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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r 28. 2021

[뚜벅뚜벅, 다시 제주] 애기 돌무덤 앞에서

(넷째 날 #02) 너븐숭이 4.3 기념관에 다녀오다

너븐숭이 4.3기념관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하늘은 파랗고 땅은 푸르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가 오늘은 날씨가 참 좋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걷다 보니 금세 너븐숭이 4.3기념관에 도착했다.

기념관이 생각보다 작다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바로 근처에 돌무더기가 눈에 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수십 기의 애기 돌무덤이다.

애기 돌무덤 앞에서

(지은이 양영길, 글쓴이 황요범)

한라영산이 푸르게
푸르게 지켜보는 조천읍 북촌 마을
4.3 사태 때 군이 한두 명 다쳤다고
마을 사람 모두 불러 모아 무차별 난사했던
총부리 서슬이 아직도 남아 있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할 너븐숭이 돌무덤 앞에
목이 메인다

아직 눈도 떠보지 못한 아기들일까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한
어머니의 한도 함께 묻힌 애기 돌무덤
사람이 죽으면
흙 속에 묻히는 줄로만 알았던 우리 눈에는
너무 낯선 돌무덤 앞에
목이 메인다
목이 메인다

누가 이 주검을 위해
한 줌 흙조차 허락하지 않았을까
누가 이 아기의 무덤에
흙 한 줌 뿌릴 시간마저 뺏아 갔을까
돌무더기 속에 곱게 삭아 내렸을
그 어린 영혼
구천을 떠도는 어린 영혼 앞에
두 손을 모은다
용서를 빈다
제발 이 살아 있는 우리들을 용서하소서
용서를 빌고
또 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기념관 한켠에는 사건의 참상을 증언하는 사람들을 담은 영상이 틀어져 있다.

1949년 1월 17일 북촌초등학교 서쪽 고갯길에서 무장대의 기습으로 군인 2명이 피살당한다. 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을 학교 운동장에 모아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가해 300명이 남는 사람들을 학살했다. 학살은 다음날까지 이어져 이틀 사이에 400여 명이 희생당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젖먹이 아이의 어머니도, 네댓 살 꼬마들도 있었다고 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진실을 가슴에 묻어둔 채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며 넋을 달랬다. 북촌 대학살 사건의 참혹함이 세상에 드러나기까지는 수십 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기념관에서 조금 걸어 나와 위령탑과 순이 삼촌 문학비를 둘러본다.


총구를 들이밀고 운동장으로 모이라고 했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죽음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나라면 그 순간에 산이나 동굴로 도망칠 수 있었을까? 혼자라면 어찌어찌 달아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족이 있다면 덜덜 떨리는 손을 맞잡고 운동장으로 갔을 테지.


파란 하늘 아래 바람마저 잠잠하다.




all photos taken with the X10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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