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개발자가 되셨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어릴 땐 손으로 만드는 것들, 조금 더 자란 후에는 사진, 영상, 공연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일을 흥미롭게 여겼다. 개발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첫 개발 프로젝트에서 내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기획이 디자인을 거쳐 하나의 서비스로 기능하는 전 과정을 경험했고,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가 웹이라는 공간에서 하나의 제품으로 동작하고, 실제로 누군가에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개발에 큰 매력을 느꼈다. 나의 상상력이 살아서 움직일 수 있다니.
그런데 개발이 '업(業)'이 된 이후에는, 내가 개발을 시작할 때 왜 그렇게 설레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의 반짝임은 흐릿해졌고, 왜 개발을 시작했는지보다 어떻게 더 잘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실력, 속도, 완성도, 협업—모든 것이 기준이자 과제가 되었고, 표현이 아닌 해결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수단이 목적이 되는 순간의 공허함. 그걸 왜 느끼는지는 알 수 없었다.
-
IT 업계에서는 개발자나 디자이너를 흔히 ‘메이커(maker)’라고 부른다. 나 역시 그중 하나로, “왜 개발자가 되었나요?”라는 질문에 늘 “무언가를 만드는 게 좋아서요”라고 답해왔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주변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좋을까?’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필요에 따라 기능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서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목표는 늘 명확했고, 정해진 방향에서 최대의 효율을 추구했다. 물론 ‘메이커’로 일하는 삶이 마냥 수동적이거나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일을 하면서, 내가 본 많은 메이커들은 목표를 향해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자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성장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자부심을 가지며 일하는 멋있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개발자로서 만든 것들에는 내 감정이나 세계관, 생각이 직접적으로 담긴 적이 거의 없었다. 또, '무엇'을 만드느냐보다는 '어떻게'에 많은 집중을 해올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일과 별개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표현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들. 그때의 나는 단순한 ‘메이커’가 아니라, 나만의 언어와 방식으로 생각을 드러내는 ‘크리에이터’였다. 그 때에는 달라진 눈빛으로 컴퓨터 화면을 보며 열심히 타이핑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들고 싶다는 욕구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감각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그걸 잘 몰랐다. 그저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고만 생각했지, 왜 만들고 싶은지까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생각, 내 시선, 내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개발은 그 수단이었고, 웹은 표현이 이루어질 하나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
몰아치는 야근, 바쁜 업무에 치였던 시기에 문득 음악을 듣다 ‘예술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엔 취미도, 좋아하던 것들도 잊고 일만 하면서 나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컸다. 그들은 자기를 잃지 않고, 표현하며 사는 구나. 표현하는 것이 곧 그들의 일이자 삶이겠구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세계가 단단해지고, 확장되겠지.
우리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삶에서 예술, 창조를 조금씩 추구하게 되는 게 아닐까. 에리히 프롬의『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말하듯, 창조적인 삶을 살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를 느낄 수 있으며, 창조성은 예술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사람에게 열려 있기 때문에.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깨달은 것을 정리하자면,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고 있는 와중에도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 즉 ‘창작’에 가까운 일들을 놓아버리는 순간 삶은 공허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것을 만들고 있는가' 생각해보자. 제작에 가까운지, 창작에 가까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