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이익만 보는 사람 (명나라 이자성의 난 1편)

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by 보이저

바둑에는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다. 눈앞의 작은 이익만 좇다가 큰 이익을 놓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당장 승진하고 싶어 윗사람들에게 티 나게 아첨하다가 주변 동료들의 인심을 잃기도 한다. 한참 회사 일이 바쁠 때, 쉬고 싶은 생각에 몸이 아프다고 며칠 쉬었다가 들통이 나서 곤란해지기도 한다.


영화 철도원에서처럼 가족 중 한 명이 몸이 아파 돌봄이 필요한데도, 회사일이 바쁘다고 회사에만 매달리다가 소중한 가족이 떠난 다음에야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도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다가 나라도 망하고 자신도 망하고 수많은 명나라 백성들이 망해버린 사건이 있었다. 명나라가 멸망하던 당시 발생했던 '이자성의 난' 그 사건이다.




명나라 말기의 상황


앞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명나라 만력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놀기만 했다. 나라는 어찌 되든 말든 그건 왕이 알 바 아니었다. 더욱이 임진왜란 때 엄청난 비용과 인력을 들여 조선을 지원한 이후부터 명나라의 국력은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일본과 싸우느라 여진족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조선 역시 여진족을 늘 억누르며 세력 확장을 막고 있었는데, 당장 일본 때문에 나라가 망할 판에 여진족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때 여진족은 누르하치가 나타나 여진족 모든 부족을 통합한 뒤, 후금이라는 국가를 세웠다. 여진족은 한 번 뭉치면 그 누구도 막기 힘들었다. 말을 앞세워서 질풍가도로 질주하기에 기동성이 좋은 데다가 칼이나 창을 앞세운 근접 전에도 강한 탓이었다.


명나라 조정 내부는 무능한 왕에 신하들은 뇌물이 일상화되어 있었고, 장수들은 파벌 싸움에 빠져 군사력 강화를 등한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여진족들까지 요동 지방을 차지한 뒤 야금야금 명나라 땅을 계속 차지하고 있었다. 명나라는 풍전등화의 상황이 된 것이다.




각지에서 벌어지는 농민반란


설상가상으로 명나라 각지에서는 농민반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아무리 여진족들의 힘이 날로 강성해져 간다고 해도 명나라가 제대로 된 전술로만 맞붙었다면 여진족쯤은 충분히 이기고도 남았다. 명나라는 백만 명이 넘는 대군을 보유하고 있었고, 무기 수준이나 보급도 압도적으로 좋았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농민반란이 벌어지는 바람에 군대를 여진족 토벌에 집중시킬 수가 없었다. 병력을 쪼개야 했고, 농민반란이 잠잠해졌다 싶어 병력을 다시 여진족들이 있는 변방으로 보내게 되면 농민반란은 다시 불이 붙었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농민반란이 진압될 경우, 주동자는 능지처사라는 극형으로 다스렸다. 죄수를 살아있는 상태에서 회 뜨듯이 살점을 조금씩 잘라내어 죽이는 끔찍한 형벌이었다. 일반 병사들도 사형으로 다스렸다. 그렇게라도 해서 반란을 잠재워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극형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오히려 잡히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반란군들은 더 극성스럽게 관군을 공격하였다. 내우외환이라는 표현이 딱 좋을 정도로 명나라가 큰 혼란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자성의 난, 명나라를 위협하다


이때 수많은 농민반란 중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반란은 바로 이자성이라는 사람이 이끌던 반란이었다. 그는 원래 고영상이라는 사람이 이끄는 반란군의 부하 장수였다. 이때 명나라는 토끼몰이 방식으로 각 지역의 모든 반란군을 한 곳으로 몰아넣어 한 번에 다 없애버리는 작전을 사용했다. 쌈 싸 먹기 식으로 외곽에서부터 명나라 토벌군에 몰리게 된 반란군은 대부분의 군사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수십만에 이르던 병력의 수가 십여 명까지 줄어든 것이었다. 고영상 역시 능지처사로 이때 죽게 되었다.


이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수가 이자성이었다. 그는 숨을 죽이고 숨어 있다가 명나라가 다시 여진족과의 전투에 토벌군을 모두 보내버리자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수 십 명 밖에 남지 않았던 그의 병력은 어떻게 해서 다시 쉽게 늘어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명나라 말기의 사회 분위기와 관계가 있다.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많은 백성들은 땅을 잃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산적이 되기도 하였고 걸인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명나라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다. 이자성이 먹여 주고 재워준다고 하자 어차피 죽을 목숨 싸우다가 죽겠다고 이자성의 반란군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금세 그의 병력은 수 십만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명나라를 무너뜨리는 이자성


이 무렵 명나라 조정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동쪽에서는 여진족들이 세운 국가인 청나라가 엄청난 속도로 명나라 땅을 차지하면서 밀고 들어왔다. 중원 땅은 농민 반란으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명나라 조정에서는 간곡하게 호소했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부디 오랑캐의 침입에 힘을 합쳐 같이 싸우자"


그러나 명나라 조정에 늘 속고만 살았던 사람들은 더 이상 속지 않았다. 그들이 싸움을 멈추는 순간 명나라에서는 다 죽이려 들 것이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놈의 나라 오랑캐한테 망하건 말건 자포자기인 사람들도 많았다.


이 점이 조선과는 다른 부분이다. 조선 역시도 일반 백성들의 삶은 시궁창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일본이 쳐들어오자 백성들은 의병장들의 지시에 따라 자발적으로 외적에 맞서 싸웠다. 일단 밖의 적부터 없애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를 떠올려보면 되지만,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은 이루 말할 것이 없다. 무능한 정부라도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은 천지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나라에서는 이런 역할을 해줄 리더가 없었다. 양반층, 백성들 할 것 없이 눈앞의 이익만 보고 움직였다. 관군 장수들 중에는 자발적으로 청나라에 항복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만큼 눈앞의 이익에 쉽게 흔들리고 말았다. 그 정도로 명나라가 중병에 걸려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백성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명나라 군대는 이미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유일한 적은 50만 병력을 보유한 명나라 장수 오삼계의 부대였으나 오삼계는 이자성에게 붙을까 청나라에 항복할까 간만 보는 상태였고 명나라 황실은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마침내 이자성은 별다른 저항도 받지 않고 명나라 수도인 북경을 점령하고 말았다. 이때 명나라 최후의 황제 숭정제는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이자성의 몰락


승리감에 도취된 이자성은 자기가 대순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북경 내 모든 부자들의 전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었다. 이때 몰수한 금액이 자그마치 명나라의 5년 치 국가 예산 금액이었다고 한다. 당시 북경의 부자들이 얼마나 많이 부정부패로 재산을 착복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때 그의 병사들은 일반 백성들을 마구 학살하고 약탈하여 그는 민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때 오삼계는 고민 끝에 결국 청나라에 항복하며 청나라 쪽으로 붙고 말았다. 자기가 속한 국가를 배신해야 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면 먼저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러나 그는 복수심에 눈이 멀어 이자성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사실 이 소문은 청나라에 의해 조작된 거짓말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무사했기 때문이다. 청나라는 명나라의 주축이었던 이자성과 오삼계가 서로 싸워 지치면 쉽게 명나라를 차지할 계획으로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전형적인 이이제이 기법이었다.


오삼계와 이자성은 몇 날 며칠을 두고 북경에서 공방전을 벌였다. 양 쪽 모두 피해가 막심했고,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이때 청나라는 양 쪽을 모두 공격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두 군사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그렇게 청나라는 손쉽게 명나라의 수도 북경을 빼앗아버리고 말았다. 이자성은 그 뒤 행방불명 되었는데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 이후 청나라는 명나라 구석구석으로 쳐들어가면서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닥치는 대로 다 죽여버렸다. 그 숫자는 몇 백만 명에 이르렀다. 명나라가 그토록 싫어 명나라 멸망을 고대하던 사람들, 농민반란에 가담하여 청나라와의 싸움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사람들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다들 눈앞의 이익만 보다가 결국 나라가 무너지게 만든 공범들이었다. 청나라는 한족들을 철저하게 억눌렀다. 조금이라고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며 가차 없이 처벌했다. 농민반란으로 꿈꾸던 세상이 이런 세상이었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오삼계의 최후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국 명나라를 배신하고 청나라 편에 붙었지만, 그는 결국 토사구팽 당하고 말았다. 청나라는 오삼계를 시켜 명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힘 안 들이고 남의 군대를 이용해 명나라를 무너뜨리는 게 최고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명나라 정복이 끝나가자 청나라는 더 이상 활용가치가 없는 오삼계를 없애버리기로 마음먹는다. 당장 모든 병력을 다 해산시키라고 황명을 내리고, 거역할 경우 반역으로 간주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그제야 명나라 마지막 황제 묘소에 가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지만, 배신자를 따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끝까지 저항했지만 결과는 뻔했다. 그는 싸우던 중 병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뒤를 이은 손자 오 세 번은 패배를 직감하게 되자 자살하게 되었고 오삼계 가족들은 몰살당하게 되었다.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게 되면 이처럼 큰 비극이 벌어지게 된다. 시야가 좁아지게 되니 더 큰 문제가 무엇인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명나라 말기 이자성의 난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직장에서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할 때 벌어지는 문제들을 알아보고 바람직한 해결방법을 같이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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