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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와 세리 Mar 16. 2020

#3. 장소가 주는 힘

글쓴이, 하리

 서울에서 부산으로 왔다. 대학원을 졸업하니 서른이 넘어있었고, 경력이 없던 탓에 원하는 일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다니던 회사는 두 달째 월급이 미뤄졌고, 저금한 돈은 없었다. 월급이 미뤄지는 기간만큼 생활에 지장이 생겼다. 통근 기차 시간 때문에 가장 먼저 출근했고,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취업사이트를 뒤졌다. 그러다 지금 일하는 곳의 공고를 봤다. 원하던 직무였고, 공공기관이었다. 다만, 부산에 있고 계약직이다. 일단 면접을 보자 생각하고 부산에 내려왔다. 면접 보러 오던 날 부산에서 모집하는 행복주택 신청에 필요한 서류와 계약금을 챙겨 왔다. 나도 웃기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면접을 보고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집부터 신청했다. 여기 떨어지더라도 부산에 살 마음이었다. 아마 항상 어떤 곳을 떠나왔던 것처럼 서울에서 도망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 있던 나는 땅만 보며 걷던 사람이었으니까. 어쩌다 하늘을 볼 때는 한숨을 쉴 때였다. 서른둘, 취업 실패, 저금 0원, 현금도 0원, 학자금 1600만 원이 날 나타내는 단어라고만 생각했다. 그때는. 그래서 서울만 아니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처음 부산에 와서는 부산역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밤을 보냈다. 평일이라 그런지 4인실에는 나 혼자였다. 2층 침대 2개가 놓여있는 공간은 불을 끄고 자기에 무섭고, 또 추웠다. 그래도 내일은 첫 출근이니까 설렜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회사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인사팀에서 사원증을 주셨다. 사원증을 받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일할 수 있는 것에 가슴이 벅찼기 때문이다. 근로계약서에는 계약직이라 명시되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 곳에서의 경험은 한 발 도약할 수 있는 든든한 지렛대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일을 꽤나 열심히 했다. 재미있었고 잘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다들 좋게 봐주셨고, 예쁨도 많이 받았다. 어딜 가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셨고, 사람들의 말은 날 치유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내가 필요한 자리가 있다는 것은 삶에 대한 자신감으로 나타났다.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쩌면 항상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도망치던 것들의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었다. 그런 확신은 한숨을 쉴 때만 보던 하늘을 보고 예쁘다고 느끼고, 오늘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부산에서 다시 살게 될 줄 몰랐다. 어린 시절 살았던 물만골에서의 시간으로 외로움을 알기에 충분했다. 취직을 하고 내려온 부산에서도 외로움은 계속됐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는 원하지 않았던 외로움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원한 외로움이라는 것이다.  '외롭다'의 뿌리는 달랐지만 느끼는 감정은 결국 비슷했다. 

 겨울과 봄, 여름을 보내던 무렵, 땀을 식히는 산들바람처럼 그가 나타났다. 덕분에 처음으로 서면을 가봤고, 영화관을 갔다. 그리고 불꽃축제도 봤다. 계속 뭔가를 해봤냐, 가봤냐 물어봤고 하자고, 가자고 했다. 어느 날은 술을 마셨다. 편했고 내 모습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그가 아니면 하지 않았을 것들을 했다.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 내가 생각보다 유쾌하고 귀여운(?)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외롭다고 느낄 찰나에는 항상 그가 나타나 내게 말을 걸었다.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려 집중이 안되던 야근하는 날에도 그의 자리에서 나는 키보드 소리가 좋다.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며칠 전 그가 황령산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 황령산을 가는 길에 물만골을 지났다. 내 기억속 물만골은 산중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래로 내려가면 평범한 친구들이 나를 놀리고, 위로 올라가면 더 어둡고 무서울 것이라는 기억이다. 물만골의 오르막도, 좁은 산길도, 집 앞에 졸졸 흐르는 냇가 물소리도 싫어했다. 그러다 며칠 전 황령산을 가면서 처음 알았다. 황령산을 가기 위해서는 물만골을 지나가야한다는 것도, 황령산 아래자락에 포근하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도. 집 하나하나 정돈되어 있고, 마당에는 고추와 토마토가 심겨져 있었다. 카라멜 색 고양이는 장독대 위에 살포시 앉아 있다. 내가 없던 2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물만골 사람들은 터전을 사랑하고 가꾸며 살고 있었다. 마치 아주 오랜만에 내가 물만골에 오면 지난 힘들었던 기억을 모두 잊으라고 하는 것 처럼.


 장소가 주는 힘. 그 장소는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더이상 부산은 내게 외로운 장소가 아니다.


황령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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