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발 노동개혁으로 소란했던 2015년, 한국무역협회와 세계경제연구원 초청으로 페터 하르츠(Peter Hartz)라는 독일인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2003년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소위 적녹연정에서 슈뢰더 총리의 주도하에 시행된 사회복지시스템과 노동시장 개혁 프로그램인 “어젠다 2010”을 입안했던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 위원장의 이름을 딴 하르츠위원회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개혁 프로그램을 통해 입안된 개혁입법 중의 하나인 “하르츠 IV”는 독일에서 2004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될 정도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폴크스바겐의 개혁과 하르츠 위원장
하르츠 위원장은 폴크스바겐의 인사담당임원 겸 노동이사로서, 1993년 일자리나누기(work sharing)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 4일 근무제를 성공적으로 실행했다. 당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로 3만 여명에 가까운 종업원들이 정리해고를 피할 수 있었다. 또한 2001년 아우토 5000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등 폴크스바겐의 개혁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이었다.
아우토 5000 프로젝트를 위한 노사간 힘 겨루기가 막바지에 이르렀던 2001년 8월, 그의 60회 생일에 슈뢰더 총리가 헬기를 타고 날아와서 참석할 정도로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하지만 2005년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어 모든 직을 내려놓고 은퇴했던 그는 말하자면 독일에서는 잊혀진 인물이었다. 그가 관여했던 많은 개혁 프로그램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주요한 벤치마킹의 대상이지만, 은퇴 후 10년이 지난 인물을 다시 모셔올 정도로 당시 우리 정치권의 독일 열풍은 뜨거웠고, 그 열기는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1990년대 중반, 당시 독일의 많은 제조기업들은 동구권 소비에트 블록의 몰락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인하여, 인건비가 낮은 동구권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을 경영상의 당연한 조치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2010년 이후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독일은 2000년대 중반까지 낮은 경제성장, 높은 실업률 및 어려운 노동시장의 상황 때문에 유럽의 병자(The real sick man in Europe)로까지 불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어떻게 하면 해외로의 생산기지 이전을 막고, 국내의 고용을 유지 내지 창출시켜 청년실업 등 일자리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기에 여기서 자세하게 들여다 보려고 한다.
아우토 5000 프로젝트 시작되다
1990년대 말, 폴크스바겐은 슬로베니아에 미니밴인 투란(Touran)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을 설립하기로 한다. 앞서 말했듯 당시는 많은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할 계획을 세우면서, 국내에서 고용조정이 대두되던 민감한 시기였다.
국내의 고용을 유지하고, 생산입지로서의 독일이라는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한 여론의 압박으로 인해 폴크스바겐은 생산이전 계획을 수정할 여지를 밝히게 된다. 그렇지만 현재의 조건(임금협약)으로는 국내공장에서의 생산이 거의 불가능했다. 폴크스바겐이 내건 조건은 현재 폴크스바겐이 체결하고 있는 단체협약이 아닌, 다른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생산공장을 별도로 세우는 것이었다.
폴크스바겐이 기존에 체결하고 있는 임금협약으로는 새로운 고용은 커녕, 당장 생산의 해외이전을 고려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때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으로서 등장한 것이 “아우토 5000 프로젝트(정식 명칭은 ‘Auto 5000 x 5000 프로젝트’: 실업자 5,000 명을 고용하여, 단일임금 5,000 마르크 지급)”였다. 말하자면 고용유지를 위한 저비용 모델이었다.
폴크스바겐 주공장이 위치한 볼프스부르크시는 당시 18%를 넘는 기록적인 실업률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것은 독일 전체 평균 실업률의 거의 2배에 육박하는 수치였다. 회사 창립 60주년을 맞았던 1998년에 폴크스바겐은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의 이러한 문제를 함께 끌어안고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였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회사가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폴크스바겐의 제안(아우토 5000 프로젝트)에 대해, 금속노조(IG Metall)는 사측의 노동유연성 보장 요구를 수용하게 됨으로써 여타 단체협약의 체결을 위한 교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 제안에 따라 새로 고용될 노동자는 이미 실업의 상태에 오래 있었거나, 아니면 곧 일자리를 잃을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었으며, 실제로 이들은 회사가 제안한 것보다 더 유연한, 말하자면 더 열악한 근로조건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팩트였다.
많은 우려가 제기되었는데, 특히 실업자를 채용하여 경쟁력있는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것에 대한 일방적인 의구심이었다. 동일한 구역에 있는 두 개의 공장(회사)에 대해 조건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단체협약이 체결되어 진행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짧은 시간 안에 5,000명에 달하는 종업원(실제로는 3,500명이 채용됨)을 어떻게 자동차산업에 적합한 노동자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였다.
또한 생소한 방식에 의해 선발된 종업원들이 혁신적인 생산방식과 공정에 적응할 수 있을지, 단일임금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에 관하여, 그리고 노동조합과의 관계 및 노사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폴크스바겐法(VW-Gesetz)
1937년 나치정권에 의해 설립된 폴크스바겐은 전후 영국 점령군 사령부에 의해 니더작센 주정부에 실질적인 경영이 이관되었다. 이후 1960년 폴크스바겐법이 제정되어 주식회사로 변경됨으로써 민영화가 이루어진다.
이 법에 따라 일반기업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특이한 규정들이 폴크스바겐에 적용되었다. 의결권있는 주식의 20%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20%를 초과하는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든지, 연방정부와 니더작센 주정부는 폴크스바겐의 감독이사회에 2명의 이사를 지명하여 파견할 권리를 가진다든지, 주식법상 주총에서의 특별결의의 정족수는 발행주식 총수의 3/4(75%)인데, 폴크스바겐에서는 4/5(80%)로 가중되는 것이 그것이다.
2004년 유럽사법재판소가 폴크스바겐법의 의결권 상한 규정과 연방(주)정부의 감독이사회 이사지명권이 EU 법에 저촉된다고 판결하였고, 독일정부는 이를 좇아서 2008년 폴크스바겐법을 개정하였다(아우토 5000 프로젝트는 이 법이 개정되기 이전에 실행됨).
그러나 주총에서의 특별결의 정족수에 관한 조항이 존속되어, 지분의 20%를 보유한 니더작센 주정부는 여전히 최소저지지분(20%-blocking minority)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법률 개정안에서 생산공장의 (해외)이전에 관한 결정을 감독이사회에서 단순과반수로 의결하던 것을 2/3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함으로써, 감독이사회 이사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측의 발언권이 강화되었다.
폴크스바겐은 이 법에 따라 기업지배구조가 여느 민영기업과는 다르다. 폴크스바겐법에 따라 정부의 입김이 세고, 노동자의 경영참여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폴크스바겐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폴크스바겐은 2016년 세계 자동차 판매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눈여겨 볼 대목이다.
아우토 5000 유한회사(GmbH)의 혁신 실험
거의 2년에 걸친 노사간 교섭을 거쳐 확정된 아우토 5000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신규 법인 설립 - 기존 폴크스바겐 공장에 적용되던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지 않고, 새로운 단체협약 체결(기존 노동조건보다 낮은 조건에 합의)
- 채용(모집과 선발)시 기존 폴크스바겐 공장의 사업장협의회(Betriebsrat) 참여 - 채용에서부터 노사간 공동 참여
- 채용 전 지역고용센터 주관으로 3개월의 교육훈련 실시 - 정부의 참여 및 협조
- 첫 6 개월은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이 기간은 전적으로 교육훈련에 할애
- 임금은 지역산업단체협약 수준으로 결정 - 기존 폴크스바겐 종업원 임금의 약 80% 수준
- 주당 노동시간은 35 시간으로 하고(기존 폴크스바겐 공장의 종업원의 노동시간은 주당 28.8시간. 1993년 약 30,000 명에 달하는 정리해고 대상자를 구제하기 위한 웍쉐어링으로 주당 노동시간이 대폭 줄었다), 노동시간저축계좌제(± 200 시간/년) 도입
- 작업프로세스의 개혁 - 생산부문 관리계층의 축소를 통한 수평조직과 자율적 팀작업
- 성과평가에 관한 공동결정권을 사업장협의회에게 부여
아우토 5000 프로젝트는 신규법인(Auto 5000 유한회사)을 설립하여 각종 혁신안을 실험하였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투란(Touran)과 티구안(Tiguan)이라는 모델을 생산하였고, 이 모델들이 성공적으로 판매됨으로써 프로젝트가 안정적으로 실행될 수 있었다.
2001년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2008년에 금속노조와 폴크스바겐간에 양 사의 통합을 위한 단체협약이 체결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된다. 협약 체결 후, 2년의 과도기간을 거쳐 2011년 신규법인(Auto 5000 GmbH)의 전체 종업원이 기존 폴크스바겐(Volkswagen AG)으로 고용이 승계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실험된 많은 작업장 혁신안들은 이후 폴크스바겐의 다른 공장에도 적용됨으로써 회사의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외국사례의 시사점과 변화의 필요성
우리는 폴크스바겐의 아우토 5000 프로젝트를 통해 아래의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 교육훈련을 매개로 하여 정부와 민간기업이 상호 협력할 실질적인 공간이 생긴다는 점. 한편으로는 지역의 실업률을 낮추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동차산업에 적합한 노동자를 교육훈련을 통해 확보하여 생산성 향상을 기할 수 있는 노사정간 상생의 공간이 열림
- 팀제 작업방식, 수평적 관리, 성과급제의 인간적 설계(사업장협의회가 성과평가에 공동결정권 행사) 및 학습공장(조직)이라는 작업장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킨 점
- 비용절감을 이유로 한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에 대한 대안을, 노사정 삼자간 상호협력을 통하여 제시하였다는 점
- 공동결정제도와 같은 독일 특유의 노동자 참여가 순기능적으로 작동할 경우, 작업장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용이하고, 이를 통해 고생산성-고품질-고임금이라는 고진로전략의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실제로 일자리창출이라는 과제는 우리사회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한 사안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법과 제도 그리고 문화가 전혀 다른 선진외국의 관련 사례를 무작정 도입한다고 해서 해결책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내 것이 아닌 남의 예쁜 깃털로 자신을 치장(위장)하려 했던 이솝 우화의 ‘허영심 많은 까마귀’ 처럼 이내 자신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외국의 사례를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우리에게 시사점이 될 만한 것들을 추려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일자리창출이라는 국가적 어젠다를 제대로 실행해 내기 위해서는 우리사회 전반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풍(변화)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한 변화는 이를테면 인간에 대한 존엄이 지금보다는 훨씬 보장되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여전히 경쟁과 효율이 우선이라는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또한 살아남은 자가 강하고 옳다고 믿는 그릇된 미신으로부터의 탈피, 상호협력이 사회의 발전/진화를 추동하는 강력한 동인이 될 수 있다는 가치관이 우리사회 구성원들간에 널리 공유되는 상황, 그리고 보충성의 원리가 작동하는 조직과 제도 등을 통해서 그 변화는 더욱 더 확대될 것이다. 그런 바탕과 선진외국 사례의 시사점이 더해질 경우에만, 우리에게 가장 효과적인 일자리창출 모델이 적절하게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 창출 모델’을 마련하기 위한 여정에 필자도 작은 힘을 보태고자 한다. (앞으로 10여 회에 걸쳐 일자리 창출에 관한 필자의 소박한 의견을 제시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