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극복하기
김보성 배우의 아이콘은 바로 '의리!'이다. 한화의 핵심가치 중 하나도 '신용과 의리'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의리는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의리란 도대체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로 정의되어 있다. 잘 와닫지 않는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남을 배신하지 않고 한 번 내뱉은 말, 한 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내는 것이 우리가 흔히 쓰는 의리의 참 뜻이 아닐까 싶다.
사회생활에서 의리는 참 많이 강조된다. 특히 의리의 가치가 중시되는 조직이 있다. 그게 바로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깡패집단'이다. 50년대 정치깡패로 전국을 휘어잡았던 이정재가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보면서 의리라는 가치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정재라고 하면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국민 배우 이정재 씨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등장하는 이정재는 1950년대에 악명을 떨쳤던 깡패 두목이었다. 그것도 당시 자유당 정부와 결탁해서 정부의 비호 아래 이권을 챙기던 악질 깡패였다. 20여 년 전 드라마 '야인시대'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당시 김영호 배우가 연기했던 이정재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씨름의 명수였다. 씨름대회가 열리면 항상 우승자는 이정재였고 이때 상으로 받은 황소를 합치면 13마리라는 소문도 있다. 그는 힘만 잘 쓰던 게 아니었다. 소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전체 국민의 20% 밖에 되지 않던 시절, 그는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엘리트였다. 힘과 머리를 겸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좋은 재능을 악한 일에 사용하게 된다.
그는 '장군의 아들' 김두한 밑으로 들어가 깡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김두한이 정치계로 진출하게 되자, 그는 동대문 시장 지역 상인들을 밑에 두고 이권을 챙기는 동대문파의 두목이 된다. 점포 수가 3,000개에 이르렀고, 휘하 조직원만 1,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는 슬슬 정치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당시는 이승만 대통령 때였다. 자유당 정부는 깡패들을 동원해서 정권 기반을 다지게 된다. 정치를 위해서는 돈과 조직 이 두 개가 필수적인데 깡패들은 상명하복의 조직 체계가 있기에 깡패들을 활용한 것이다.
이들은 야당 선거유세 때마다 각목을 들고 나타나 유세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야당 의원에 대한 테러도 심심치 않게 벌였다. 여당 의원의 정치행사 때도 동원되어 마치 야쿠자 조직행사 마냥 90도로 인사하며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정재는 점점 정권과 유착되어 갔다.
이때 이정재는 임화수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이정재보다 두 살 어린 고향 후배였다. 임화수는 충성을 맹세했다. 사실 그는 무일푼으로 상경하여 영화관 직원으로 일하다가 해방 이후 일본인이 버려두고 간 서울의 평화극장을 매수하여 연예계 실세가 된 사람이었다. 그는 이정재의 깡패조직을 이용해서 연예인들을 자기 휘하에 넣고 싶어 했다.
임화수는 배운 것은 없었지만, 아첨으로 지금 위치까지 올라간 사람이었다. 그는 이정재를 치켜세우며 학식 있고 힘 있는 대한민국의 빛과 같은 존재라고 치켜세웠다. 이정재는 그의 말에 껌뻑 넘어갔다. 그리고 의형제 관계를 맺었다. 이정재의 인심을 얻은 그는 곧 동대문파 부두목 자리까지 올라간다.
그는 국회의원 출마까지 꿈꾸게 된다. 그의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서 출마를 꿈꾼 것이다. 정치깡패를 동원해서 야당 정치행사를 방해하고 자유당 의원들에게 깡패들을 보좌관으로 붙이며 온갖 후원을 제공했기에 그는 국회의원 자리 하나는 당연히 보장되는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시 정권의 실세였던 부통령 후보 이기붕이 이천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80세 중반의 고령이었다. 그가 죽으면 이기붕이 다음 대통령으로 예상될 만큼 그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이기붕이 출마한다는데 반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정재는 그렇게 정계 진출이 무산되었다. 다른 곳에서 출마하려고도 했지만 자유당에서는 그에게 더 이상 호의적이지 않았다. 너무나 커져버린 그의 세력에 차츰 부담을 느꼈던 것이다. 이정재가 힘을 잃어가자 동대문파 내에서도 조금씩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는 깡패 세계의 구호가 얼마나 허망한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달이 차면 곧 기우는 법이다. 이걸 가장 빨리 포착한 사람은 바로 그의 의형제 임화수였다. 그는 두목 자리만 유지한 채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했기 때문이다. 임화수는 눈치와 아첨의 달인이었다. 그가 자유당 정권과 빌붙기 시작한다.
이승만 대통령을 찬양하는 영화를 직접 사비를 들여 만들고, 연예인들을 총 동원하여 자유당 행사 때 참석시켰다. 여자 연예인의 경우 성상납까지 강요당했다. 그렇게 그는 온갖 못된 짓을 하며 정권의 비위를 맞췄다. 다소 뻣뻣했던 이정재보다 임화수가 더 예쁨을 받은 것은 당연지사였다.
4.19 혁명 때 임화수는 고려대생들이 시위를 하자 정치깡패들을 대규모로 동원하여 학생들을 쇠파이프로 공격하였다. 이때 여러 명의 학생들이 죽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정권을 위한 충견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이 일이 그의 발목을 잡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도 도긴개긴이었다. 과거 자유당 정권의 만행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당연히 이정재와 임화수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석방된다. 그러나 엄청난 위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5.16 군사정변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사회악 세력들을 소탕하는 것을 기치로 삼고 있었다. 시범 케이스로 벼르고 있던 것은 바로 정치깡패들이었다.
이정재, 임화수 등 동대문파 출신 정치깡패들은 모조리 다 체포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포승줄에 꽁꽁 묶인 채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 플래카드를 들고 종로거리를 걸어가야만 했다. 당시 길가에 서있던 시민들은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했고 심지어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바다로 가라앉기 시작한 난파선에서는 서로 먼저 탈출하려고 아우성이 펼쳐진다. 지금 정치깡패들이 딱 그랬다. 자기라도 살아야겠다고 동지 이런 거는 안중에도 없었다. 깡패 부하들은 두목이 시켜서 한 것뿐이라고 발뺌했고, 두목급 수괴들도 서로 자기는 시켜서 했다고 변명만을 늘어놓았다.
그중 임화수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그는 모든 잘못을 이정재 탓으로 돌렸다. 예전 의형제를 맺으며 의리를 강조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저 자기라도 살아남기 위해 물귀신처럼 주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판사가 묻지도 않은 이정재의 죄에 대해 참말, 거짓말 보태서 다 털어놓았다. 심지어 고려대생 습격사건처럼 자신이 한 것이 명백한 사건에 대해서도 이정재가 뒤에서 사주했고 자기는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말했다.
재판정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정재의 다른 부하들은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느냐고 임화수에게 달려들다가 저지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임화수의 처절한 폭로는 그칠 줄을 몰랐다.
결국 이정재는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혁명 재판 후 불과 5개월 만이었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그렇게도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 쳤던 임화수 역시 교수형을 면치 못했다. 의리가 어쩌고 의형제가 어쩌고 잘 나갈 때는 서로 좋아 죽던 두 사람은 마지막에는 서로 물어뜯고 추한 모습을 보이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세상에 의리라는 말처럼 허망한 단어가 또 없다. 어떤 사람이 잘 나갈 때는 주위에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든다. 이들은 의리를 강조하며 간이며 쓸개며 다 빼줄 것처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몰락하는 순간, 주변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다 떠나간다. 의리 따위는 없는 것이다. 떠나기만 하면 다행이다. 어떤 경우는 자기에게 흙탕물이라도 튈까 봐 더 적극적으로 공격한다. 세상인심이란 이런 것이다.
정승집 강아지 장례식에는 조문객들이 몰려도, 정승 장례식에는 조문객이 안 간다는 속담이 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잘 나가는 사람과 친하게 지냈을 때 나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일 뿐이다. 콩고물이 더 이상 안 떨어지는 순간 나가리가 되는 것이다.
의리 따지지 말고 내 실력을 키우자. 그리고 훗날 성공했을 때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경계하자. 이 사람들이 말하는 사탕발림에 속지 말고 나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하자. 내가 나에 대해 잘 모르면 이 사람들이 하는 말에 빠져들게 된다.
내가 위기에 빠지게 되면 의리가 아니라 결국에는 내 개인기로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러니 내 실력을 키우고 실속을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