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잘했는가”와 “그래서 뭐가 남았는가”

나를 판단하는 두 가지 방식

by 하상인

나를 대하는 방식


나를 떠올릴 때 느끼는 감정이 극단적인 편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감정적으로 극단을 오가는 건 밖에서 보기엔 별일도 아닌데 감정적으로 격한 반응을 보이게 하거나, 하는 일 없이 지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생각'을 좀 안 했으면 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작가이자 행정사로 일하는 내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는 건 나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나의 극단적인 감정의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찾겠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면, 세상에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모두 해결되었거나 무시하고 있었겠지. 더욱이 개인의 심적인 문제는 해결이 문제가 아니라 그 원인조차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정확히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문제를 안고 있는 본인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 문제에 관해 똑같은 정보를 갖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외부에 공유된 문제를 본다면 각자 갖고 있는 관점은 다를지언정 원인은 공통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난 오랜 시간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이라고 해도 종종 고민했다는 사실도 잊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이번에 책이 나오게 되면서 이 원인을 조금은 알게 됐다. 바로 내가 나를 바라보는 두 가지 판단 기준이 극명하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얼마나 잘했는가와 그래서 뭐가 남았는가라는 질문으로 평가했다. 나는 전자에는 할 말이 많았지만, 후자에는 입을 꾹 다물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즉, 얼마나 잘했는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고평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실질적으로 남은 것은 별로 없는 삶을 살았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것 역시 상대적이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질문도 틀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100% 완벽하게 옳다고 할 수 없으니 그 판단기준에 대해 답은 내리더라도 감정적으로 동요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오랜 시간 걸렸던 일이었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기에 상당히 유의미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심리적인 문제, 내적인 문제를 안고 있을 수 있다. 이런 유형의 문제는 분명히 확실히 답을 얻기 어렵다. 그리고 답을 얻었다고 외부 환경이 변하는 것도 아니기에 현실에서 후순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그럼 잊고 있다가 다시 머리를 들이밀며 감정 소모를 시킬 것이다 하지만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붙잡고 있다 보면 어느 정도 답처럼 보이는 걸 보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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