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우상화를 시도하는 리더
리더가 된 뒤, 숭배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리더이니 나는 명령하고, 너희는 복종해야 한다는 그런 마인드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마치 고위 임원에게 하듯이 본인에게 보고하기를 원하고, 식당에서는 늘 상석 자리만 고집한다. "요"로 끝나는 말을 쓰지 말고, 군대식으로 "다나까"로 말을 끝맺으라고 하기까지 한다.
이런 리더는 자기가 마치 왕이 된 것처럼 군림하려고 든다. 그런 리더들은 대부분 그 끝이 좋지 않았다. 구성원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빵 터지는 순간이 언젠가는 오기 때문이다.
역사상으로도 그런 리더가 있었다. 자기가 신처럼 추앙받기를 원하고 국가를 세팅했던 왕이었다. 그는 루마니아의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였다.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우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형제자매들이 열 명이나 된 탓에 매우 가난했던 그는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다. 학용품을 살 돈도 없었다고 하며, 신발이 없어 맨발로 학교를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 시절 가정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늘 외톨이로 지내야 했던 것이 그가 개인 숭배에 대한 환상을 갖게 했을 것이다.
그는 결국 11살 때 지긋지긋했던 집을 떠나 무작정 루마니아의 수도였던 부쿠레슈티로 갔다. 그곳에서 구두 수선공이 되어 구두를 닦고 고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 구두집 주인은 당시 유행하던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그 밑에서 일하면서 차우세스쿠는 공산주의에 빠지고 만다. 내가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은 이 사회의 가진 자들의 부조리함 때문이라는 왜곡된 사상을 갖게 된 것이다.
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15세 때 체포되어 처음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이후로도 수감과 출소를 반복하며 조금씩 그는 거물급 공산당 간부로 한 단계씩 오르게 되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그는 공산주의를 맹목적으로 찬양하고 있었다. 이 무렵 비슷한 성향을 가졌던 여성 공산주의자 엘레나를 만나게 되었고 둘은 결혼하게 되었다.
그가 떠받들던 게오르기우데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루마니아의 초대 서기장이 되면서 출세길이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늘 강경파 곁에는 극성팬들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자기들이 가려운 곳을 속 시원히 긁어주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를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던 그는 고속승진을 거듭하게 되었다.
1965년 게오르기우데지가 갑자기 사망하자 그가 다음 서기장이 되었다. 당시 47세의 젊은 나이에 루마니아 최고 통치자가 된 것이다. 그는 마치 왕이 된 것처럼 취임식 때 금으로 된 지팡이를 선사받으며 권력을 가진 것을 뽐내었다고 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하였다.
그러나 그의 치세 전반부에는 딱히 이상한 행동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상화 작업이 시작되면서 루마니아 곳곳에 그의 동상과 사진이 걸렸지만 공산주의 국가치고 그렇지 않은 곳이 없었던 만큼 이는 별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아닌 건 아니라고 소련에 말하면서 독자노선을 걸으려는 그의 모습에 국민들은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이 되자 그는 점점 이상하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시작은 1970년대에 그가 북한을 국빈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났던 일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엄청난 인파가 꽃을 들고 도로변에서 춤을 추며 그를 환영하고, 경기장에서는 매스게임을 펼쳤다. 이 모습을 보고 속칭 뿅 간 그는 루마니아도 북한과 같이 지도자를 신으로 떠받드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는 '인민궁전'이라는 거대한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당시 전세계에서 미국 펜타곤 다음으로 큰 건축물로 방이 무려 1,100개나 되었다. 그의 치적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궁전은 콩고산 나무로 만든 가구에 온갖 보석이 박힌 샹젤리에에 금접시까지 진귀한 물건들로 가득 찼다. 현대판 아방궁이었던 셈이다.
그의 우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그와 그의 부인 엘레나의 생일은 가장 중요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모든 관공서와 학교에는 그의 초상화가 내걸렸으며 그의 이름이 잘린 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그를 수식하는 말이 수두룩하게 달라붙었다. '우리들의 빛의 원천' '다뉴브 강과 같이 풍부한 사고를 가진 인물' '루마니아 천년 역사에 우뚝 선 위인' 낯 간지러운 말들이 한가득 그에게 포도송이의 포도알처럼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그가 쓴 자서전은 루마니아 국민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모든 가정에는 그의 책이 비치되어 있어야 했으며 학교에서는 그 내용을 암기하도록 하였다. 심지어 그 책을 공짜로 나눠준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도록 강요했다.
사진 속의 인물들은 차우세스쿠보다 작게 나오도록 보정되었다. 작은 키(165cm)가 콤플렉스였던 그는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키가 크게 나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키뿐 아니라 사진 속 주름도 전부 다 없애야만 했다.
이 정도만 되었어도 사실 큰 문제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에 지장이 온건 아니니까.. 그러나 그의 진짜 문제는 우상화가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기 위해 비밀경찰 제도를 둔데 있다. 이 비밀경찰은 '세쿠리타트'라고 불렸으며 고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루마니아는 고아들이 넘쳐나는 국가였다. 그렇게 된 데는 깊은 사연이 있었다.
차우세스쿠는 인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상상을 초월하는 출산 장려 정책을 썼다.
결혼한 부부들은 아내의 배란기가 언제인지 당국에 신고해야 했고, 그 기간에 부부관계를 했는지도 보고해야 했다. 안 했을 경우는 왜 안 했는지 그 이유를 소명해야 했다.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는 엄청난 벌금을 내야 했다. 피임, 낙태는 금지되었다. 부부는 최소 4명의 아이를 낳아야 했고, 부인이 40세가 될 때까지 아이가 4명 미만일 경우에는 루마니아 국민 평균 연봉의 20~30퍼센트에 달하는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다.
이때 루마니아는 성병이 창궐했다고 한다. 성병이 있음에도 법 적용에 예외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국외로 탈출하였다. 이때 탈출을 막기 위해 그는 조선시대 오가작통법 같은 감시 체제를 만들었다. 다섯 집 중 한 집에서 법 위반 사례가 발각되었을 경우,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죄를 물어 나머지 네 집을 처벌한 것이다. 이제 루마니아는 이웃도 믿을 수 없는 삭막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도저히 아이 4명을 감당할 수 없었던 많은 부부들이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거나 유기하였다. 이런 아이들이 루마니아에 넘쳐나게 되었으며, 차우세스쿠는 이들을 요긴하게 활용하였다. 어릴 때부터 집단생활을 하며 차우세스쿠가 신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그들은 성인이 된 후 '세쿠리다트'라고 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비밀경찰이 되었다. 비밀경찰은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그의 영광은 영원하지 않았다. 그의 몰락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1980년대 말 공산주의 진영의 몰락에서 비롯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은 고르바초프 아래 개혁, 개방 정책을 쓰며 위성국가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루마니아 국민들은 다른 이웃 공산주의 국가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24년 간 차우세스쿠 통치 이래 국민들은 너무나 시달렸기 때문이다. 발단은 지방 도시에서 반 차우세스쿠 운동을 하던 한 성직자가 무자비하게 폭행당한 데서 시작하였다. 그 지역은 헝가리계 주민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헝가리계 주민들은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을 일삼는 차우세스쿠를 증오했다. 차우세스쿠는 즉각 군을 그 지역에 투입하여 시위대에게 무차별로 총을 쏘았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정권 퇴진운동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차우세스쿠는 자신의 인민궁전 앞에서 국민들에게 강경진압의 정당성을 알리려고 했다. 앞에는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공산당원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차우세스쿠에게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신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신에게 욕을 하다니.. 멘붕이 온 그는 연설을 멈추고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비극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부쿠레슈티의 시민들이 들고일어났던 것이다. 그는 루마니아 군에게 발포를 지시했다. 그러나 군이 명령을 따르지 않자 비밀경찰인 세쿠리타트에게 진압지시를 내렸다. 세쿠리다트는 총검으로 찌르고, 로켓포에 수류탄까지 온갖 무기를 시민들에게 사용하며 잔인하게 진압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분노하였고, 거리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 차우세스쿠는 발포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군 사령관을 납치하였고, 며칠 뒤 그 사령관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는 루마니아 군의 분노를 촉발하였다. 이제는 군대가 시민의 편에 서서 차우세스쿠 인민궁전으로 진격하였다. 세쿠리타트 비밀경찰이 차우셰스쿠를 위해 싸웠지만, 수적으로 열세였던 그들은 하나둘씩 죽었고, 차우세스쿠와 그의 아내 엘레나는 체포되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사살되고 말았다. 신이라고 불리기를 원했던 사람의 죽음치고는 너무나도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이었다.
차우세스쿠처럼 우상화까지 시도하는 리더는 없겠지만, 떠받들여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다. 이들은 자기가 주목받고 싶어 하고 늘 주변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늘 중심에 서야 직성이 풀린다. 이들 앞에서 누군가를 칭찬하면 분노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셈이다.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다분한 리더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차우세스쿠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학교도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시절 가난했고, 경제력 없는 아버지 밑에서 살았던 기억은 그에게 성공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 이런 리더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일단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기에 이런 말을 받아들일 리가 없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괴롭기만 하다. 항상 리더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고, 조금만 신경을 거스르면 불벼락이 떨어진다. 오늘은 어떤 걸로 혼나게 될까 늘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런 리더 밑에서는 창의성이라는 것은 발휘되지 않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이크로 매니징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 보고받아야 하고 자기가 직접 다 결정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보고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써야만 한다.
심지어 자기를 사장과 같은 레벨로 대우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자기가 받는 보고서는 마치 사장이 받는 보고서처럼 정해진 글씨체에 폰트, 규격까지 다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핵심만 간결하게 요약해야 한다. 밑의 직원들은 이런 작업을 하느라 몇 시간을 써야만 하고 매일 야근하고 주말 근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모든 게 자기 때문인 줄도 모르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얼마나 한심한 리더인가?
당신이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런 사람에게서는 탈출해야 한다. 아니면 독한 마음먹고 3년만 딱 버텨보자. 어차피 리더 자리는 3년 이상 가는 경우는 드물다. 새로운 사람이 올 때까지 버티고자 한다면, 옆에서 아부하며 아양 떠는 사람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리더는 희생양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 사람을 집요하게 학대하며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몸과 마음이 병들게 된다. 적어도 시킨 일은 빈틈없이 하면서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이 좋다. 만일 리더의 이런 성향이 도를 넘는다면 증거를 차곡차곡 수집해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차우세스쿠에 대한 글을 쓰면서 북한이 자꾸 오버랩되는 것이었다. 차우세스쿠 이상으로 국민들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김 씨 일가들이 하루빨리 제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끝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