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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기회는 기록에서

by 하상인

나도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나와 달리 작가라는 타이틀로 생계유지 이상을 달성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책을 쓴 초창기엔 나도 작가로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거는 없었지만 계속 쓰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란 막연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한 5권째쯤 쓸 무렵에 어느 정도 인지도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막연한 마음으로 기대했던 결과가 현실화되는 일은 없었다.


막연하게 기대했든, 간절하게 기대했든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그 정도만 다를 뿐 실망감은 똑같이 느꼈다. 이렇게 한탄하며 아쉬워하는 내게 한 지인은 "글이 우울하니 결과도 우울한 게 아니냐"라며, 나의 실력이 아닌 우울한 분위기가 문제라며 위로해주기도 했다. 이런 위로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서는 '계속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란 생각으로 고민이 많았다.


그런 고민을 했던 때가 분명히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요즘은 그 당시 희망했던 일들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엔 강연을 했고, 올해는 소설부문 심사위원을 했으며, 이제는 내게 글쓰기와 관련해 지도를 받고 싶다는 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답답하게 보냈던 지난 시간에 대한 보상인지는 모르겠으나, 기대한 일들이 하나씩 일어나는 게 너무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나는 이런 일들이 기록이 가져온 기회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특별히 더 많은 돈을 들여 책을 만든다거나 광고에 돈을 쓴 적이 없었고 그저 꾸준히 계속 써왔기 때문에, 나와 내가 쓴 글이 누적되며 일어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록 : 어떤 정보를 갈무리하여 특정 신호로 바꾼 후, 어떤 매체에 남기는 것을 말한다.(위키백과 참조)


내가 써야만 하는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면, 지금까지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저 재밌을 것 같다거나,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한 마디로 그냥 내버려 두기 아쉬운 마음에 썼을 뿐이나, 계속 누적된 글들이 나를 대변해주고 있었기에 좋은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긴 것 같다. 꾸준한 사람에게 분명히 기록은 기회를 줄 수 있다.


여기서 하나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분명히 기록은 기회를 줄 수 있지만, 꾸준히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는 점이다.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써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진 않았다. 매년 1권의 책을 쓰겠다는 약속을 친구와 하긴 했지만, 그게 매일 같이 써야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말한 것처럼 가볍게 생각했기에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꾸준히 글을 쓰는 데 있어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 기록이 기회가 되기 전까지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쓸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독려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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