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하여
뭔가 한 것 같은데 아무것도 남지 않은 느낌이 든다면 그건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체계는 어떤 분야에 공부를 할 때도 필요하지만 인생을 설계할 때도 필요하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흔히 말하는 '기본서'가 필요하다. 기본서는 그 분야를 공부하기 위한 기본 용어부터 개념을 쌓아가기 위한 목차로 구성되어 있는 게 일반적이다. 즉, 순차적으로 공부하면 그 분야에 대한 체계를 잡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체계를 무시하고 공부를 시작하면, 같은 시간을 투입해도 남는 게 없다. 지식이 어디에 붙어 있어야 할지 모르고 새로운 지식과 기존 지식이 상호작용할 수 없어 장기기억으로 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억되지 않은 것이 현출 될 수 없으므로 당연히 남는 게 없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경험이든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경험 자체보다도 순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몸이 질병 등으로 심하게 아팠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운동을 배우는 것과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운동을 배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전자는 건강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을 것이기에 운동을 대하는 마음이 더 간절하고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은 그 사람이 쓰는 시간의 농도를 더욱 진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어떤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경험의 순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경험의 순서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체계'라고 생각한다.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것을 어떻게 발현할지를 먼저 결정해 둬야 하루에 얼마 간의 시간을 어디에 쓸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과 유사하지만, 체계는 하루의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다른 점이 있는 것이다.
나는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시간이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어떤 경험이든 도움이 된다고만 믿었고, 그 결과 대학 졸업 후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졸업 후 진로 선택에 있어 막연하게 체계도 없이 한 경험을 살리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인생은 답이 없고 그 과정에서 '나'까지 찾아야 하기에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체계를 갖추지 못했기에 어떤 경험을 얼마나 인생에서 체험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지 못했고 오래 방황했으며 동시에 지난 시간을 후회하며 지냈다. 만일 뭔가를 하긴 했으나 남는 게 없는 것 같아 과거를 후회하고 있다면 다음 스텝을 밟기 전에 어떤 삶을 살지 체계를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