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못하는 심리적 원인 분석하기
서 대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독특하고 정신세계가 4차원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는 자기만의 확고한 규칙이 있다. 회의 시간에는 커피 등 음료를 들고 들어오면 절대 안된다. 스테이플러는 반드시 사선으로 찍어야만 한다. 자기 전에는 반드시 집 안의 재활용품 폐기물들을 밖에 나가서 버리고 와야 직성이 풀린다.
관심이 꽂히는 것이 생기면 좀처럼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하철 노선도를 1호선부터 9호선까지, 심지어 김포골드라인, 수인선, 우이경전철에 이르기까지 역 이름과 순서까지 다 외운다. 반면에 관심 없는 분야에는 젬병이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은 서 대리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탓에 늘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실기시험을 봤다. 농구 레이업슛을 할 때는 발레하느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서 대리는 학창시절 체육시간을 참 싫어했다.
회사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은 여러가지 지시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경우이다. "이번 리더십 교육은 팀장 이상 참석을 원칙으로 하되, 팀장에 준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갤럽강점검사를 받도록 하고, 오프라인 교육도 1개는 필수로 듣게 하고..." 요구 사항이 한꺼번에 들어오자 머릿 속이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음음..뭐라고?" 한 번 정신이 아득해지자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읽는데도 참 서투르다. 말의 억양이나 표정을 보고 그 사람 감정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내가 쓰는 용어와 상대방이 쓰는 용어가 서로 다르면 말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내 공식대로 뭔가 진행되지 않으면 안되기에 상대방과 대화도 잘 안되고 말도 안 통한다. 그는 외톨이다. 말만 하면 오해가 생기고 뭔가 어긋나기에 이제 그는 자발적 고립을 택했다. 그게 차라리 편했다.
서 대리의 직장생활은 오늘도 너무나 힘들고 어렵기만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잘 모른다. 아스파라거스 줄임말이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내가 회사에서 일을 못해서 늘 구박받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증후군 때문에 일을 못할 가능성이 상당히 있기 때문이다. 누워서 보고 있다면 각 잡고 똑바로 앉은 뒤 이 글을 정독하도록 하자.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이 증후군의 주요 특징을 요약하자면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느낀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표정이나 억양에서 상대방이 느끼는 기분을 알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의 주요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남들이 볼 때는 별 것 아닌 일에 지나치게 매달린다.
2) 한 번에 많은 정보가 들어오는 경우 멘붕을 경험한다.
3) 변화에 대해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익숙해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4) 말투에 높낮이가 없는 편이고, 억양이 어색하다.
5) 감정 표현에 상당히 서투르다.
6) 자기만의 독특한 규칙과 행동이 있으며 이걸 지키지 못하면 굉장히 불안해한다.
7) 신체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우며 몸으로 하는 일에 상당히 서투르다.
8) 한 번 당황하면 머리 속이 하얘져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는다.
ADHD와도 증상이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둘 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ADHD는 주의력이 떨어지는 증상이라면,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기만의 세계가 강하고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증상이다. 정신 의학계에서는 DSM-5 분류를 통해, 아스퍼거 증후군을 자폐성 질병으로 진단한다. 경증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보는 것이다.
아래 진단표를 보고 내가 혹시 아스퍼거 증후군에 해당하지는 않는지 살펴보자.
이들은 자기 루틴이 확실하다. 심한 경우에는 내가 세운 규칙대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상에 앉기 전에는 반드시 물티슈로 먼저 싹 다 닦아야 하고, 출근 시에는 반드시 사무실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오른손잡이임에도 양치질은 반드시 왼손으로 해야 한다. 지하철은 반드시 6-1 출입문에서만 탄다. 거기가 10량 지하철의 딱 가운데이기 때문이다.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보면 끝까지 쫓아가서 훈계하며, 만원 지하철에서 가방을 앞으로 매지 않은 사람을 보면 일단 째려본다. 숫자에 집착하며 59분에는 이메일을 보내지 않고 00분이 될 때 비로소 보낸다. 일일 걸음 수는 반드시 1만보를 채워야만 하며 채우지 못한 날은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밖에서 기어이 다 채우고 와야 직성이 풀린다.
이 세상은 내 생각과는 다르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정한 규칙대로 살지 않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갑자기 한꺼번에 많은 정보가 들어오는 것은 이들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큰 변화이다. 이들은 자기만의 규칙이 확고한 사람들이다. 규칙이 적용되는 안정적인 환경에 머무르고자 하는 것이다. 갑자기 상사가 복잡한 지시를 내리게 되면 머릿 속이 하얘진다. 융통성이 부족하다보니 이런 상황을 매우 힘들어한다.
"이번 해양사업부문 워크샵은 호텔 리셉션홀로 알아봐주세요. 100명 정도 참석하는 점을 고려해주시고 대관료는 1일 300만원 내외로 알아보시되, 본사에서 차로 1시간 이내인 곳을 우선순위로 알아봐주시기 바랍니다. 석식은 참석자들 대부분이 50대 이상인 점을 고려해서 한식 위주로 하되.."
이렇게 정보가 한꺼번에 기관총처럼 다다다다~ 쏟아져 들어오게 되면 멘붕을 경험하게 된다. 머릿 속에서 정리가 안되다보니 마치 비누방울이 움직이다 팡팡 터져 사라지는 것처럼 들은 내용이 사라져버리게 된다.
한 번에 습득해야 하는 정보가 많으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다 뒤죽박죽이 된다. 지식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요즘,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예 그런 정보를 거부하며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의 언어 처리 능력이 약한 것은 아니다. 눈으로 접하는 책은 빠르게 습득한다. 유튜브처럼 상호 소통이 아닌 일방향적인 소리는 잘 이해한다.
그러나 타인과의 대화를 어려워한다. 귀로 듣는 타인의 말을 이해하고 자기 나름대로 정리하는데 미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단하게 핵심만 말하면 되는 것을 불필요한 것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밑도 끝도 없이 어떤 말을 툭 던져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오늘이 전표처리 마감일인데 제가 미쳐 처리하지 못한 비용이 있습니다"
이렇게 팀장에게 말하면 되는 것을 빙빙 돌려서 말하고는 한다.
"전표 처리는 다음달 5일까지 처리해야 합니다. 회계팀에서 매원 말마다 그렇게 공지를 하지요. 그런데 제가 다른 4건은 기한 내에 다 처리를 했는데, 엇그제 갑자기 비용을 처리해달라고 온 것이 있어서 그걸 미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팀장은 이 말을 듣다보면 속이 터지게 된다. 도대체 얘가 하고 싶은 말이 과연 무엇일까? 바빠 죽겠는데 핵심만 좀 이야기하지..
이들은 말할 때 억양도 다소 어색하다. 높낮이가 거우 없고 끝을 자주 얼버무린다. 이상한 추임새나 혼잣말도 많이 하는 편이다.자기가 좋아하지 않거나 흥미가 없는 주제에 대해서는 쉽게 집중력을 잃다보니 상대방 말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감정 표현에 상당히 서투른 편이다. 기쁜 일이 있어도 이를 제대로 잘 드러내지 못한다. 드러내더라도 지나치게 표현해서 눈총을 사거나 혼자서 삭히는 등 표현이 어색하기만 하다.
슬프거나 화가나는 경우 마구 화를 내며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반대로 화를 낼 줄 몰라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적절하게 전달해야 함에도 그것을 하지 못한다. 상대방은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싶어 그 괴롭힘의 강도를 높히게 된다.
속으로는 이거 내 업무 아닌데 불평하면서도 그걸 드러내지 못한다. 혼자 투덜투덜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이게 왜 합리적이지 않은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는지 사회화가 되어야 하는데, 눈치가 없고 자기 규칙대로만 움직이려는 습성 때문에 감정 표현도 자기 방식대로 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어딘가 모르게 신체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학창 시절에는 체육시간마다 어색한 동작 때문에 놀림을 자주 받았을 것이다. 군대 훈련소에서도 제식 훈련 때마다 늘 틀리는 바람에 조교의 욕을 한 바가지 얻어 먹는다.
균형감각이 부족하다보니 넘어지는 일도 잦다. 계단을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지하철에서는 지하철이 급정거하면 여지없이 옆에 서 있는 승객을 덮치고 만다. 물론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걸 잘 활용해서 변칙 스타일 공격에 능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물건을 수리하거나 만드는 일에도 서투르다. 가전제품을 고치다가 아예 망가뜨리기도 하고, 전구를 갈거나 망치로 못을 바는 것, 심지어는 고깃집에서 고기를 자르는 것도 서투르다. 몸으로 하는 일이 다 이상한 것이다.
눈치가 없고 속칭 낄끼빠빠(낄데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것)가 안 되다보니 늘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행간의 의미' 라는 말이 있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그 뉘앙스를 통해 상대방의 기분이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인 사람들은 이 부분에 취약하다. 대화하거나 설명할 때 쓸데없는 손동작이 지나치게 많고 말할 때 쉽게 말해도 되는 걸 어려운 말로 돌려 말하기도 한다.
말할 때 표정관리가 되지 않고 불리한 상황이 되면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거나, 확인되지도 않은 것을 단정하여 말하기도 한다.
"어제까지 접수된 교육생은 몇 명인가요?"
"(잘 모르면서도) 60명 정도입니다"
"60명으로 상무님께 보고드릴께요"
"아..네네"
질문자의 의도와는 다른 답변 즉,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도 많다.
"지시했던 지난달 영업실적 보고서는 어디까지 완성했나?"
"보고서 쓰다보니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더라고요. 아직 영업실적 제출 안한 부서도 여러 곳 있습니다"
보고서가 어디까지 되었는지 물어본 것인데, 보고서 작성의 어려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질문의 의도를 캐치하지 못하고 자기 변명만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생각하던 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어쩔 줄 몰라한다.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하는대로 진행되어야 하며, 그 공식에서 벗어나게 되면 쉽게 당황하고 멘붕을 경험한다. 플랜 B가 없는 것이다.
부사장님 참석이라는 돌발상황이 발생하자 급격하게 당황하고만다. 사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정신만 차리고 하나씩 준비하면 충분히 대처 가능한데, 내가 당초에 생각했던 그 방향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자 대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그들만의 규격화된 생각의 회로가 있다. 그 회로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으면 모든게 다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다음 2편에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인 사람이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과 그 대처방법에 대해 소개하여 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이 아스퍼거 증후군 때문에 회사생활이 너무나 힘드신 분들, 혹시 나도 아스퍼거 증후군은 아닐까 고민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