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1차 세계대전은 4년 3개월 간 유럽에서 진행된 인류 최악의 재앙 중 하나였다. 무려 천만 명이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전투기, 전차, 독가스, 기관총, 화염 방사기 등 온갖 신무기들이 등장하여 병사들의 목숨을 위협했다.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라고 잘 알려져 있다. 병사들은 북해 해안가에서 알프스 산맥까지 600km 넘게 이어진 구덩이 속에 들어박혀 4년 내내 상대편 참호를 차지하는 전투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 번 상대편 참호로 돌격하게 되면 멀쩡하게 살아 있는 병사들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기관총에 막혀 대부분 갈려 나갔던 것이다.
비가 오면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간이 화장실이 범람하여 참호 안으로 분뇨가 떠다녔다. 이게 싫어서 참호 밖으로 나가는 순간 상대편 참호에 숨어 있는 저격수의 총에 그대로 맞고 말았다. 진흙탕에 분뇨까지 떠다니는 참호 속에서 그들은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만 했다. 참호족이라고 해서 발이 썩는 병사들도 있었고, 견디지 못하고 탈영을 시도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물론 탈영병은 곧바로 공개 처형되었다. 시체를 파먹고 통통해진 쥐들은 사정없이 병사들을 공격했다. 이런 지옥 속에서 정신병에 시달리는 병사들도 많았다.
이런 지옥 속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이를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영국군과 독일군 병사들 사이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위에서 시킨 것도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병사들 간에 전투를 중지하고 친교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1914년 12월, 영국군과 독일군은 서부전선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그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전에도 포격전이 있었고 수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밤이 되자 스코틀랜드에서 온 영국군 병사들은 백파이프를 들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 소리는 은은하게 울려 퍼졌고 백 미터 밖의 독일군 참호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그러자 독일군 참호에서는 이에 대한 답례로 다른 캐럴송이 흘러나왔다. 거기에는 성악을 하는 병사가 있었다. 풍부한 성량으로 캐럴을 부르고 있었다.
이때 멀리서 백파이프 소리가 들렸다. 노엘 가사에 맞춰 연주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제는 영국군, 독일군 할 것 없이 수 백 명이 그 반주에 맞춰 크리스마스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라는 공통분모 앞에서 적대감은 사라지고 평화만이 참호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얀 눈발은 그 순간을 축복하듯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또 벌어졌다. 독일군 쪽에서 한 병사가 크리스마스트리를 높게 치켜든 채 참호 밖을 나와 영국군 참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 좀 죽여주세요!" 이 정도 수준의 자살 행위였다.
양쪽의 군사들은 긴장한 채 숨죽이며 그 병사가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그 병사는 무사할 것인가? 영국군 쪽에서는 교전 수칙에 따라 그 병사를 쏘려고 했다. 그러자 영국군의 한 장교가 사격 중지를 명령했다. 마침내 그 독일군 병사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든 채 영국군 참호까지 무사히 걸어가게 되었다.
그 순간 누가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양 측의 모든 병사들이 참호를 뛰쳐나와 양 쪽 참호 사이 무인지대에서 서로 만났다. 그들은 마치 예전부터 서로 알았던 사이처럼 서로 얼싸안고 악수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참호에서 소시지, 빵, 와인, 맥주를 서로 교환하며 그 자리에서 서로 먹고 마셨다. 서로의 군모를 교환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참호 사이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거두어 한 곳에 묻기도 하였다. 양측의 장교들은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공격을 멈추기로 상호 합의하기에 이른다. 전쟁터에 짧게나마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시체들을 모두 치운 후, 곧바로 두 나라 간에는 즉석 축구경기가 시작되었다. 혈기 넘치는 두 나라의 군인들은 평소 참호 속에서만 쭈그리고 있다가 마음껏 열정을 뿜어내었다. 마치 영국 대 독일 국가대표 축구경기 같았다. 결과는 독일의 3대 2 승리였다고 한다. 마지막 독일의 결승골은 오프사이드인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훈하게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아쉽게도 그 휴전은 크리스마스 기간에만 이루어졌다. 물론 한 번 유대감을 느낀 양 쪽의 병사들은 상대편을 제대로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호 합의 하에 신호를 정했다. 포 공격 전에는 멀리 수차례 경고 사격을 하였다. 그리고 정해진 방향으로만 포를 쏘았다. 상대방은 미리 공격을 예측하고 포가 떨어지는 곳에서 철수하였다. 이렇게 적대적인 공격 행위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는 들통나고 말았다. 병사들 중 일부가 집으로 편지를 보내면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쓴 것이다. 모든 편지는 사전에 검열을 거쳐 발송되었기에 상부에서 알아채고 말았다. 양 국의 지휘관들은 분노에 휩싸였다. 공격은 안 하고 적군들과 놀아난다고? 이를 중대한 반역 행위로 간주하였다. 조사가 시작되었고 많은 장교들과 병사들은 처벌을 받게 되었다.
즉결 처형을 당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간신히 처형을 면한 병사들은 가장 위험한 전장으로 배치되었다.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짐작건대 살아 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전쟁은 그 뒤로도 4년이나 더 지속되었고 독가스, 전차 등 신무기들이 사용되는 전장에서 병사들의 평균 생존기간은 13일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면 참 안타깝기만 하다. 전쟁은 위에서 일으키고 자기들은 편안하게 앉아서 명령만 내리면서 밑의 병사들은 죽든 말든 소모품 취급하며 아무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하루 평균 병사들 사망자 수가 5,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런 곳에서 서로에 대한 증오를 멈추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 것이 그렇게 큰 죄인지 의문이 든다.
'팃포탯 (Tit-for-Tat)'이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어떤 상황 하에서 협조가 일어날 수 있는지 설명하는 전략이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없는 경우 무턱대고 그 사람을 믿을 수는 없다. 자다가 코 베이기 십상이고, 눈퉁이 맞기 딱 좋은 험난한 세상에서 더더욱 돌다리도 두드려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즈니스로 만난 동료를 무턱대고 믿을 수만은 없다. 나는 이 사람을 믿고 말을 했는데 이게 소문이 퍼져 수습 곤란한 상황에 닥치기도 하고, 나를 끌어주겠다고 하면서 온갖 궂은일 다 시키던 리더가 갑자기 팀을 떠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직장에서 협조라는 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직장에서 협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을 충족해야 할까? 크리스마스 휴전 상황에 맞추어 설명하고자 한다.
영국군과 독일군은 기독교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도대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대체 누굴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는 상태였다. 서로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직장에서도 같이 고생하며 일하는 동료라는 연대 의식이 있어야 한다. 서로 비슷한 일을 하며 같은 건물에서 비슷한 시간에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만원 엘리베이터에 늘 시달리는 등의 유사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동호회를 장려하며 많은 기업에서 동호회 활동비를 지원해 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모임을 통해 자주 교류하며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게 되면 업무 하기가 훨씬 더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서로 공유하는 가치가 많을수록 원활한 협조가 이루어지게 된다.
크리스마스 휴전 때, 한 독일 병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크리스마스트리를 들고 참호 밖으로 나왔다. 이 병사가 죽지 않는 것을 보면서 서로 간의 확실한 신뢰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도 가만히 있으면 절대 신뢰가 생겨나지 않는다. 먼저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 비록 내 업무로 바쁘지만, 다른 사람 업무를 기꺼이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가 생기게 된다. 먼저 손을 내밀자. 그리고 기꺼이 호의를 베풀어보자.
한 두 번만 가지고는 신뢰가 형성되기 어렵다. 오랜 기간 관계를 형성하면서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가치가 형성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초기에 탐색기의 시간을 갖는다. 더욱이 직장 같이 비즈니스로 얽혀 있는 조직에서는 더더욱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열지 않게 된다.
크리스마스 휴전이 가능했던 것은 비록 양 쪽이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그들은 이전부터 암묵의 룰을 지키고 있었다. 식사를 준비하는 연기가 적 참호에서 피어오르면 그 시간대만큼은 공격을 자제했다. 대규모 포격이 있을 때는 사전에 경고의 의미로 허공에 포를 쐈다. 이런 상황이 장시간 지속되면서 이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신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가까이 지내면서,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시그널을 계속 줘야 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휴전은 1914년 단 한 번으로 끝났다. 양 측의 최고 사령관들은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연루된 장교, 병사들을 모두 처형하겠다고 했기에 목숨 걸고 다시 휴전을 추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전투를 중지했다고 한다.
회사 역시도 협력을 기본으로 하는 곳이다. 나 혼자 일할 수 없기에 주변 팀원들, 옆 부서 사람들, 거래처 이해관계자들과 끊임없이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때 두 번 다시 안 볼 사람을 대하듯이 내 감정대로 화내고 분노하면 곤란하다. 신뢰가 생겨나기는 어렵지만 불신이 생기는 것은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짜증 나고 화가 나면 차라리 대화를 하지 말고 그 자리를 피하자. 그리고 조금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다른 사람들 일을 도와주자. 그리고 한 번 한 말은 꼭 지키고 불확실한 사실은 안다고 말하지 말고 확실하게 확인한 후 대답하자. 이 정도만 지속적으로 잘해도 신뢰가 싹트게 되고 협조가 이루어지게 된다. 일단 협조가 잘되면 직장생활은 훨씬 더 쉽고 편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