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과거는 흐릿해진다. 잠깐 추억하고 싶은 그때 그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를 볼 때면 기분이 오묘해지고 여러 감정도 든다. 본능적으로 이제 다시는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인 것 같다. 무대의 주인공의 자리에 있었다가 점차 밀려 빛조차 희미해지는 곳으로 밀려가는 기분이랄까.
세상은 100살까지 산다며 장수를 이야기하지만, 그 길어진 시간에도 대학생, 사회초년생과 같은 생기발랄하고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고 즐거움을 느끼는 그런 시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 때문에 '제2의' 전성기라는 식으로 다른 관점에서 삶을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반복하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하나 알게 된 사실은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존재감 자체는 희미해지기 마련인데, 그 개인이 가진 '선'은 더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흔히 20대를 지나 30대 초반 정도가 되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굳이 만나지 않는다'로 이 '선'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나에게 허용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단하는 그런 '선'이다.
이 선은 경험이 없을 때는 명확히 그리기 어렵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런 행동을 용인해도 괜찮지 않나'와 같은 생각으로 체득하는 경험이 많아져야 나의 선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면 어릴 때처럼 쉽게 친구를 사귄다거나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엔 그 사람이 내 선을 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기에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처럼 삶이 지속되면 인간에겐 분명히 선은 더 명확해지지만, 인간의 삶이 복잡하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기도 하는 건 그 선을 절대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친구, 부모, 자식 등 이성과 논리의 잣대만을 댈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개인의 일탈로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면 꾸짖고 질타할 수 있겠지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뭔가 문제를 안고 있다면 그 선을 비롯해 문제에 얽혀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각자는 생각보다 정의하기 힘든 존재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