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밖으로 내려올 줄 알기
"우리는 결국 살아가면서 그럴듯한 '역할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있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문득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에 지쳐서였을까.
만약 누군가가 갑자기 나에게 '너는 이제 더 이상 학생이 아니야'라고 한다면, 난 무얼 해야 할까? 갑자기 주어진 그런 자유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역할과 그 역할에 부과되는 각종 의무와 특권들이 사라진다면, 그동안 내가 느꼈던 못난 것 잘난 줄 알았던 것들이 순식간에 아무 의미가 없어지겠지.
결국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인데, 왜 서로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스스로를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대학생'이라는 역할을 받아들이고 있어서일 테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겠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는 어떤 역할을 가지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고, 때로는 그 역할에 온 힘을 다해 몰입하는 것일까? 그냥 '나'로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답은 '불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유는 외려 개인에게 불안을 동반하고, 우리는 그 불안을 덮기 위해 각자의 가면을 쓰는 선택을 한다. 세상은 수많은 역할극으로 꾸며져 있고, 사회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어떠한 '배역'을 맡아 연기하기를 요구한다. 그것이 사람으로서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스무 살 무렵, '학생'이라는 역할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가질 가능성이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 상태는 오히려 자유보다는 불안을 더욱 크게 느끼게 만들었다. 대학교 입학 전까지는 그동안 '입시를 준비하는 고3 학생'이라는 역할에 너무 몰입했었는지, 그 역할이 끝나고 새로운 환경이 주어지자 남은 건 공허함과 허무함의 감정이었다. 거의 3년을 쏟아부었던 내 인생의 전부였던 한 가지 중대한 역할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홀로 선택해야 했던 대학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그 무엇 하나 알지 못했다. 그렇게 스무 살에 덜컥 주어진 자유는 내게 오히려 불안감을 키웠다.
그런 불안감으로부터 오히려 나는 누군가 나에게 '너는 이 일을 하는 게 맞아'라며 세상에서 살아갈 역할을 정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막연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 개개인은 오히려 그 '자유'로부터 '불안'을 느끼고 세상의 시스템 속으로 회피하게 된다는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맨얼굴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한 사회심리학 연구에서는, 행복한 사람일수록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가 많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만큼 나에 대한 정체성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기에, 한쪽에서 실패 경험을 겪어도 다른 한쪽에서 성취하며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너무 한 가지 역할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랬다. '일하는 나'를 일상에 끌고 오고, 일과 일상을 분리하지 못할 만큼, 나의 일이 나를 대변해야 하고, 나를 정확히 나타낼 수 있는 업을 갖고자 했었다. 나의 직업과 역할에서 오는 책임에 과한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에 지쳐서 오히려 반대로 무력감을 느끼기를 반복했다.
물론 책임을 다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의미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결국 그러한 책임을 부과하는 역할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주어지는 하나의 배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그 배역에 과몰입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갈 필요까진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각자가 몰입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혹은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 혹은 모종의 이유로 그 배역을 너무나도 잘 소화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그 역할은 나의 거대한 일부분이 되어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역할과 나를 분리하여 나를 있는 그대로 돌아보고 때로는 새로운 가면을 써보기도 하고, 새로운 무대를 구경해보는 것은 어떨까?
퇴사를 하고 6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약 십 년 전의 대학생 때와 같이, 또다시 불안을 동반하는 자유와 함께 수많은 가능성을 손에 쥐고 있다. 몇 개월 동안 그 수많은 가능성들을 들여다보며 알게 된 것은, 나는 그저 어떤 하나의 배역에 평생을 몰입하며 살고 싶다기보다는 세상이라는 무대가 궁금하고, 무대 밖도 궁금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각각의 배역이 써야 하는 가면은 어떤 것인지, 이 역할극의 가면은 어떻게 생겼는지. 10년 동안 세상을 경험했지만, 더 더 궁금한 것들 투성이다.
또한, 이렇게 넓은 세상에서 하나의 무대 위에서 하나의 가면만 쓰고 싶지는 않다. 이 역할 놀이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자기가 서있는 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가면을 너무 오래 써서 얼굴에서 벗겨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가끔 맨얼굴로 무대 밖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 관객석에 앉아 나의 연기를 돌아보고, 누군가의 연기에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하며.
아마 우리는 맨얼굴로 살아가기엔 너무 불안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각자에게 맞는 가면을 골라 쓴다. 다만 그 가면이 나를 완전히 가리게 되지 않도록, 가끔은 무대 밖으로 내려와 내 얼굴을 확인해 봤으면.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