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나서면 나라가 바뀐다 - 3

우리 사회에는 모종의 "운용원리"가 필요하다

by 하성식

지금으로부터 거의 백 년전인 1931년, 교황청은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한다.


"규모가 작은 하위조직에서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규모가 큰 상위조직이 스스로 침해하는 것은 불의요, 중대한 해악이며, 바른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당대의 사회 문제에 관하여 입장을 밝히고 가르침을 전해왔는데, 이를 묶어서 사회교리(Catholic Social Teaching)라고 부른다. 교황의 회칙, 공의회 문헌, 공식 교리서 등이 사회교리를 구성한다. 가톨릭 교회의 윤리적이고 신학적인 가르침 체계를 말한다. 사회 문제에 관한 최초(1891)의 회칙은 교황 레오 13세의 “Rerum Novarum 새로운 사태”이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이념이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을 낳던 시점에서 노동자 계급의 실상을 언급하고, 노동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 “노동 없는 자본 없고, 자본 없는 노동 없다”는 유명한 말이 이 회칙에서 나왔다. 흔히 노동헌장이라고 불린다.


사회교리를 구성하는 회칙을 특별히 사회회칙(social encyclical)이라고 부르는데, 그 일부를 소개하면서 어떻게 우리 사회가 “즐거운 천국”이 될 수 있는지 그 단초를 보여주려고 한다.


최초의 사회회칙은 교황 레오 13세의 “레룸 노바룸(새로운 사태)”이고, 이 회칙의 40 주년을 기념하는 회칙(1931)이 앞에서 언급한 교황 비오 11세의 “Quadragesimo Anno 사십주년”이다. 이후에도 첫 사회회칙의 80 주년(1971), 90 주년(1981) 그리고 백 주년(1991)을 기념하는 중요한 사회회칙이 발표되었다.


필자가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운용원리”로 제시하려고 하는 것이 1931년에 발표된 교황 비오 11세의 사회회칙인 “크바드라제시모 안노(사십주년)”에 명확하게 들어 있다. “규모가 작은 하위조직에서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규모가 큰 상위조직이 스스로 침해하는 것은 불의요, 중대한 해악이며, 바른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충성의 원리 “Subsidiarity principle”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행위기준이나 규범, 방식을 원칙이라고 부르는데, 그보다는 어떤 체계를 성립시키고 작동시키는 근본적인 이치와 법칙이라는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원리라고 하였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사회교리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보충성의 원리, 연대의 원리, 공동선의 원리, 그리고 인간 존중의 원리라고 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해방에 관한 훈령인 “Liberatis Conscientia 자유의 자각”에서 사회교리의 본질을 잘 정리하고 있다.


“보충성의 원리와 연대의 원리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토대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첫째, 연대의 원리에 따라 인간은 그 형제들과 더불어 모든 차원에서 사회의 공동선에 공헌해야 할 의무가 있다. 둘째,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 어떤 국가나 사회도 결코 그 자체로서 개인과 집단이 기능할 수 있는 차원에서, 개인과 중간집단의 창의와 책임을 대체할 수 없다(상위집단이 하위집단의 창의와 책임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원리는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원리이다.”


경영사상가 Charles Handy 찰스 핸디는, 보충성의 원리를 “도덕률”이라고까지 말한다. 자녀가 스스로 책임을 가지고 할 일을, 부모가 일일이 개입해서 도와주거나 간섭하면, 자녀의 결정권과 선택권을 빼앗는 꼴이 된다.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성공과 실패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먼저 도움을 청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가에 관한 보편적이고 의무적인 도덕법칙을 도덕률이라고 한다면, 가정 안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정립되는 것은, 어떤 이유를 대고 논리를 따지기 이전에 마땅히 따라야 할 가장 근본적인 운용원리가 보충성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모든 일을 스스로 책임껏 할 수 있도록 용인해야 하고, 기업 조직 내에서 팀장은 팀원이 스스로 책임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교사는 학생이 자율적으로 학습하고 교우관계를 형성하도록 배려해 주어야 하고,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자녀가, 팀원이, 학생이, 지방정부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때 부모가, 팀장이, 교사가, 중앙정부가 나서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보충성의 원리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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