늘 들은 수업에 대한 생각 같은 것들이 쓰여있었다. 그로부터 또 약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과방에 그 노트가 놓여있을진 모르겠지만, 당시 그 문화가 지속되는 걸 보면서는 약간의 뿌듯함을 느꼈다.
교환일기의 첫 시작은 엄마의 학창 시절 추억에서 비롯된 제안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이후엔 아마도 '연결되고 싶은 욕구'에서 계속되지 않았을까.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어한다.
타인과 '연결되고 싶다'는 이 욕구는 누구나 피하고 싶은 감정, '고독'에서 시작된다. 혼자 있는 시간 속 온전히 혼자라는 사실은 고독감을 넘어 자신이 너무나도 하찮고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타인과 소통하고, 하나가 되고 싶어하고, 어떤 공동체 안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을 자연스레 갖게 되는 것이다.
교환일기를 쓰듯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기를 쓰고, 그로부터 오는 반응을 듣고, 생각을 나누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때로는 그런 타인의 반응을 얻을 기대를 하며 글을 쓸 때 이미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까지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또 교환 일기 비슷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