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회교리와 회칙 - 2/2
가톨릭의 사회교리란,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말한다. 당대의 사회 문제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응답이다. 가톨릭 교회가 사회 문제에 관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히고 가르침을 전한 최초의 사회교리는 1891년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인 “새로운 사태 Rerum Novarum”이다. 즉, 교황이 교도권에 기반하여 회칙(Papal Encyclical)을 반포하는데,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이 처음으로 교회가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사회회칙이라 하여 다른 회칙과 구별한다. 사회교리를 사회회칙 또는 특정 교황(예: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이라고 용어를 구분하지 않고 섞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아래에 주요한 (사회)회칙을 소개한다.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노동하는 인간 Laborem Exercens”
“새로운 사태” 반포 90 주년을 맞이하여 반포한 회칙으로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가 정의로운 사회의 핵심이라고 선언하였다. 오직 인간만이 노동을 하며 동시에 노동을 통해 자신의 지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노동은 인간과 인간성을 나타내는 특별한 표식이라고 하였다. 노동조합들이 단지 사회의 계급 구조를 반영하는 것이거나 불가피하게 사회생활을 지배하는 계급투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노동조합의 투쟁은 정의로운 선을 위한 정당한 노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다른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투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199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백 주년 Centesimus Annus”
이 회칙의 배경은 “새로운 사태” 반포 100 주년과 사회주의 국가들인 동유럽의 급격한 변화였다. 교황은 이 회칙에서 “사회주의의 몰락은 자본주의의 승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교회의 관심은 인간 자체이지 어떤 체제가 아님을 강조한다. 어떤 경제체제라 할지라도 경제 영역 안에서 인간의 자유를 중시하고 인간됨을 보호하고 고양시키는 등 인간이 그 목적이 되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윤이 기업 조건의 유일한 지표는 아니라고 하면서, 그것은 윤리적 이유로서만 배척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경제적 효율성에도 손상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남기는 것만이 아니라, 기업체 자체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하며, 전체 사회에 봉사할 특별한 집단을 형성하는 인간들의 공동체로서 존재한다고 하였다. 또한 국가는 발전을 조화시키고 이끌어 갈 역할 이외의 특별한 상황에서는, 국가의 개입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하지 않아야 하며, 시민의 자유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1986년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해방에 관한 훈령 “자유의 자각 Liberatis Conscientia”
저명한 신학자였던 요제프 라칭어 추기경(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된다. 영화 “두 교황"에서 스스로 물러났던 그 교황이다)이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시절에 발표했던 훈령이다. 교황의 회칙이 아니어서 마지막에 두었다.
인간 노동의 가치는 그가 하는 노동의 종류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하는 자가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며, 모든 인간은 노동할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하였다. 실업이 특히 젊은이들을 한계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은 견딜 수 없는 일이며, 이런 까닭에 정부는 물론 개인과 사기업이 직면한 최우선의 사회적 과제는 고용의 창출이라고 하였다.
또한 임금은 하나의 단순한 상품으로서 취급될 수 없으며, 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로 하여금 물질적,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질서 안에서 참으로 인간적인 생활수준에 이르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히면서, 노동과 관련된 문제를 판단하는 기준은 다름 아닌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천명하였다.
이어서 노동의 형태가 어떠한 것이든 노동자는 자기 인격의 표현으로서 노동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여기서부터 참여의 필요성이 흘러 나온다고 말한다. 노동의 결실에 대한 분배의 문제보다 훨씬 앞서는 참여는, 참으로 공동체적인 차원으로, 계획과 실행의 모든 단계에서 보장되어야 할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는 사용자들에게 이윤의 증대에 앞서 노동자들의 복지를 먼저 고려해야 하는 정의의 의무를 부과한다고 강조했다. 사용자들은 반드시 이윤을 생산에 재투자하여야 하며, 그 투자에 있어서 먼저 공동선을 생각해야 할 윤리적 의무를 부담한다고 하며, 공동선에 대한 책임이 부재한 사유재산의 권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러가지로 놀라운 내용들이 가득하지 않은가. 단순히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신학자들의 한가한 이야기로는 들리지 않는다. 저 낮은 곳의 현장 상황을 적확하게 꿰뚫고 있지 않다면 나올 수 없는 얘기들이어서 가톨릭 신학의 폭과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의 참여가 계획과 실행의 모든 단계에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언명은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주장이다. 100 년도 더 전에 프레데릭 테일러라는 엔지니어에 의해 분리되었던 기획과 실행이 “노동의 인간화”라는 새로운 가치에 걸맞도록 재결합되어야 한다는 발상을 가톨릭 신학이 하고 있으니 말이다.
실업의 문제든, 노동조합에 관한 문제든, 이윤과 임금에 관한 것이든, 또는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성찰이든 가리지 않고, 지금, 여기, 사회 개혁을 앞둔 대한민국이 반드시 곱씹어 봐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