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모종의 "운용원리"가 필요하다
보충성의 원리에 대해서 좀 더 들여다보자.
위임 Delegation 이란, 상위집단의 권한을 하위집단에 넘기는 것이다. 원래 권한은 위에 있는데, 아래로 내려 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보충성의 원리에서는, 그 권한이 원래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다. 시혜의 개념이 아니라,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위임 보다는 오히려 임파워먼트 Empowerment 에 더 가깝다.
내가 가진 권한의 일부를 떼어 준다는 생각은 보충성의 원리와 맞지 않다. 원래 그 권한은 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할 때 보충성의 원리가 기능하게 된다. 광화문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도 보충성의 원리가 기대고 있는 사고방식과 다르지 않다.
가톨릭의 사회교리는 4가지 원리를 담고 있다고 했다: 보충성의 원리, 연대의 원리, 공동선의 원리와 인간존중의 원리. 그리고 앞의 3가지 원리는 궁극에 인간존중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도 했다(브런치 스토리 “세상의 모든 것은 대립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참조). 그러나 따져보면 이 모든 원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관계이다. 인간 존중이 실현되는 사회에서는 모든 가정과 학교와 조직에서 보충성(연대; 공동선)의 원리가 자연스럽게 운용되고 있을 것이다.
보충성의 원리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강조한다. 가정 내에 보충성의 원리가 기능한다면, 부모는 자녀에게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책임을 주고, 요청이 있을 때에만 지원해 줄 것이며, 자녀는 맡은 과제를 스스로의 역량만으로 완수해 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기업 내에서는 임파워먼트 Empowerment가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직원의 성장을 위해 자율성을 주고, 상급자는 코치 혹은 촉진자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이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기업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교육수준은 매우 높아졌다. 그러나 일하는 방식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교육수준이 높은 직원들이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은 자율성과 일자리의 안정성일 것이다. 그들로부터 높은 생산성을 원한다면, 기업도 그들이 선호하는 조직으로 변해야 한다. ‘불신’을 전제로 온갖 인사제도와 작업방식을 만들어 놓고, 직원들의 충성과 생산성을 요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상호신뢰와 함께 보충성의 원리로 조직의 제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보충성의 원리에 따르면, 기업의 현장은 기획(planning)과 실행(doing)이 결합된 자율작업팀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과학적 관리법을 발명(?)한 프레데릭 테일러가 분리한 이래, 모든 조직에서는 기획과 실행이 따로 놀았다. 저 위에서 기획하면, 그 아래에서는 그냥 시키는대로 해야 했다. 생각을 해선 안된다. 그러면서 창의적으로 일하라고 한다. 이 모델은 이제 낡았다. 조직구조도 편평한 수평조직으로 만들고, 현장에서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게 해야 한다. 호마 바하미 Homa Bahcami 가 말하는 ‘다극조직’을 참고할 수 있다. 이 모델은 중앙집중 방식을 벗어나, 다양한 지식 중심의 노드(node)들이 상호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조직으로 구성된다.
보충성의 원리에 따르면, ‘중앙 단위’는 모든 정보를 꿰고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보는 시야를 가져야 하고, 미래를 고민하고 장기전략을 그리며,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외의 모든 권한과 정보와 자원은 하부 단위로 배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지금처럼 낡은 모델을 고집한다면, 중앙은 미래가 오기도 전에 이미 망해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즐거운 천국이 되려면, 위에만 몰려 있는 권한과 정보와 자원이 아래로 내려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지금처럼 승진에만 목을 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권한과 돈과 명예가 비대칭적으로 위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로 올라간 사람은 또 모든 것이 위로만 집중되도록 제도를 유지할 것이다. 온갖 아부와 충성 맹세를 통해 승진과 출세를 하고 나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랫사람에게 아부와 충성 맹세를 요구한다. 내적 성장과 능력 향상은 늘 뒷전이다. 조직의 윗자리를 능력 있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차지하지 못한다. 그러니 위로 올라갈수록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상한 구조가 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일도 많고, 책임도 많고, 더 높은 능력이 요구되도록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 보충성의 원리를 도입하면 자연스럽게 그런 조직으로 바뀐다.
인간은 기능적으로는 불평등하지만, 존재론적으로는 평등하다(LG 인화원 원장을 지낸 이병남 박사의 말이다). 누구나 존중 받아야 할 존재라는 말이다.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보충성의 원리가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운용원리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즐거운 지옥이 아니라 즐거운 천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케인즈는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의 서문에서 변화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어려움은 새로운 생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그 낡은 생각들은,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게 길러져 왔던 것처럼, 우리 마음의 구석구석까지 뿌리내리고 가치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지옥에서 즐거워하면서(?) 살아야 할까? 가정도 학교도 기업도 정부도 바뀌어야 한다. 그 변화의 모델(보충성의 원리에 기반한)을 공무원들이 나서서 만들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공무원이 나서야 나라가 바뀌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