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체계를 아는 전문가

배우 류수영의 연구 교재 300권을 보고

by 하상인

자주 언급했듯 나는 생산성을 많이 따진다. 그러다 보니 당장 내가 글을 발행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 시간에 다음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는 뭔가를 찾길 바란다. 가끔은 이렇게 사는 게 맞나란 생각도 들지만, 너무 오랜 시간 이렇게 지냈기 때문인지 다른 행동을 한다는 건 상상이 잘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런 이번 연휴에 TV로 방송 <유퀴즈>에 류수영 배우가 나온 걸 보게 됐다. 요리 초보라면 그가 배우라는 점보다 요리를 쉽게 잘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더 클 것이다. 나도 몇 번 유튜브를 통해 본 적이 있다. 그가 알려주는 요리의 장점은 어지간하면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고, 맛도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것에 있다. 때문에 나도 몇 번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사실 이 방송을 보기 전까진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했지, 배우인데 '어떻게 요리를 이렇게까지 잘하지?'라는 의문을 갖진 못했다. 그런데 이 방송을 통해 그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배우가 아닌 한국 음식 요리사로서 강연을 했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의문을 갖게 됐다. 방송을 통해 그는 편스토랑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본인의 레시피를 소개했지만, 솔직히 60개 정도면 끝이라 더 알려주기 위해선 연구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방송을 통해 그가 레시피 연구를 위해 본 요리 책만 300권에 이르며, 요리 방법 등을 노트로 따로 정리하며 어떻게 맛을 내는지까지 연구했음을 알게 됐다.


배우가 아닌 일반인이 이 정도 연구했더라도 배우 류수영의 위치에 이를 수 있을까란 질문을 한다면, 당연히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했던 방법을 따라 한다면 누구나 취미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갖고 그걸 활용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느꼈다.


이유는 그가 한 방법이 '지식의 체계'를 잡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확신할 수는 없어도 취미 수준의 지식이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 체계를 만들기 위해선 처음엔 어쩔 수 없이 많은 양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는 300권에 이르는 요리책을 섭렵하며 체계를 위한 정보를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레시피(노트)를 만든 것이라 생각된다.


나 역시 행정사이자 작가로 일하고 있지만, 때론 내가 해온 시간에 비해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체계와 관련이 있었다.


지식은 쌓인다고 해서 저절로 힘이 되지 않는다.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고 분류되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체계'를 갖췄을 때 비로소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배우 류수영이 스탠퍼드 강단에 설 수 있었던 힘은 '요리를 많이 해봐서'가 아니라, '요리를 학문적으로 구조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행정사로, 또 작가로 살아가는 나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가끔 나는 막연하게 나의 전문성에 대한 의심을 하곤 했는데 그건 공부의 양이 부족해서도 있겠지만 절대적인 원인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지식들을 나만의 논리로 정렬하지 못했기에, 나의 지식을 믿지 못하고 흔들렸던 것이다.


당신이 몰두하고 있는 그 일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그저 열심히 쌓아 올린 지식의 더미인가, 아니면 누구에게라도 설명할 수 있는 단단한 체계인가. 배우 류수영처럼 체계를 갖추고 자신만의 레시피 노트를 채우기 시작하는 순간, 노력은 비로소 대체 불가능한 실력이 된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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