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싸돌아다니기분야 권위자의 1박2일 혼자 경주 여행
경주.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여행 이후 약 17년 만이다. 다들 경주가 수학여행 국룰이라는데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누구도 경주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다...
겨울 동안 싸돌아다니지 않았더니 또 여행병이 도져 어딜 갈까 고르다 문득 꽂혀서 결정한 행선지 경주. 금요일 연차를 내고 srt와 숙소 결제하면 여행 준비 끝이다.
25.03.21
삼월치고 꽤 더워진 날이었다. 경주역에서 경주 시내 지역까지는 버스로 20~30분 정도 걸린다. 시내 인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가방을 맡기고 불국사로 출발했다. 대도시가 아니라서 배차 간격이 너무 길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시내 쪽에서는 버스가 꽤 많았고 생각보다 자주 다녔다. 경주 시내에서 불국사까지는 대략 15km? 정도 거리로 알고 있는데 서울이었다면 버스로 1시간 꼬박 걸릴 거리지만 경주에서는 30분도 안 걸린 것 같다. 버스가 이렇게 쌩쌩 달릴 수 있는 이동수단이었다니? 우리 집에서 5~6km 거리인 잠실까지 버스로 30분이 걸리는데!!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와서 서울은 여유가 없다고 느끼는 이유가 역체감된다.
불국사에 도착해서 놀랐던 것은 외국인이 되게 많다는 거였다. 일본인 중국인이 아니고 서양인(?)...백인들이 꽤나 많았다. 물론 그들은 이런 동양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한국 여행을 왔겠지만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경주까지 찾아오다니 여행 내공이 장난 아니겠다 싶었다.
불국사 한 바퀴 싹 돌고 부처님께 기도도 드리고 내려와 불국사 박물관까지 들르고 조금 늦은 점심을 먹으러 불국사 버스 정류장 바로 앞 불리단길로 향했다. '불리단길'이라는 이름까지 붙였길래 나름 번화한 곳인가 했더니 음...그냥 지방 관광지 앞 식당가였다. 그놈의 '리단길' 제발 좀 그만 붙였으면 좋겠다. 경주에는 '리단길'이 붙은 곳이 무려 3군데이다... 황리단길을 빼면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
어쨌든 식당가에서 나름 세련되어 보이는 일본식 덮밥집에서 부타동을 먹고 식후 커피 때리러 다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사실 석굴암도 보고 싶긴 했으나 석굴암에 가는 버스는 1시간에 1대 밖에 없어 시간이 안 맞아 포기했다. 커피 마시러 향한 곳은 '커피플레이스'라는 카페. 위치는 '금리단길'...에 있고 로컬도 많고 관광객도 많은 듯했다. 가게 자리는 많지 않은데 사람은 많아서 한참 기다리다 겨우 앉았다. 햇살이 따가워 아아메가 땡겨서 싱글 오리진 원두로 주문했다. 산미 커피를 환장하게 좋아하는 인간으로서 너무 맛있게 마셨다.
요 근처가 대릉원이라 대릉원 산책도 하고 천마총도 들어가 봤다. 간 김에 들어가 보긴 했는데 국립경주박물관에 갈 거라면 천마총은 굳이?싶다. 천마총에 전시하고 있는 건 복제품이다. 대릉원은 넘 예쁘고 고즈넉해서 산책하기 최고였다. 우리 집 주변에도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있음 좋겠다ㅠ 공원이 멀어...
대릉원 바로 옆은 또 황리단길이다. 경주 주요 관광지는 이렇게 다 붙어있다. 뚜벅이들이 다니기 굉장히 좋은 여행지구만. 황리단길을 구경해보니 십원빵 파는 곳이 346789251곳 있고 군데군데 숨은 보석 같은 예쁜 가게들도 있었다. 혼자고 서울사람이다 보니 번화가에는 큰 관심이 생기지 않아서 적당히 구경하고 숙소 가려다 아차! 첨성대가 생각나서 또 15분쯤 걸어서 첨성대로 향했다. 자고로 여행은 1일 2만보라는 철칙을 갖고 있는 인간=나..
하루라도 빵을 안 먹으면 빵순이가 아니다. 첨성대 앞에서 버스 타고 미리 저장해 놨던 빵집(월정제과)으로 향했다.(마감 시간이 되어가서 맘이 급했다...빵 없을까봐...ㅋㅋ) 내가 먹을 거/게하 파티 때 먹을 거 샀는데 막상 파티 때는 다들 저녁을 먹고 와서 그런지 잘 안 먹어서 많이 남겼다ㅠㅠ아이고 아까워라. 빵은 전반적으로 맛있고 가격도 괜찮았다.
저녁은 대충 빵 조금으로 때우고 방에 누워있다가 동궁과 월지(구 안압지)로 향했다. 밤에 조명 켜지면 너무 예쁘다고 해서 갔는데 와...정말 정말 예쁘고 좋았다. 그 천 년 전에도 귀족들은 이렇게 으리으리하게 놀았구먼?(그땐 조명은 없었겠지만,,)
호수에 비치는 풍경 하며 우아한 전각이며 뭐랄까 압도되는 느낌이랄까. 관광객이 엄청 많은데도 시끄러운 느낌이 아니었다. 잠시 신라 귀족이 된 듯한ㅋㅋㅋ착각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산책하기도 정말 좋고 고작 3천원 주고 이런 곳을 입장해도 되나요? 우리나라는 이런 유적 입장료가 너무 저렴하다. 관광객 입장에선 좋지만 이래도 유지/관리가 잘 될까...유럽 갔을 땐 어딜 가도 기본 10유로 이상이었는데.
동궁과 월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첨성대가 있는데 밤에 보면 느낌이 또 다르대서 가보았다.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긴 한데 조명이 아주 색색깔이라 좀...광기에 찬 느낌.
동궁과 월지에는 관광객이 넘치는데 밤 첨성대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렴풋하게 어릴 때 왔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랑은 느낌이 전혀 달랐다. 당연하다 나이를 열일곱살을 더 먹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하루 열심히 싸돌아다녔더니 거의 경주 시내버스 마스터가 될 뻔했다.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에선 매일 밤 10시에 파티가 있었다. 시끌벅적한 건 아니고 각자 마실 술/음식을 가져와서 나눠 먹기도 하고 이야기하는 소소한 자리였다. 내향인이지만 술자리는 좋아해서ㅋㅋㅋ이 숙소를 선택한 것도 있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웃고 떠들 일이 별로 없었고 늘 외로웠어서 그런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술 마시고 떠드는 시간이 재밌었다. 항상 비슷한 사람들과 보다가 사는 곳도 다 다르고 하는 일도 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일은 귀하다. 일회성 인연이라 해도, 이런 자리가 아니면 평생 만날 수 없을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새로웠다. 재밌게 새벽 2시 반까지 놀고 겨우겨우 귀찮음을 이기며 씻고 잠들었다.
25.03.22
전날 술 마신 것 치고 멀쩡하게 일어났으나 귀찮아서 뒹굴거리다 준비하고 짐 싸고 10시 체크아웃. 아점으로는 콩국을 먹었다.
처음 먹어봤는데 원래 두유 러버라서 그런가 맛있었다. 많이 먹기에는 물리는 감이 있긴 했는데 고소 달달한 게 평소에도 아침으로 먹었음 좋겠다.
식당 옆에 고분들이 있어서 산책했는데 꽃은 피어나고 있고 하늘은 푸르고 너무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이런 순간순간의 장면을 위해 여행을 한다.
가고 싶었던 베이커리 카페 오픈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황리단길 구석구석 돌아보며 구경도 하고 엄마가 맛있는 거 사오래서 집에 가져갈 기념품도 샀다. 경주빵은 식상해서 좀 덜 식상한 '샌드'로ㅎ
찜해놨던 베이커리카페 데네브~!~! 고분뷰 통창이 쥑이는 곳이다. 게다가 빵맛도 쥑였다...할라피뇨 베이컨 깜빠뉴였나 여튼 저 빵 기가 막힙니다
관광객보다도 경주 현지인들에게 이름 날리는 곳인 듯하다. 오픈 12시 맞춰서 갔는데 손님들이 꾸준히 계속 들어왔다. 빵맛집답게 빵만 사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최근에 재오픈했다는데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이 공간의 느낌 자체가 너무 좋아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마지막 행선지는 국립경주박물관이었다. 뭔가 경주에 가면 꼭 들러야 될 것 같은 느낌이라 가봤다. 어릴 때의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오래된 건물 한 두 개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가보니 주차장도 크고 건물 내부도 신식이었다. 당연하다 거의 17년이 지났다.
여긴 아이들이 많았다. 어린이박물관도 같이 있고 아이의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엄빠들의 욕심(..?)때문인 듯.
땅 파면 유물 나온다는 경주라서 그런지 신라시대 유적-장신구나 그릇 같은 것들-의 양이 상당했다. 신라 귀족들 화려한 거 엄청 좋아했는지 금으로 만든 귀걸이 목걸이 금관 등등 천 년 전 물건인데도 겁나 번쩍거리고 섬세하고 예뻤다.
박물관 건물 앞에 그 유명한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이 있고 20분마다 녹음한 종소리를 틀어준다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소리는 못 듣고, 게하에 맡긴 가방 찾아서 경주역으로 출발했다. 기차 미리 예약 안 해놔서 경주역 도착해서 취소표 노리다 줍줍했다 이것이 "P"의 여행.
1박2일 간 택시 한 번도 안 타고 걷고 버스 타고 걷고 하며 여행을 마쳤다(평소에도 막차 끊긴 거 아니면 안 탄다). 23년 여름 강릉 이후 오랜만의 국내 혼여였다. 나름 '봄맞이'라는 명분을 붙였는데 정말 시작되는 봄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혼자 여행할 때마다 느끼지만 혼여는 자유롭고 외로우며 행복하고 쓸쓸하며 편하면서도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맛에 자꾸 가게 되는 것도 있지만 잘 맞는 여행 짝꿍이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떠나지 않기도 하고. 사실 해외보다 국내 혼여가 더 외롭다. 해외는 국내보다 정신없기도 하고 국내보다 혼자 다니는 사람도 많은 느낌이랄까. 국내 여행 다니면 왜 이렇게 연인들이 많을까!!ㅠ
혼자 여행하는 거 안 해봤다면 아주 추천하지만 나는 여러 번 해봤으니,, 빠른 시일 내에 여행 짝꿍이 생겼으면 좋겠지만,,,이번 생엔 글른 것 같네,,,^-^ 그렇다고 이번 여행이 안 좋았다는 건 아니다! 진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