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은 낮다, 그래도 나는 한다.

by 하상인

오늘 10번째 책이 인쇄소로 갔다. 누군가는 내게 벌써 10번째 책이냐며 대단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쌓이는 기록만큼 내 안에선 나에 대한 의문도 커져갔다. 의문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초고를 완성한 순간엔 '이 글이 책으로 만들어져도 될까'를 고민하고, 몇 번의 교정을 거친 후엔 '또 아무런 반응 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란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꼭 글이 아니더라도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라고 생각되는데, 이런 고민은 항상 '그만두자'라는 결론으로 향한다. 그만두는 건 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책이 되지는 않을지, 내가 이런 주장을 해도 될지, 또 괜히 시간과 비용만 들이는 것은 아닌지 등 고민의 방향은 다양하지만 그만두는 선택을 하면 이 모든 고민은 사라지게 된다.


고민에 답을 찾고, 답을 찾지 못하는 그 과정에서도 계속 진행하는 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는 건 고민이 하는 말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또 적은 가능성이지만 그 고민과 다른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글을 썼고, 2021년 이전까진 그 글에 대한 어떤 특별한 보상도 없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시간을 보냈다. 2021년부터는 신기하게도 강연 요청이 있었고, 대학교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2년 간 활동했으며, 또 지난해엔 브런치 전시에도 뽑혔으니 말이다.


이런 결과들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였기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고, 누구라도 10년을 해왔으면 다 겪었을 일이라며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내면 한 구석에는 '내가 인정하지 못하니 외부에서 다른 누군가가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처럼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진 않는다. 인정을 떠나 내 글에 큰 관심이 없다. 하루에 쏟아지는 글이 한 두 편인가. 브런치만 해도 수백, 수천 편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나는 나조차도 믿지 못한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쓴 것이다.


이번 10번째 책을 쓰면서야 드디어 이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믿지 못하면서, 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면서도 계속 해온 게 나였다.


10년을 해도 불안은 여전하고, 10권의 책을 내도 확신은 멀기만 하다. 그러나 이 불안한 작가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는다면, 그것은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믿지 못하면서도 계속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이라는 긴 글을 끝까지 써 내려갈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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