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의 미래는 왜 어두운가?

통신/IT 이해하기-1

by HARU의 하루
썸데이, 클라우드베리, 쿠키즈, 스티씨,
포켓닥터, 에어아이즈, 채팅, Narle, 쇼닥...


상기된 서비스(앱) 중에 하나라도 써본 분이 있을까요? 아니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묻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습니다. 관계자가 아니고서야 아마 99%는 처음 들어 봤을 거라 생각이 드네요. 물론 하루에도 수천 개의 앱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대부분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후 사라지기 때문에 '알 턱이 있나? 모르는 게 대수인가?'라며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1인 개발자나 벤처에서 급하게 만든 앱들도 아니고 전체 매출의 합이 약 60조 원에 이르는 대기업에서 큰 투자를 통해 개발/출시한 앱들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지 않을까요?


위에 열거한 앱들은 그나마 IT업계에서 리딩 업체를 자처하는 통신 3사가 지난 5년간 출시했던 서비스 들 중 극히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예상하시듯 상당수는 이미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물론 지난 10년 넘게 많은 투자를 했던 대기업들이 출시한 서비스들 중에 결제/쇼핑 관련 앱을 제외하고는 소비자들 삶에 깊숙이 들어온 서비스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에 그렇게 비난받을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10년간 토스, 배달의 민족, 마켓컬리 등 새롭게 시장에 나와 주류로 자리 잡은 서비스들 또한 많습니다. 비슷한 경쟁 서비스가 있었던 경우도 있고 틈새시장을 잘 공략해 성공한 경우도 있죠. 이들의 아이디어와 역량을 폄하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항상 회사 내부에선 '아 저거 내가 생각했던 건데', '전에 얘기했던 건데 위에서 잘려서' 등과 같은 불만 어린 피드백들이 많습니다. 왜 벤처에서는 되는데 대기업에선 안될까요? 대기업은 그렇다치더라도 IT업계에서 맏형을 자처하며 많은 훌륭한 인력과 자본을 갖고 있는 통신사들은 왜 성공적인 서비스를 만들지 못하고 있을까요? 오늘은 이에 대한 근본적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통신사의 사고를 지배하는 구 가지 큰 착각


100% 정확한 설명은 아니지만 이 분야를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처럼 '클럽'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홍대에 아주 큰 클럽이 있고 그 클럽에 들어가려면 국가에서 공인한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통신사는 클럽에 입장할 수 있는 '신분증'을 발급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국가로부터 임대받은 사업자입니다. 즉, 클럽에 가려면 무조건 통신 3사 중 1개사의 신분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과거엔(2009년 이전) 이 클럽마저도 통신사들이 하나씩 만들어서 운영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SKT클럽에 가려면 SKT 신분증을 얻어야 했고 KT 클럽에 가려면 KT신분증을 얻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2004년부터는 그나마 신분증이 호환이라도 돼서 SKT에서 발급받은 신분증을 그대로 활용해 KT 클럽에 갈 수 있게 되었지만(번호이동제) 여전히 신분증을 발급할 수 있는 사업자는 지금까지도 3개에 불과합니다.

번호가 자부심이던 시절


그 결과 클럽이 재미있다고 소문이 나면 날수록 신분증이 필요한 사람들은 많아지게 되고 통신사들이 제공하는 신분증과 그 신분증을 담는 케이스의 가치는(번호의 자부심 011, It's different SKY 등)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PC환경에서는 이미 PC통신이 인터넷 시대로 전환되면서 재미있는 클럽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게 보편화되어 있었지만 모바일 시장에서 만큼은 통신사가 정해놓은 클럽과 스테이지에서만 놀아야 하는 불편함이 지속된거죠. 이때부터 통신사들의 첫 번째 착각이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신분증을 쓰고 있으니 '통신사가 이 클럽 문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착각'말이죠.


두 번째 착각은 5,000만 명이 넘는 신분증 발급 고객들이 '자사 서비스에 대해 만족도가 높아 쓴다고 생각하는 착각'이입니다. 그래서 언제든 통신사가 좋은 조건만 제시(offer)하면 소비자들은 우리 서비스를 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죠. 이 착각은 고객 충성도(Loyalty)와 만족도(Satisfaction)간의 관계에 대한 오해에서 발생합니다. 마케팅 이론에서 흔히 말하는 고객 만족도를 높여 충성고객을 만들자는 것에 대한 결과론적 해석인데, 통신사에 대한 충성도(장기 사용 등)가 높은 이유인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인데 이를 무시하고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대표적 사례가 통신/철도/항공 사업으로 독과점으로 인해 고객 충성도는 높으나 만족도는 낮음(Putting the Service-Profit Chain to Work, Harvard Business School 참고))



버리지 못하는 착각의 결과


이런 착각들은 대부분 과거에 네트워크만 잘 깔면 돈을 벌던 시대를 거친 현 임원진 세대에서 두드러집니다. 지금 소비자에게 필요한 건 단지 통신사에서 발급해주는 신분증(요금제)과 신분증 케이스(최신 스마트폰)만 필요할 뿐이고 심지어 어느 통신사 인지 조차도 더 이상 중요치 않은 상황에서도 아직 '그 신분증에 어떤 혜택을(할인 또는 추가 데이터 등) 주면 다시 우리 클럽으로 오지 않을까?'라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5,000만 명이 넘는 고객들이 아직 통신사에 있는데 그 고객들이 경쟁 서비스 말고 통신사의 신규 서비스를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가 의사결정의 기본적인 스탠스입니다.


다른 관점으로 표현해보면 고객들은 예나 지금이나 '이 시간엔 어느 클럽이 놀기 제일 좋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내일 먹을 것이 생각나는 시간에는 '마켓컬리 포차'나 '로켓프레시 주점'을 갈 것이고 심심해서 만화가 보고 싶으면 '카카오 페이지'나 '시리즈' 포차를 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기업의 의사결정은 '어떤 가치를 주는 클럽'을 만들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줘야 하는데 통신사 내부에서 신사업 관련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대부분은 기존 '신분증 비즈니스와 어떤 시너지를 낼 것인가?'에 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단 얘기입니다.


아래는 최근 기사화된 통신 3사의 폐쇄형 커머스 관련 보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내용의 전형적 예시이기도 합니다. 읽어보면 그럴듯해 보이죠. 엄청 큰 할인이 있거나 기사에서 말하듯 정말 필요한 물건을 제때 추천해주거나 하는 경우라면 한 두 번은 소비자가 구매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과연 지속가능할까요?

http://www.bloter.net/archives/532126

통신 3사의 고객은 통신 3사의 고객이자 이마트, 쿠팡, 마켓컬리의 고객입니다. A라는 고객이 찾는 B라는 물건에 대한 수요를 더 정확히 예상하고 더 낮은 가격에 가져올 수 있는 사업자는 어디일까요? 통신사일까요? 아니면 마켓컬리일까요? C라는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쿠팡보다 낮은 가격에 통신사에 납품할 수 있을까요? 통신사가 고객에게 날려주는 SMS가 더 고마운 정보로 느껴질까요? 쿠팡에서 날아오는 앱 푸시에 담긴 할인 쿠폰이 더 반가울까요?


통신사에서는 '우리 고객'에게 뭔가를 해주면 쓸 거야라는 착각과 아직 그 공식이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의사결정의 조합으로 위와 같은 서비스가 출시되고 비용은 비용대로 쓰고 실적은 실적대로 망하고 사업을 종료하는 게 매년 반복됩니다. 그리고 매번 실패에 대한 굉장히 새로운 핑계를 대죠. 통신 3사가 힘을 합쳐 옆 동네 핫한 헌팅포차와 경쟁을 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아직도 망해가는 옆 통신사의 클럽만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으신가요?


시너지를 말하는 자가 '배신자'


잊지 마라 바지니와 회의를 주선하는 자가 바로 배신자라는 것을.
영화 대부의 한 장면. 출처 : IMDB


영화 '대부'를 좋아하는 필자의 생각을 대입해본다면 '시너지'를 말하는 자가 바로 통신사를 망치는 '주범'입니다. 이 '시너지'라는 마법의 단어가 현재 통신사 내부에서 진행 중인 많은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그 시너지의 주체는 물론 각 사마다 보유한 수 천만 명의 고객입니다. 물론 '시너지'가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매우 중요하죠. 단지 결과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항시 과정에 그 시너지를 넣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해를 위해 간단하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현재 성과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가정하에 '배달의 민족'을 SKT에서 운영 또는 소유하고 있는 서비스라고 생각해보시죠. 현재 '배달의 민족'의 성과를 보면서 어느 누가 SKT와의 시너지를 얘기할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당연히 배달의 민족만으로도 충분히 Carrier-free 하게 잘 운영하고 있고 수익을 내고 있는데 왜 굳이 SKT와 연관 지어 대상을 줄일 필요가 없습니다. SKT의 연결실적이나 지분가치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분명하고요. 자! 이제 KT에서 '배달의 천국'이라는 배달앱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시죠. 경쟁사는 '배달의 민족'인데 시작부터 KT 가입자와 어떤 시너지가 있을지부터 찾아야 할 겁니다.(아마 KT 가입자는 배달수수료 무료 혹은 50% 감면). 그렇게 시작된 '배달의 천국'서비스가 과연 '배달의 민족'을 이길 수 있을까요? 100%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 잘 나가던 네이트온이 SKT와의 시너지?를 위해 스마트폰 대응을 늦춘 후부터 나락으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게도 별 시너지 고려 없이 인수한 하이닉스는 SKT의 효자가 되어있죠)




작년 네이버 매출이 5.3조 원, 카카오가 4조 원 수준으로 둘 다 합해도 매출 기준으로는 통신 3사의 1/6 수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시가총액은 두 회사가 91조 원으로 통신 3사의 31조 원('21.1월 말 기준)의 3배가 넘죠. 그럼에도 내부적으론 아직 네이버나 카카오를 별거 아닌 회사로 보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특히, 미래 먹거리라고 말하는 빅데이터나 AI 분야 쪽에서도 말이죠. 운이 좋았다고 폄하하거나 무임승차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식의 비난과 우리도 잘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 있습니다. '사고가 행동을 지배한다'는 말처럼 통신사에 박혀있는 DNA가 바뀌지 않는 한 여전히 성공은 먼 얘기가 될 겁니다.


물론 통신사의 주력 비즈니스인 '월 정액형 신분증 발급' 비즈니스는 아직 탄탄하니 저런 서비스가 몇 개 실패한다고 통신사의 미래가 없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냐는 의견이 있을 수 도 있습니다. 주식시장에서 기업가치를 인정받진 못하겠지만 지속적으로 수익은 낼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과 같은 얘기이자 만약 주력사업인 '신분증' 비즈니스 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온다면 대안은 없단 얘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일례로 Space X의 글로벌 위성 인터넷 서비스 프로젝트인 '스타링크'프로젝트는 2020년 중반까지 약 12,000개의 위성으로 전 세계를 커버할 예정이고 2021년 1월 25일 기준 이미 1,000개의 위성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물론 통신사와 경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에 100% 대체는 아니지만 1%씩이라도 점유율을 뺏길 수 있는 환경은 조금씩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아주 먼 얘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스타링크 홈페이지에서 이미 서비스 예약이 가능하다.


스타링크에서는 이미 2022년부터 한국을 서비스 대상 국가로 넣어두고 있습니다. 물론 규제 등으로 전면적 허용은 되지 않고 당분간 큰 접시 안테나가 필요해 개인용으로 사용은 어렵겠지만 10년 뒤는 어떻게 될까요? 하나의 구멍이 뚫리면 담벼력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간 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해왔습니다.


여전히 '신분증' 비즈니스만 잘 잡고 있으면 통신사의 미래가 안정적이라고 생각되시는지요? 통신사가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를 성공시켜야 할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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