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되면 안 되는 사람 (5편: 영국의 헨리 8세)

리더가 되면 안 되는 사람

by 보이저

주변에 혹시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런 사람이 있으면 참 고통스럽다.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입 밖으로 쏟아내고, 사회적인 합의, 도덕 이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기분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80, 90년대 큰 인기를 끈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수미 씨가 연기했던 일용엄니가 딱 그런 스타일이었다. 손녀 복길이가 마을 앞 도로에서 차에 부딪쳐 다치는 일이 있었다. 분노한 일용엄니는 이 모든 것이 마을 앞 도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마을 앞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그 앞에 앉아 일일이 지나가는 차들을 검문검색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손녀딸이 다친 것에 꽂혀서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분노를 표출했던 것이다.

전원일기의 일용엄니


그런데 한 국가의 리더가 이렇게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면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역사 속에도 이런 유형을 가진 리더가 있었다. 자기 부인을 여섯 명이나 갈아치우고 그중 두 명은 처형했던 왕으로 악명 높은 그는 바로 영국의 국왕 '헨리 8세'이다.




형수 카탈리나와 결혼한 헨리 8세


헨리 8세의 첫 아내는 카탈리나였다. 그녀는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1세의 공주였다. 정략결혼이었던 셈이다. 사실 그녀는 헨리 8세의 형이었던 아서 튜더와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그런데 아서 튜더가 결혼 4달 만에 갑작스럽게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영국이 고대 유목민 사회도 아니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 풍습은 없는 사회였기에 원칙대로라면 카탈리나는 본국인 스페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이 경우 스페인 왕이 지참금으로 보냈던 막대한 돈을 다시 돌려줘야만 했다. 지독한 구두쇠로 유명했던 헨리 7세는 그게 싫어서 아서 튜더의 동생이었던 헨리 8세와 다시 결혼을 시켰다. 오히려 스페인 쪽에다가 카탈리나가 결혼을 다시 했으니 지참금을 다시 내라고 요구했을 정도였다. 이게 미쳤나 싶었던 스페인 국왕은 지참금 지급을 거부했고 분노한 헨리 7세는 카탈리나에게 일절 생활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결국 카탈리나는 돈이 없어 시종들 숫자도 줄이고 자기 옷. 가구까지 팔아가며 황태자비였음에도 곤궁하게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헨리 8세와 카탈리나의 결혼은 첫 단추부터 잘못 잠가지게 되었다. 형수였던 데다가 돈은 없고 자기 아버지 눈 밖에 난 카탈리나였다. 심지어 자신보다 나이는 한참 더 많았고 무뚝뚝한 성격이라 애정 표현도 없었던 그녀를 헨리 8세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18세에 왕이 된 헨리 8세는 늘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카탈리나와 이혼하고 진짜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할까에 쏠려 있었다.

헨리 8세



첫 부인 카탈리나와의 이혼


마침 헨리 8세는 앤 불린이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어떻게든 카탈리나와 이혼하고 싶었던 그는 로마 교황청에 이혼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하게 되었다. 당시 기독교 국가에서 혼인이나 이혼은 교황청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당시 헨리 8세가 내세웠던 표면적인 이유는 카탈리나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무렵 교황의 힘은 예전 같지 않았다. 후원자였던 스페인 국왕의 눈치를 봐야 했던 것이다. 스페인 국왕이 자기 딸의 이혼을 쉽사리 허락해 줄 리가 없었다. 교황 클레멘스 7세는 결국 카탈리나와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헨리 8세는 이 소식을 듣고 불같이 화를 냈다. 그는 관료들을 소집했고 로마 가톨릭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앞으로 영국의 종교는 영국 국왕이 관리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클레멘스 7세는 즉각 헨리 8세를 파문했다. 파문은 종교 공동체에서 제외시킨다는 선언으로, 중세 시대 때는 파문당한 왕은 더 이상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을 정도로 강력한 처벌이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16세기였고 교황의 힘은 예전 같지 않았다. 헨리 8세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카탈리나와의 이혼 및 영국 종교법을 그냥 밀어붙였다.


몇 년 후 카탈리나는 급작스럽게 사망하였다. 헨리 8세는 본인은 물론 당시 유일한 딸이었던 메리의 장례식 참석까지도 금지시켰다. 심지어 그는 당시 기쁨을 표현할 때 입는 노란색 옷을 입고 공식석상에 나타났을 정도였다고 한다. 역시 그는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왕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왕비 앤 볼린의 비참한 운명


카탈리나를 밀어내고 왕비가 된 앤 불린, 그러나 그녀의 운명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하면 그대로 되돌려 받는 것은 인간사의 오랜 법칙인 것이다.


그녀 역시 아들을 낳지 못했다. 훗날 엘리자베스 여왕이 되는 딸 하나만 있었을 뿐이었다.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헨리 8세는 급속하게 앤 불린에 대한 애정을 거둬들이게 되었다. 마침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를 좋아하게 된 헨리 8세는 앤 블린을 제거하기로 마음먹는다. 이혼도 첫 번째가 힘들지 두 번째부터는 별게 아닌 것이다. 이번에는 질질 끌지 않고 속전속결로 끝내버리리라 굳게 다짐하는 그였다.


앤 불린 은 왕을 수시로 모욕하고 다섯 남자와 간통한 혐의, 왕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 모든 것은 다 조작된 것이었지만 전제 군주 시대 때 여기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앤 불린 은 그렇게 억울하게 결국 참수되고 말았다. 좋아서 죽을 때는 언제고 사랑이 식자 곧바로 죽여 없애버리는 헨리 8세의 변덕과 잔혹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세 번째 제인 시모어와 네 번째 클레베 앤


제인 시모어는 앤 불린 이 처형되던 그날 세 번째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도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에드워드 왕자를 낳다가 사망하고 만 것이다. 왕비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비극이 닥쳤기에 헨리 8세의 상심은 컸다.


왕비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었기에 그는 다시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이번 왕비는 덴마크 국왕이었던 크리스티안 2세의 딸이었던 클레베 앤이었다. 당시 왕의 심복이었던 토마스 크롬웰이 그녀가 예쁘게 생겼다는 말을 듣고 솔깃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처음 본 헨리 8세는 경악했다.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얽은 자국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녀를 첫날부터 박대했다. 어디서 이런 못 생긴 여자를 데리고 왔느냐고, 영국에 못 생긴 여자가 없어서 멀리 덴마크에서까지 못 생긴 여자를 수입해 오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녀를 추천했던 크롬웰을 사형에 처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끝판왕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헨리 8세가 마음대로 왕비를 갈아치우고 심지어 내키는 대로 죽이기까지 한다는 것은 이미 유럽 전역에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영국에 비해 약소국이었던 덴마크 공주 목숨을 신경 써줄 헨리 8세도 아니었다. 클레베 앤은 이때 현명한 선택을 한다. 속이야 부글부글 끓었겠지만 겉으로는 왕의 혼인 무효 소송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큰 저택을 하사 받아 남은 여생을 안락하게 보낼 수 있었다.




다섯 번째 왕비의 비참한 죽음


이때 헨리 8세는 클레베 앤의 영국인 시녀였던 캐서린 하위드에게 끌렸다. 그녀가 모셨던 주인은 쫓겨났지만 그 대신 왕비가 되는 이상한 운명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녀에게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싫다고 해서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그녀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로,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이야기가 영국 내에 파다했다. 그리고 불륜 상대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이 소문은 헨리 8세의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분노한 그는 당장 사실 여부를 확인하라 지시했고 처녀인지 여부까지 검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자기가 일방적으로 좋다고 하면서 결혼하자고 할 때는 언제고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조사 결과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분노한 헨리 8세는 캐서린을 화형에 처하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이 간곡하게 만류하여 덜 끔찍한(?) 방식인 참수령으로 바뀌게 되었다. 불륜상대였던 두 남자들도 죽음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부인을 두 명씩이나 자기 손으로 죽인 것이다.




여섯 번째 왕비 캐서린 파


이쯤에서 결혼을 포기했으면 헨리 8세가 아니다. 그는 또다시 결혼을 추진했다. 이번 상대는 캐서린 파라는, 당시로서는 많은 나이었던 30대 여성이었다. 그녀는 이미 두 번의 결혼 경험이 있었고 그걸 다 밝히었다. 죽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련했기에 헨리 8세의 짜증과 변덕도 잘 받아줄 수 있었다.


그녀와의 결혼 생활은 4년 만에 끝나고 말았다. 왜냐하면 헨리 8세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죽을 당시 그의 나이는 57세였고 그때 그의 몸무게는 무려 180kg였다고 한다. 고혈압에 당뇨병까지 온갖 성인병을 달고 살았고, 허리 둘러는 무려 50인치였다고 한다. 무절제한 생활 속에 늘 신경질만 부리며 제 멋대로 산 결과였다. 그렇게 그는 부인을 다섯 번이나 갈아치우며 마치 부인을 바꾸기 위해 왕이 된 것 마냥 행동하다가 죽음을 맞고 말았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리더의 문제점


기다란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이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도 이렇게 대본을 쓰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욕먹는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헨리 8세만큼은 아니겠지만. 직장에서도 자기 기분대로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리더가 이런 경우 더 심각해진다. 그 여파가 팀 전체에 미치기 때문이다.


예전 팀장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 한 번 화가 나면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서류를 던지기도 하고 책상을 발로 차고 벽을 주먹으로 치는 사람이었다. 내가 볼 때는 진짜 별 것 아닌 일인데도 그 사람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피곤하다 싶으면 아이 등교 핑계로 한 시간 늦게 출근하고 제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세상을 살아갔다. 화가 나면 다른 조직 상무한테까지 쫓아가서 화를 낼 정도였다. 인사팀 팀장은 다른 조직 상무 정도 레벨과는 맞짱 떠도 된다는 신념을 가졌던 사람이라 안하무인이었다. 다른 팀 팀원을 호출해서 큰 소리로 혼내는 바람에 그 팀 팀장이 쫓아와서 싸운 일도 있었다.


결국 이게 소원수리가 들어가고 감사팀 조사가 들어갔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증언이 쏟아지면서 갑자기 팀장 자리에서 직위해제되고 말았다. 결국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게 된 것이다.


헨리 8세는 절대군주니까 그러고 살 수 있었지만 우리는 다르다. 요즘 시대에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자기 멋대로 살면 큰일 난다. 요즘 사람들은 아무리 직급이 낮더라도 참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참자. 이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한 번 생각해 보자. 리더라면 더더욱 자기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그 여파가 팀 전체에 전염병처럼 금방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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