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상인 May 18. 2024

냉정하게 생각하면 별 일 아니다

단어가 심리상태에 미치는 영향

나는 생산성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뭘 하든 남는 게 있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업적 같은 걸 남기기 좋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뭘 배운다고 한다면, 그 배움을 통해 시험을 거쳐 증명서로 남기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일단 뭔가 시작했는데 남는 게 없다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그런데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내려놓으려 노력하고 있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일수록 눈앞에 뭔 가만 따져가면 안 되는 데 상대적으로 결과를 눈으로 보기까지 멀기 때문에 집중을 하지 못하거나 중도 포기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생산성의 측면으로 보더라도 문제가 많다. 그 생산성의 기준이 무엇인지 구체적이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걸 왜 했나?'라고 물으며 자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내가 이런 태도를 버리지 못했던 건, 일단 뭔가를 해야 하는 상태로 오랜 시간을 끌고 가야 하는 걸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방학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나 같은 성격은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숙제부터 다 해야 진짜 방학이라고 느끼는 사람이다. 


방학숙제처럼 해야 할 일을 먼저 해두는 건 나쁘지 않지만, 성인이 되고 방학숙제처럼 잘하지 못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 일과 달리 잘해야 하는 일들을 이렇게 몰아서 처리하는 것은 그 작업의 완성도에도 별로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에 나는 긴 시간 해야 할 일을 가지고 가면서 다른 일을 함께 해야 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타입이라 최근엔 내려놓고 싶은 마음도 종종 들었다. 


그런 내게 정말 큰 힘이 된 말이 있다. 

바로 "냉정히 생각해 보면 별 일 아니다."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책에서 본 후 내가 힘들다고 하는 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그리고 스스로 물었다. 


"필요한 시간을 나누고 계획하는 게 엄청 힘든 일인가?"

절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받으면서 주변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일인가?"

그런 건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선택한 일이었으며 누구도 나를 떠밀지도 않았다. 


이전에도 내가 스스로 '이게 못할 일인가?' 혹은 '그렇게 어려운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땐 위와 같은 답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라는 식으로 불평이나 했다. 그런데 왜 답이 달라졌을까. 


나는 '냉정히'라는 단어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의 무게감에 관계없이, 분야에 관계없이 본인이 생각했을 때 가짓수가 많다면 마음이 바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달리기를 하면 발에 땀이 나듯 마음이 바삐 움직이면 마음에도 열이 난다. 그러면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내가 했던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는다. 그리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냉정히'라는 단어를 마음에 담는 순간, 마음만 바빴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 내가 그랬듯 마음만 바쁘고 일도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면 그 일을 냉정히 생각해 보면 좋을 거 같다. 


실제로 이탈리아 트렌토대학 심리학자 페데리카 카비치오 교수의 실험(폭력적이거나 적대적인 말을 듣고 말하게 한 후 얼마나 공격적으로 변하는가를 관찰)에 따르면, 폭력적인 단어에 노출되는 경우 이후 무관한 일에도 그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든다고 한다. 이처럼 나와 관계없어 보이는 '글자'라도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자신에게 시간을 허락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