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가위 눌리는데 누군가 집 비밀번호를 눌렀다
혼자 아픈 서러움, 혼자 죽을 수 있다는 외로움
혼자 사는 사람이 제일 서러울 때는 아플 때라고들 말한다. 지난주는 내내 아팠고, 그래서 내내 서러웠다. 낮잠을 자다가 가위까지 눌리는 바람에 원래 서러울 것보다 좀 더 서럽기도 했다.
온몸에 불편감은 일요일 저녁부터 느껴졌다. 목이 붓고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는 게 심상치 않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 1시, 다시 깼다. 몸이 뜨겁고 머리가 빙빙 돌아서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 병원에 가니 열이 39.2도였다. 코로나나 독감은 아니고 편도가 많이 부었다고 해 약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낫지 않았다. 더 센 약을 받아왔다. 새로운 약은 먹을 때마다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목을 낫게 하려다 되려 어지럼증이 생겼단 게 난감했고, 나이를 먹어서인지 증상이 잘 낫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심란하기도 했다. 결국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혼자 사는 원룸에 누워 앓다가 깜빡 낮잠에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자다 깼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위에 눌리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가위에 잘 눌리는 편이라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다른 때는 손끝 발끝에 힘을 주고 조금씩 근육을 움직이면 스르륵 가위가 풀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몸이 딱딱한 껍데기 안에 꽁꽁 결박되어서 그대로 돌이 된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내 원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네 자리 숫자를 입력하는 키패드 소리와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경고음이 여러 번 반복됐다. 혼자 사는데 나 말고 내 원룸 비밀번호를 누를 사람이 누가 있다고? 섬뜩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의식만 있을 뿐 몸은 무생물처럼 딱딱해졌으니까. 문밖의 누군가가 내 공간에 침입해 물건을 훔치고 나를 해쳐도 저항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대로 못 깨어나면 나는 혼자서 죽겠구나. 극도의 불안과 공포가 들이닥쳤고, 다시 힘껏 몸을 움직였다. 드디어 가위가 풀렸다! 순간 비밀번호를 누르던 문밖의 소리도 순간 잠잠해졌다.
바닥에 누운 채로 멍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집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뭐지? 뭐였을까?
나는 가위에 눌릴 때면 종종 환청을 듣는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가 내 고막 속에서 연주를 하는 듯 정교하고 아름답지만 끔찍하게 큰 피아노 소리가 귓가에 울렸었다. 조금 더 커서는 아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엄마일 때도, 아빠일 때도, 친구일 때도 있었다. 혹시나 싶어 주변인들에게 내가 잘 때 들렀었는지를 물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사실 내 원룸에 접근하려던 소리가 진짜인지 환청이었는지는 또렷하게 분간하지 못하겠다. 진짜였을 수도 있지만 육신과 정신이 동시에 약해진 상태에서 가위에 눌리다 보니 평소보다 예민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느낀 감정, 그러니까 혼자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서러움, 외로움만큼은 진짜였다.
1인 가구가 된 지 3년 차. 지인들은 종종 혼자의 삶이 외롭지 않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과거의 나는 "자유롭게 있는 걸 좋아하고 외로움도 잘 느끼지 않는 성격이라 만족한다"라고, "영영 혼자 살면 좋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혼자 사는데 아프고, 가위까지 눌리고, 거기에 누군가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까지 듣게 되면서 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어쩌면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도 괜찮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영영 혼자 살면 좋겠어"라고 지인들에게 말하고 다녔던 과거의 발언들을 철회하고 다닐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