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실현적 예언의 힘
인간 존중의 사회를 기원하며
자기실현적 예언의 힘 – 인간존중 사회를 기원하며
자기실현적 예언이란, 예를 들어 상대방(부모라도 좋다)이 나를 부정확하게 지각하고 있고 상대방이 그렇게 지각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안다면, 그 지각에 따른 상대방의 기대가 나로 하여금 상대방이 지각한 것과 일치되도록 행동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말한다. 좀 무시무시한 말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부정적으로는 스티그마 효과)라고도 하는데, ‘간절히 바라면 하늘이 나를 도운다’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다. ‘하늘은 필시 나를 도울 것이고, 나는 그것을 안다(믿는다)’가 되니 말이다.
말하자면 상대의 기대에 맞춰서 행동하는 경향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항상 “넌 뭐든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말고 다 시도해 봐” 라고 들었다면(실제 그 당시 아이는 학교에서 별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다른 아이는 항상 부모로부터 ‘아이고 웬쑤야. 뭘 제대로 하는게 있어야지 ㅉㅉ 제발 나가서 뒈져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면 어떨까?
내 친구는 전자의 아이처럼 어릴 적 이런저런 말썽을 부리고 다닐 때에도 모친으로부터 항상 “넌 뭐든 잘되게 되어 있다. 뭐든 해 봐라”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30대 말에 감정평가사가 되어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돈을 벌더니(돈과 지위가 인생의 기준이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50대 말에는 변호사까지 되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날, 대학원생이던 딸이 그랬단다. “헐! 대박!” 지금 환갑이 다 된 나이에 법학박사 학위과정을 밟고 있다. 뭐든 하면 다 되게 되어 있으니까. 나이가 많든, 어쨋든 시도하는 것이다. 그 모친의 자기실현적 예언을 아들내미는 오늘도 착실하게 실행하고 있다. 아마도 후자의 아이는 자라서 정말 부모의 “웬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정치학자 엘런 메익신스 우드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 역시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무슨 말이냐면, 어떤 사회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개념화가 사회정치적 시스템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그 사회정치적 시스템이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개념화 방식에 다시 영향을 미치는 강화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회 전반의 인식에 따라서, 즉 한 사회 안에서의 ‘인간에 대한 기본 인식’이 어떤가에 따라서 그 사회가 전혀 다른 시스템을 선택하게 된다면, 우리가 지금껏 해 왔듯이, 선진제도를 모방-도입해서 우리사회를 잘살게 하겠다는 ‘손쉬운 방법’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발질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사람으로서, 그동안 독일의 선진제도들이 우리 사회에 소개되고 도입되는 경우에는 별도의 애정을 가지고 줄곧 지켜 보았다. 제대로 이해해서 도입해도 될까 말까 할 일들이, 제도의 껍데기만 겨우 이해하고 그마저 엉뚱하게 해석해서, 때로는 없는 사실을 있는 사실로 둔갑시켜, 선진제도인 양 나팔을 불어대는 꼴불견을 목도한 적이 적지 않았다.
이제 이런 헛발질은 그만두자.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도록 하자.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깊이 자각하고, 거기서부터 ‘변화’를 시작해 보자.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갑질’ 사회에서는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한들, 아무리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나서든, 우리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환경이 아무리 유리해진들, 우리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나를 제대로 대우해 주는 사회에서라면 나도 비로소 그 사회를 위해 뭔가를 기여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싸구려 갑질만 해대는 사회에서는, 비록 지금은 강자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영화 “기생충”의 기택 처럼 강자에게 칼을 겨누게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개무시하는 이런 사회에서 계속 살고 싶은가?
독일의 기본법(헌법)은 이렇게 시작된다(제1조 제1항). “인간의 존엄성은 불가침이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책무이다.” 내가 오래 살았던 독일과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모든 사회제도의 기본에 ‘인간존중의 정신’이 깔려 있다. 만약 당신이 독일(서유럽)을 관광하고, 그들의 사회제도를 보면서 이렇게 얘기했던 적이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그 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인간존중의 정신(또는 힘)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을 공산이 크다. “얘들 이러고도 사회가 굴러가고, 잘 사네!”
다른 무엇보다도 시급하게, “인간 존중의 정신”이 우리 사회의 움직일 수 없는 대원칙임을 교육, 신문방송 그리고 사회운동을 통해 확고히 인식시켜 나갈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