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능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 신문사에서 나의 외모는 어느 정도인지 설문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평균 이상이다'로 응답한 사람은 자그마치 71퍼센트였다. '나의 외모는 평균 이하'라고 응답한 사람은 불과 8퍼센트였다. 그만큼 사람은 자기에 대해 관대하다.
이는 글쓰기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자아도취에 빠지기 쉽다는 뜻이다. 블로그나 브런치 스토리를 찾아보면 글 잘 쓰는 방법에 대한 글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중에는 글을 정말 잘 쓰는 분들도 계시지만, 아직 타율이 2할 5푼대인 선수가 1할 5푼 치는 선수에게 조언하는 듯한 글들도 보인다.
처음 글을 쓰면 나타나는 심리적인 변화가 있다.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이론을 통해 글을 쓰게 된 이후 사람들은 어떤 감정의 기복을 겪게 되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미국 코넬 대학교의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 교수와 그 조교였던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는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실험하였다.
실험 결과는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지극히 자신감이 없던 사람들이 일단 어떤 일을 시작하게 되면 급격히 자신감이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시작 전에는 거대하게만 보였던 산이 막상 한 발, 두 발 오르기 시작하자 생각보다 별로 힘들지 않은 것과 같다.
스키를 배울 때를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스키를 들고 슬로프를 바라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도저히 못 탈 것만 같다. 리프트에서 내리는 순간 속도가 장난이 아니게 확 빨리 지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몇 번 자빠지고 구르면서 조금씩 무게 중심 잡는 방법, 멈추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이제 그렇게 자신감이 붙게 된다. 무섭기만 했던 스키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에서는 이 단계를 '우매함의 봉우리'라고 명명하였다. 당랑거철이라는 사자성어처럼, 사마귀가 마차한테 덤비는 격이다.
이 세계에 어마어마한 고수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미 유명한 네임드, 터줏대감들 뿐 아니라, 재야의 숨은 고수들도 참 많다. 어쩌면 저렇게 많이 알고, 기술도 좋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초반에 철도 씹어먹을 것 같은 자신감은 슬며시 사라져만 간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았는데 해보니 이게 장난 아니다. 정말 쉽지 않다. 하는 거는 어렵지 않은데, 잘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누구나 가수가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유명한 가수가 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이 길로 아예 직업을 바꿔도 되겠다 싶었던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눈 녹은 듯이 사라져만 가고 있다.
이 단계는 '절망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알기 힘든 상태인 것이다.
내 위치를 알고 잠시 좌절했지만 꺾이지 않는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최고가 되려고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돈, 명예 다 부차적일 뿐이다. 다시 신발끈을 매고 뛸 준비를 한다.
크루거는 이를 '깨달음의 오르막'이라고 하였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다시 동기부여를 하기 때문이다. 내 위치를 정확히 알고 부족한 점을 찾아 학습하게 된다. 잘하는 사람들을 벤치마킹하며 장점을 내 것으로 흡수하게 된다. 그렇게 다시 올라가는 것이다.
이제 나는 어느 정도 목표지점에 다다르게 되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처음에 비하면 일취월장했다. 적어도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어! 이런 성공 비결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수록 단단해졌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이 길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단계는 '지속 가능성의 고원'이라고 한다. 공자가 말한 지천명 단계처럼, 하늘의 뜻까지는 몰라도 이제 무엇이 옳고 무엇이 효과적인지는 아는 수준까지는 오른 것이다
2024년 12월 22일 나는 처음으로 블로그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전까지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세계였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들과 결합해 보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처음 열흘 간은 블로그 하루 방문자 수가 5명을 넘지 않았다. 한 명도 안 오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했다. 고시 공부 할 때 2차 시험 답안지 써 본 이후로 15년 만이었다. 의외로 술술 잘 써지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고비가 찾아왔다. 글의 소재는 점점 떨어져 갔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출퇴근 길 지하철 타는 시간, 점심 먹고 난 이후 잠깐 외에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집에서 글을 쓸라고 하면 아내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글 좀 그만 쓰고, 애 공부 좀 가르쳐! 얘 한 시간 동안 문제지 꼴랑 한 장 풀었어"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지식수준을 보유한 무림의 고수들이 많았다. 뭔 놈의 책을 그리도 많이 본 건지 백과사전 수준이었다. 나는 책 봤다고 어디 가서 자신 있게 말하기도 민망했다. 그만큼 지식 격차가 컸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달리 먹기로 하였다. 최고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이 일이 내 적성에 맞고 제2의 인생으로 삼아도 될 만큼 경쟁력이 있다면 그때 가서 회사를 계속 다닐지 말지 결정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심리학, 역사 그리고 최근 트렌드를 공부하면서 글의 깊이가 더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감을 다시 갖게 되었다.
캐럴 드웩의 책 '마인드셋'을 보면 다음 글이 있다. 고정 마인드셋이 아니라, 성장 마인드셋을 가지라고 강조하고 있다.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은 내 능력이 딱 이 정도라고 한정 짓는다. 병 안에 갇혀던 벼룩이 병이 없어진 다음에도 딱 그 병 높이만큼만 뛰듯이, 이들은 더 노력하려고 하지 않는다. 운명론적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은 다르다. 이들은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지금의 나를 끊임없이 발전시키려고 책을 읽고 공부한다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늘 낙천적이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고 배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비록 처음에는 좌절하더라도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다시 있는 힘을 내서 도전한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사막의 단비 같은 사람들이다. 부디 다들 성공하셨으면 좋겠다.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그런 성공보다,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고 남을 이롭게 하는 그런 성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