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오늘 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팀장은 자리에 앉아 오만상을 찌푸리며 혼자 씩씩거리고 있다. 주변의 팀원들은 그런 팀장을 보며 숨 죽이고 앉아 있다. 오늘 뭔가 안 좋은 일이 있구나.. 몸 조심해야겠다 싶어진다.
주 대리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이렇게 팀장이 기분 나쁜 날 표적이 되는 것은 항상 나였다. 팀장은 만만한 주 대리에게 화풀이를 하고는 했다. 화풀이 거리도 각양각색이다. "옷차림이 왜 그 따위야?", "내가 시킨 일 어디까지 했어?", "요즘 칼퇴하네? 할 일이 별로 없으신가 봐요. 주 대리님?" 이런 비방과 조롱이 그에게 마구잡이로 쏟아지고는 했던 것이다.
아.. 느낌이 좋지 않다. 뭔가 또 쓰나미가 나에게 닥쳐올 것만 같다. 아니나 다를까 주 대리 등 뒤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주 대리, 어제 내가 시켰던 보고서 가져와봐. 어디까지 만들었어? 왜 중간보고 한 번 안 하는 거야? 항상 자기 멋대로네?"
항상 자기 멋대로인 건 팀장 너님이시겠지요. 속으로 웅얼거리며 주 대리는 보고서를 들고 팀장 자리로 간다. 젠장, 불길한 느낌은 언제나 들어맞는다. 당장 회사 때려치우고 미아리 가서 점집이나 차려볼까 싶어진다.
희생양이란 영어로 '스케이프 고트(scape-goat)'라고 부른다. 나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는 염소를 의미하는 것에서 영어 단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구약 시대 때는 자기 죄를 신에게 회개할 때, 사람이 죽을 수는 없으니 양이나 염소, 비둘기를 대신 속죄제물로 사용했다.
염소의 경우 한 마리는 제물로 바쳤고, 다른 한 마리는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로 보내졌다. 광야로 보내진 염소는 굶어서 죽거나, 맹수에게 잡아 먹히게 된다. 이처럼 희생양은 나를 대신해서 주는 존재를 의미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희생양은 역사상 항상 존재했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로마 네로황제 때 로마시의 절반을 다 태워버릴 정도의 대화재가 발생하였다. 속설에는 네로황제가 시를 쓰다가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자 극적인 효과 연출을 위해 불을 지르라고 지시했다는 설도 있다.
네로황제가 로마 시내에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로마시 전체로 번져나갔다. 궁지에 몰린 네로황제는 희생양을 찾아 나섰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인들이었다. 다신교였던 로마는 주피터, 비너스, 넵튠 이런 신들과 함께 로마 황제를 신으로 모셨다. 황제를 슬그머니 신의 반열로 올려 황제의 권위를 높이려는 뜻이 들어 있었다.
로마에서 각종 경제활동이나 공직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로마황제에게 신앙고백을 해야만 했다. 우상숭배를 금하는 기독교인들은 이를 거부했다. 남들은 다 하는데 이들만 안 하고 있으니 로마 사회에서 미운털이 박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네로는 로마 시민들이 기독교인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을 악용해서 로마 시내에 불을 지른 것은 기독교인들이라고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결국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산채로 화형 당하거나 원형 경기장에서 짐승의 가죽을 걸치고 맹수에게 잡아 먹히는 방법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런 네로도 불과 4년 뒤 반란이 일어났을 때 자기 목을 스스로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악인은 언젠가는 죄의 값을 돌려받는 법이다.
14세기 중세 유럽은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였다. 흑사병은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발병하는데 엄청난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 이 병에 걸리게 되면 혈액이 혈관 속에서 응고되어 피가 잘 흐르지 않게 된다. 손가락이나 발가락 끝은 피가 도달하지 못해 까맣게 변하게 되며, 결국 온몸이 까맣게 변해가며 죽어가는 무서운 병이다.
의학 지식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세 시대는 이 병이 쥐 때문에 창궐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도리어 고양이가 흑사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해서 고양이를 박멸하는 바람에 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신앙에도 의지해보고 흑마술을 해보기도 하였다. 소설 데카메론 속 주인공들처럼 산속 깊숙이 숨어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방법들이 별 소용이 없자 그들 나름대로 이 병의 원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이때 표적이 된 것이 유대인들이었다. 서기 70년에 로마에 의해 나라를 잃고 유럽 각지에 퍼져서 살아가던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고집스럽게 그들의 고유문화를 지키며 자기들끼리 모여 살아갔던 탓이었다. 특히 흑사병에 걸린 유대인들이 매우 적다는 사실은 그들이 이 병을 퍼뜨렸다는 소문의 증거가 되고 말았다.
유대인들은 매일 예배를 드리는데 그전에 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식사 전에도 반드시 손을 씻고 식사를 했다. 그들의 철저한 위생관념이 흑사병에 걸리는 것을 막아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외면한 채 유대인들이 마법을 써서 흑사병을 퍼뜨리는 것이라고 유럽 사람들은 굳게 믿었다. 결국 수많은 유대인들이 붙잡히게 되었고, 그들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1923년 9월, 일본의 수도가 있는 관동 지방에서 리허터 규모 7.9의 큰 지진이 발생하였다. 사망, 실종자 수만 18만 명에 이르는 대참사였던 것이다. 당시 어느 지역에서는 강에 빠져 죽은 사람이 워낙 많아서 강물이 흘러내려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제대로 된 구호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자 사람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이나 무정부주의자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사람들에게 자기들 사상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때 일본 정부는 사회 불안 원인을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당시 가난했던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자기 땅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며 그들의 일자리를 다 뺏어간다고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걸 악용한 것이었다.
조선인들이 물건을 훔쳐가고 우물에 독을 풀며 집집마다 방화를 저지르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지진으로 흥분할 대로 흥분한 사람들은 진위 여부는 따지지도 않았다. 조언인들이 눈에 띄면 닥치는 대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길 가던 사람들을 상대로 '15엔 50전' 발음을 해보라고 시켰다. '주고엔 고짓센'인데 이 발음은 조선인들이 발음하기 힘든 ㅈ발음이 마구 섞여 있는 단어이다. 한국어의 ㅈ나 ㅉ, ㅊ와는 다르다. 영어의 Z와 유사한 발음을 내야 한다.
한국인들이 정확한 발음을 하지 못하고 '쭈고엔'이나 '추고엔' 이렇게 발음을 하면 자경단원들이 그 자리에서 일본도로 내리쳐버렸다. 당시 이렇게 죽은 사람이 수 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국인뿐 아니라, 발음이 어눌했던 본토 일본인들도 이때 적지 않게 학살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수많은 조선인들은 희생양이 되어 이국땅에서 억울하게 죽고 말았다.
1편에서는 역사를 통해 희생양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이 사건들 외에도 희생양이 되어 비참하게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수히 많습니다.
2편에서는 직장에서 희생양이 되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