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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r 24. 2021

[뚜벅뚜벅, 다시 제주] 제주의 저녁

(셋째 날 #04) 제주에서는 고등어회를 먹어야 한다.

이미 비 맞으며 거의 20km를 걸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다리가 너무너무 무거운데 배차 시간을 보니 반쯤 뛰어가야 겨우   다.

'원래 가려고 했던 카페 [동백]에서 다음 차까지 잠시 쉬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쫄딱 젖어서 카페에 앉아 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놓치더라도 일단 가보자.’

하지만 일분 만에 벌써 후회가 된다.

1km를 뛰어가서 버스 탈 생각을 하다니 고등학교 체력장이 따로 없다.

조금 과장하자면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뛰었다.

간신히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식사는 생각도 안 날 정도로 지쳤다.

점심을  늦은 시간에 많이 먹고도 했고.

바로 숙소로 돌아가 씻고 침대에 널브러져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미 저녁 식사를 예약해뒀다. 게다가 고등어회다.

제주 현지 사람이 추천하는 동네 맛집인 데다가 전에   가본 적이 있는데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제주에 왔으면 고등어 회를 먹고 가야지!’




간당간당한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하려고 하는데 라이트닝 케이블 꽂는  물이 들어가서 경고 메시지가 뜨더니 충전이 중단됐다. 카메라는 여전히 습기로 뿌옇다.

'오늘 너무 무식하게 돌아다녔구나.'

핸드폰이야 방수가 되니 말리면  텐데 카메라를 어떻게 수습할지 덜컥 걱정됐다.


'밥 먹고 생각하자.'

배가 고프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이미 카메라는 젖었고 난 기술자가 아니다.

 시간 정도가 지나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돌아와서 식당까지 가기는 버스로 갈아탔다.




photos taken with the iphone se2
photos taken with the iphone se2

아침바다에 도착해 고등어회 소자와 소주  병을 시켰다.

손님들 중에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지만 회를 워낙 좋아하니 혼자서도 다 먹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역시 만만찮은 곳이다. 고등어가 두 겹 세 겹으로 쌓여 있어 먹어도 먹어도 계속 있다.

쌈 싸 먹는 걸 좋아해서 쌈을 싸 먹다 보니 배가 터질 것 같은데 아직도 남아 있다.

집에서는 가끔 회 한 접시 배달시켜서 거뜬히 혼자 먹는데 여기 고등어회는 끝이 안 난다.

결국   들고 아쉬움을 뒤로한  계산대로 갔다.

"잘 먹었어요?"

동네 사람 상대로 장사하는 곳이라 주인아주머니가 정겹게 물어보신다.

소주도 한 병 마셨겠다 기분이 좋아 나도 친근하게 말하게 된다.

"너무  먹었어요. 근데 양이 어쩜 이렇게 많아요? 배가 찢어지게 먹었는데도 남았어요. 다음에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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