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퍼거 증후군, 혹시 나는 아닌가요?(2부)

일 못하는 심리적 원인 분석하기

by 보이저

1편에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주요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주요 7가지 특징 중 하나만 갖고 있어도 직장생활에는 엄청난 마이너스이다. 그런데 아스퍼거 증후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저 7가지 특징을 골고루 다 가지고 있다. 화투로 치면 쓰리고에 피박에 광박에 흔들기, 멍따 나쁜 건 다 쓰고 지는 상황과도 같다.


솔직하게 고백할 것이 있다. 사실 나도 아스퍼거 증후군까지는 아니지만, ADHD가 있다. 이로 인해 말하기 힘든 참 많은 고통과 시련이 있었다. 일단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알아 드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회의 때는 늘 녹음하고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다 기록해야 했다. 그렇게 해도 절반도 채 캐치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했다. 난독증이 아니라 난청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들으면 바로바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특히 여러 가지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오게 되면 하나씩 떠올려보려고 애쓰다가 결국 하나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 보고자 어떻게 하면 일을 조금이라도 더 잘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였고 나름의 방법을 찾아내게 되었다. 사실 아스퍼거 증후군인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걸 노력으로 뭘 어떻게 해본다고 뭐 달라지냐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분명히 달라진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줘야 하지만 그게 하나씩 쌓이면 시간은 걸리더라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서론이 길었는데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계속 글을 이어가려고 한다. 아스퍼거 증후군인 사람들이 직장에서 겪는 어려운 점들은 무엇이 있을까?


직장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의 어려움


회사는 혼자서 일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업무는 협업을 바탕으로 하며 이메일을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의견을 주고받게 된다. 늘 정해진 업무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돌발 상황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상사 지시는 수시로 바뀐다. 이 상황에서 내 방식대로 처음 정해진 업무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아스퍼거 증후군인 사람들은 결정적으로 이 두 가지에서 큰 약점을 보인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기억은 더더욱 하지 못한다. 상사가 지시해도 자기 방식대로 일을 하려고 한다. 이러니 직장에서 상사의 눈밖에 나게 되고 동료들은 자기 말을 무시한다고 점점 그를 멀리하게 된다. 사실 의도한 것이 아닌데도 그런 오해를 사게 되는 것이다.


변화를 싫어하다 보니 계속 자기 방식만을 고수한다.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고 말해도 계속 기존 방식만 고수한다. 엑셀이 더 익숙하고 편하니 좀처럼 그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이웨이를 걷게 되면 협업이 어려워지게 된다.


이들 역시 개선해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회사생활에는 맞춤형 과외라는 것이 없다. 수험생들처럼 학원도 있고 과외교사도 있으면 참 좋으련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나도 회사 생활에 늘 어려움을 느낄 때면 '누가 나에게 직장생활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줬으면 좋겠다' 이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어디 가서 배울 수도 없고 한 판에 요약해서 알려주는 곳도 없으니 더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그렇게 개선되지 않은 채 시간은 계속 하염없이 흘러간다. 신입사원 때는 용서가 됐지만, 대리, 과장으로 올라갈수록 직급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갈굼은 더 심해지고 회사에서는 갈수록 밀려나게 된다. 이것이 까도 까도 고통만 나오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직장 생활 스토리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직장에서 살아남는 방법


그렇다면 총체적 난국 상황에 있는 아스퍼거 증후군 직장인은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부터 열까지 대처방법을 다 배워야 한다. 이 정도는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어야 한다, 눈치껏 배워라 이런 말은 아스퍼거인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처방법만 알면 직장생활은 훨씬 더 수월해진다. 각 상황 별 구체적인 대처방법을 학습한 후에 실제 직장생활에 적용하면 된다. "어! 이게 아니었네" 싶은 것은 영점을 조정하여 다시 사격하면 된다. 총도 쏠 줄 모르는 상태와 쏠 줄은 알지만 영점이 안 맞는 상태는 천지차이이다. 일단 방법을 알면 영점 조정으로 점점 과녁에 가깝게 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해야 할 업무를 반드시 글로 남기자


아스퍼거인 사람들은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시가 꼭 필요하다. 그래야 혼란을 느끼지 않고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된다. 구두 지시보다는 서면 지시를 요청하거나, 지시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오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일 서면으로 남겨달라는 부탁을 하기 어렵다면 내가 이걸 서면으로 만들자. 거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엑셀 표에 한 줄로만 입력하는 것이다. 중요도는 색깔로 표시하고, 마감일자, 구체적인 내용을 비고란에 적으면 된다.



2. 주변 환경을 정리하자


아스퍼거인 사람들은 주변 소음이나 물건 등 본인을 자극하는 외부 요소에 상당히 취약하다. 그리고 한참 일하고 있는데 다른 업무가 치고 들어오면 당황하면서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가능하다면,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적은 조용하고 독립된 공간에서 일하는 것을 요청해 보자.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면 꼭 재택근무를 활용하자. 수많은 말소리, 창 밖에서 들리는 차들의 경적소리에도 쉽게 주의를 빼앗기기에 주변 환경 정리가 매우 중요하다.




3.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확보하기


내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확보하자. 같은 부서에 나에게 진심으로 조언해 주고 이끌어주는 멘토가 있으면 좋다. 그저 좋은 말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은 따끔하게 지적해 주고 바람직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이런 것까지 누군가에게 부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다들 자기 업무 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저연차 사원이라면 일 잘하고 성격 무던한 대리, 과장급 중에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꼭 찾아서 말해보자. 내가 한 일 검토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물어보는 것이다.




4. 강점 활용 및 직무 적합성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은 종종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 남들은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것을 반짝반짝 잘 떠올린다. 마치 서번트 증후군 마냥 특정 영역을 놀랍도록 잘하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ADHD 또는 아스특징이 증후군의 특징이 보인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자기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문제에 접근해 나갔다. 그는 이미 500년 전에 사진 촬영 방법, 비행 원리를 고안하였는데, 현대 기술과 상당히 근접했을 정도로 그의 지식은 대단했다.


외국에서는 개인의 가치를 중시한다. 어릴 때부터 개인 특성에 맞게 존중하다 보니 한국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문제아 취급받던 아이가 이민을 간 뒤에는 아무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잘 지낸다는 수기를 많이 보게 된다. 내가 가진 강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접근하는 교육,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 덕분이 아닐까 싶다.


회사에서는 내 단점을 막는데 혼을 바쳐야 한다. 솔직히 억울하다. 남들은 숨 쉬는 것처럼 간단하게 하는 일을 아스퍼거 증후군인 사람들은 일일이 다 챙겨가며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렇게 해서는 평균치 업무 퍼포먼스가 맥시멈이다. 그것도 진짜 성공한 케이스이다. 이들은 직장 수명이 남들보다 더 짧을 수밖에 없다. 이미 저성과자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결국 내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출구 전략을 세우고 회사 밖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쪽으로 계속 준비해 나가자. 저술 활동이던 강의이던 관광 가이드이건 자영업을 하건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5. 구조화된 업무


아스퍼거인 사람들은 정해진 절차와 규칙이 명확한 업무, 독립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업무가 더 적합하다. 총무팀이나 재무팀 등 업무가 항상 반복되고 비교적 일정한 업무만 수행하면 되는 부서가 잘 맞을 수 있다.


사실 아스퍼거인 사람들은 창의성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이런 창의성이 회사에서 발휘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회사라는 곳이 창의성 하나만 가지고 버틸 수 있는 부서는 거의 없다. 교육팀, 마케팅팀, 홍보팀 등 아이디어가 중요한 부서들이 있지만, 그 아이디어는 수시로 상부 검열을 거쳐야 하고 보고서에 담겨 난도질을 당해야만 한다. 결국은 관료제 틀 안에서 일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은 것이다.


한 가지 팁을 드린다면, 지금 부서가 일하기 나쁘지 않다면 웬만하면 부서를 옮기거나 이직하지 말고 계속 버티고 다녀라. 최악만 아니라면 무조건 계속 그 부서에 있어야 한다. 이들은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새로운 분위기, 일 하는 방식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면 어버버 하기 일쑤이다. 그냥 터줏대감으로 한 업무를 오래 파면서 매뉴얼대로 기계처럼 일하는 것이 속 편할 것이다.




6. 나를 이해하고 격려하기


이건 내 책임이 아니다. 태어난걸 그렇게 태어났는데 뭘 어찌하겠는가? 그동안 당신은 정말 험난한 인생을 살아왔다. 늘 특이하고 4차원이고 말귀 못 알아듣는 사오정 같은 사람, 나사 풀린 허술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당신을 쉽게 보고 무시하고 막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나를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자. 당신은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훌륭하게 살아왔다. 지금 이십 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세상이다. 오죽하면 푼돈 좀 벌어보겠다고 캄보디아까지 갔다가 험한 꼴을 당하겠는가? 당신은 직장인으로 한 사람 몫을 해내며 지금까지 훌륭한 인생을 살아왔다.


멋있는 인생을 살아온 당신에게 자부심을 갖자. 회사가 나에게 맞지 않으면 회사 밖에서 내 인생을 찾으면 된다. 그러니 죄절하지 말고 희망을 갖자.




마무리하며


전문가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성 질환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스퍼거 증후군은 아직도 제대로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질환이다. 20여 년 전, 내가 심리학과 전공생일 때도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최근에 활발하게 연구되는 증후군으로, 누가 여기에 해당되는지, 발생 원인은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인 사람은 직장과는 확실히 잘 맞지 않는다. 대인관계에 약점이 많고 환경 변화에 잘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방식만 고수하려고 하고, 뭔가 어색하고 이상한 말투나 행동거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되곤 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아무 대책도 없이 회사를 박차고 나갈 수는 없다. 아무 대책도 없이 그냥 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배우자와 자녀들까지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비슷한 상황을 겪으며 직장생활을 15년째 하면서 하나씩 터득하고 시도해 본 방법들이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이건 그냥 타고난 내 특질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나씩 배우고 터득하면 정복해 나갈 수 있다. 자신감을 갖자.


"자신을 믿는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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