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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상인 Jun 21. 2024

추상적인 개념의 문제

노력은 간접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다.

헬스를 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보디빌딩계의 스타 '황철순'은 운동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정확한 표현은 아닐 수 있다.)


"당신의 운동량은 누군가의 워밍업이다."


누군가는 이 정도면 상당히 많은 운동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누군가에겐 워밍업 정도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내가 어렵게 해내어 노력이라고 부르는 것을 누군가는 매일 같이 당연하게 해내고 있을 수도 있다. 사실 학창 시절에도 같은 시험을 목표로 하면서도 누구는 2시간 공부를 하면 '너무 힘들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누군가는 2시간은 당연하고 그 몇 배를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결과 전자는 2시간을 두고 '노력'했다고 하겠지만,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후자보다 낮은 성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더 많은 시간 공부한 사람이 더 좋은 결과를 받아가는 게 공정하고 합리적인 일이지만, 비교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노력해도 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요즘은 간접 경험을 하기 쉬운 세상이다. 누군가가 누리는 과실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원한다면 소통도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과정에서 결과물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생각하는 '열심', '노력', '인내' 등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간접 체험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수준과 많이 다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근 책이나 강연을 통해 '열심', '노력' 등 추상적인 개념을 접할 때면 객관적인 수치로 보여주기 어려운 영역이므로 '나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했는지 생각해보려고 한다. 객관적인 수치로 보여주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고 있는 중이며 동시에 추상적인 개념을 간접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목표로 한 일을 누군가 달성했고 그 사람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라고 말했다면, 그 열심히 노력한 것이 무엇인지 그 행동을 알고자 한다. 그리고 그 행동을 할 당시의 주변 상황도 생각해 본다.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얼마나 공부할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져 보면 추상적인 개념이 조금은 체감된다. 그리고 대부분 뭔가 해낸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서 예견되는 어려움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한 사람들이다. 이런 행동 정도가 노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한 행동이 노력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가 해야 할 행동에 얼마나 많은 의지가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이를 하나둘씩 먹어가면서 해내지 못한 것에 변명을 하기 위한 요령만 생기는 것 같은 요즘이다. 그래서 내가 해온 행동을 두고 '노력했다'라고 부르기 위해서 필요한 기준을 스스로 낮추고 있단 느낌이 들어 반성하는 마음으로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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