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주고 너무 생색을 내면 곤란합니다 (콩고 내전)

역사에서 보는 일 잘하는 방법

by 보이저

도움이란 무엇일까?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님에도 남을 위해서 기꺼이 내가 수고를 하는 것이다. 당연히 평균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도움을 받게 되면 크게 고마워하게 된다. 그런데 종종 여기에서 큰 탈이 벌어지게 된다. 도움을 준 사람이 필요 이상의 대가를 요구하거나 지나치게 생색을 내는 경우이다. 이러면 처음에는 도움을 고마워하던 사람도 차츰 거부감을 갖게 된다.


사업이 힘들어진 친구에게 선뜻 1억 원을 무담보로 빌려준 친구가 있다. 이 사람은 친구가 빌려준 1억 원 덕분에 그 돈으로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중고 트럭을 마련하여 과일을 팔며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 1억 원을 빌려준 그 친구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돈 빌려준 이 친구가 여기저기 이 사실을 소문내고 다닌다.


"그 친구 그때 돈 없어서 나한테 울면서 통사정을 하더라고. 내가 없는 살림에 와이프한테는 비밀로 1억을 빌려줬지",

"그 친구 나한테 평생 빚 갚는 심정으로 살아야 돼"


이렇게 말해버리면 자존심이 상하게 된다. 고마움을 느끼다가도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돈 빌려주고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역사상으로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아프리카의 내륙국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주변국에서 도움에 대한 대가를 지나치게 요구하는 바람에 벌어진 큰 비극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콩고에서 벌어진 분쟁


우리는 아프리카라고 하면 흑인들이 사는 가난한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TV 채널에서는 유명인들이 아프리카를 방문하여 어렵게 사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방송을 제작하고는 한다.


사실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 그 이상을 잘 알지 못한다. 지구 반대쪽에 있는 평생 갈 일 없는 낯선 대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진 '콩고 내전'은 아프리카의 세계 대전으로 불릴 정도로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참전하였고, 5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온 무시무시한 사건이었다.


콩고 내전은 왜 발생하였을까? 이 사건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 통치방식에서 비롯되었다.

콩고의 위치


후투족과 투치족의 분쟁


콩고민주공화국을 지배했던 국가는 벨기에였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온갖 잔혹한 방식으로 원주민들을 동원하여 다이아몬드 등 광물을 채굴하고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되었다.


벨기에는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서 악랄한 방법을 썼다. 그것은 콩고 지역 원주민 간의 분열을 꾀한 것이다. 그 지역은 후투족이 80퍼센트, 투치족이 20퍼센트였다. 벨기에는 소수민족이었던 투치족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였다. 투치족은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민족으로, 후 투족과 확연히 다른 외모를 갖고 있었다. 눈에 잘 띄기에 더욱 차별에 쉽게 노출되었고, 후 투족의 많은 차별에 분노가 쌓여있는 상태였다.


벨기에는 여기에 불을 붙인 셈이었다. 투치족은 권력을 독점하고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마음껏 되돌려주며 후 투족을 억압했다. 그러던 중 1960년 벨기에령 콩고는 독립하게 되었다. 이제 투치족을 지켜줄 벨기에가 사라지고만 것이었다.


1990년대 르완다의 대통령은 후 투족이었다. 이 대통령이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 누가 쏜 것인지 알 수 없는 미사일에 의해 비행기가 격추되었고 대통령은 사망하게 된다. 후투족 들은 투치족 반군이 그랬을 거라고 단정하고 투치족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르완다 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처음에는 후투족들이 우세했으나 투치족들은 점차 전열을 정비한 뒤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이제는 후투족들이 대규모로 학살을 당하는 처지였다.


이 내전은 백만 명 이상이 죽은 엄청난 비극이었다. 르완다에서 시작된 이 비극은 인접국인 콩고민주공화국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콩고 동쪽 지방에는 후 투족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투치족들은 국경을 넘어 콩고 내 후투족들을 대거 학살했다.

투치족과 후투족


콩고 독재 정권의 종말


당시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은 모부투 세세 세코라는 희한한 독재자였다. 늘 호랑이 가죽 모자를 쓰고 다니면서 은행에서 나랏돈을 인출해 자기 쌈짓돈 마냥 쓰던 사람이었다. 그의 골칫거리는 콩고 동쪽을 주 무대 삼아 수시로 반정부 투쟁을 벌이는 반군세력이었다. 이 반군 세력은 투치족 군사조직과 친분이 있었다. 자연히 모부투는 후투족을 지원하게 되었다.


이게 모부투의 악수가 되고 말았다. 본인의 군사력은 생각도 안 하고 무턱대고 투치족들을 적으로 돌린 것이다. 르완다에서는 환호성을 질렀다. 가뜩이나 자원이 풍부했던 콩고에 세력을 뻗히고 싶어도 마땅한 명분이 없어서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우리를 먼저 공격해 주다니! 반격해주지 않으면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르완다는 콩고 반군과 손을 잡고 대대적으로 콩고의 수도 킨샤사를 향해 진격했다.


르완다만 재미를 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변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이권을 노리고 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무려 14개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일부는 콩고 정부군 쪽으로, 다른 일부는 콩고 반군 쪽에 붙어서 싸우게 되었다. 그래서 콩고 내전을 아프리카 세계 대전이라고도 부른다. 과거에 유럽열강의 식민통치로 자원을 약탈당했던 경험이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제는 콩고의 자원을 털어먹으려고 가해자의 입장이 된 것이다.


르완다를 중심으로 한 콩고 반군 세력은 파죽지세로 콩고의 수도 킨샤사로 밀고 들어갔다. 30년 넘게 모로코를 철귄 통치했던 모부투는 해외로 망명했다. 콩고 반군의 지도자였던 로랑 데지레 카빌라가 새 대통령이 되었다.


모부투와 카빌라



청구서를 내미는 이웃나라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이 순수한 마음에서 카빌라 대통령을 지원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르완다와 우간다의 간섭이 심했다. 콩고는 다이아몬드, 코발트의 주요 산지이다. 이 광산들은 동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군대를 주둔시키며 현지 광산들을 장악하였고 여기에서 나오는 이익 일부를 가져가겠다고 선포하였다. 반항하는 주민들은 사정없이 살해했다.


콩고에서는 반발이 갈수록 심해졌다. 도와주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상황이 종료되자 청구서만 들이미는 르완다와 우간다에 대한 카빌라 대통령의 불만도 커져만 갔다. 카빌라는 모든 외국 세력들은 콩고 영토 밖으로 나가라고 선포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자기 손아귀에 들어온 떡을 이 두 나라가 포기할리 없었다. 오히려 이 두 나라는 군대를 동원하여 다시 콩고를 침공했다. 다급해진 카빌라는 나미비아, 앙골라, 짐바브웨, 리비아, 차드 등 온갖 주변국들에게 이권을 약속하며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이들은 르완다, 우간다 연합군을 밀어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당연히 이들 역시도 도움을 준 대가로 콩고 정치에 간섭하면서 나라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이 와중에 카빌라 대통령이 의문사하게 되고 콩고는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된다. 제일 불쌍한 것은 콩고 주민들이다. 이 기간 동안 10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움에 대한 바른 자세


이 세상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은 적다.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말 그런 사람들은 적다. 특히나 회사에서 도움을 줄 때는 언제든 이게 빚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결혼식 축의금을 생각해 보자. 결혼식이 끝나면 누가 얼마를 줬는지 일일이 다 엑셀 파일에 기록해 놓는다. 그렇게 해야 그 사람 경조사 때 그 금액만큼 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축의금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미리 줬던 돈이랑 앞으로 줄 돈과 비교하면 '똔똔' 일 뿐이다.


주변에서 큰 도움을 제안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막 퇴직한 사람들, 사회생활 막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늘 사기꾼들이 파리떼처럼 꼬인다. 여기 투자하면 몇 배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제안하고 초반에는 실제로 이자가 차곡차곡 들어온다. 그래서 더 이 사람을 신뢰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폰지사기 수법으로, 8조 원을 해먹은 조희팔이 애용하던 사기 방식이다.


자다가 코 베인다, 멍 때리다 눈퉁이 맞는다 이런 속어들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이용해 먹는 사람들도 많고, 사소한 호의에도 대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세상이 각박하다고 세상을 탓하기 전에 현실을 인정하자.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이 것만 지키자. 내가 했다는 것을 드러내되, 너무 생색을 내지는 않는 것이다.


인어공주는 사람이 되는 조건으로 마녀에게 자기 목소리를 빼앗기고 만다. 그 바람에 왕자를 구해주고도 내가 구해줬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엉뚱한 여자가 그 공을 가로채 간다. 도와주고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 듣는 것, 이것만큼 비참한 게 없다.


반대로 온갖 생색은 다 내면서 대가를 꼭 챙겨가려고 하면 도와주고도 욕먹는 상황이 온다. 내가 도와줬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알리되 대가를 바라기보다는 차분하게 그냥 있자. 그게 쌓이게 되면 언젠가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콩고 내전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억지로 대가를 챙겨가려고 하거나, 상대방 자존심까지 벅벅 긁어가며 생색을 내면 이게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국가나 개인이나 다르지 않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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