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들의 성장을 막는 리더
우민화 정책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국민들이 배운 게 많아 똑똑해지면 자기 권리를 찾으려고 하기에, 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채 바보같이 살아가도록 각종 스포츠, 문화 등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활동들을 장려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도 1980년대에 이 정책이 시행된 적이 있었다. 당시 올림픽 유치를 시작으로 프로야구, 프로축구의 개막, 에로영화의 범람, 대학가요제 출범 등 스포츠, 문화, 연예계 쪽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70년대까지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가 전부였던 한국이 84년 LA올림픽에서는 무려 4개의 금메달을 따내었다. 그만큼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물론 우리도 알다시피 우민화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우민화 정책을 추구했던 정권은 몰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나라보다 더 심한 방식으로 우민화 정책을 추구했던 국가가 있었다. 이 나라의 독재자는 아예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경제가 발전하면 곧 자기 권력이 약화된다고 생각하여 농업 국가로 돌아가려고 했다. 의도적으로 국가 경제를 망가뜨린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일을 펼쳤던 리더는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라자르'이다.
포르투갈 하면 무엇이 기억나는가?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는 유럽 남부 끝단의 나라, 과거 세계 무역을 장악했던 옛 강대국, 축구의 전설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국가, 맛있는 타르트 빵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포르투갈은 서유럽에서 가장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국가이다. 경제 발전이 주변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뒤처져 있고 지금도 포르투갈의 많은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주변 유럽 국가들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은 바로 35년간 이 나라를 지배했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때문이다.
그는 군인 출신 독재자가 아니다.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재무장관을 지냈던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군인 출신들이 군대를 동원하여 국가를 찍어 누르던 것과 달리 그는 학자였음에도 독재를 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영국의 편에 섰다. 포르투갈의 위치는 대서양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최고의 지정학적 위치였기에 영국은 포르투갈이 중요했다. 당시 영국은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라자르의 자리를 보존해 주는 조건으로 뒤를 봐주며 많은 특혜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을 학살하거나 정적들을 탄압했던 독재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에 못지않은 악랄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바로 국가 발전을 일부러 늦추는 방식이었다. 자기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를 파탄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개가 필수적이다. 특히나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이 되는 국가들은, 엄청난 관광대국이거나 막대한 자원을 보유한 케이스가 아닌 이상은 반드시 이 프로세스를 거쳐가야만 한다.
살라자르는 이걸 정반대로 했다. 국가 발전을 시키지 않기 위해 딱 반대로 한 것이다. 나라 말아먹으려고 작정한 사람답게 그는 자기가 가진 경제학 지식을 총동원하여 국가경제를 파탄내기로 결심한다.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은 '3F 정책'이었다. 축구(Futebol), 포르투갈 전통 춤인 파두(Fado), 대표적인 종교인 가톨릭(Fatima)을 이용한 것이다. 포르투갈 전역에서는 이 세 개에 대해 아낌없이 예산이 부여되었다. 벤피카 같은 프로축구팀은 세계적인 구단으로 발돋움했고, 어디서나 파두를 배우고 추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가톨릭 사제들 역시 막대한 지원금을 받으며 정권과의 유착이 일어나게 되었다.
반면 교육 예산은 확 삭감했다. 특히 중등, 고등교육 기관은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확 줄여 버렸다. 연구 예산은 없애다시피 하고, 배워서 뭐 하냐는 이상한 사상이 퍼져나 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조차 가지 않는 아이들이 여기저기 넘쳐나게 되었다. 이 무렵 포르투갈의 문맹률은 무려 40%까지 치솟을 정도였다고 한다. 진정한 안빈낙도의 노자 사상이 실현되는 나라가 탄생한 것이다.
살라자르는 포르투갈 농업 국가로 남아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산업화는 인간을 황폐화하고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다른 서유럽 국가들은 산업화를 위해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때, 포르투갈만은 그런 것 상관없이 평화롭게 농사만 짓고 있었다. 소달구지가 농촌 마을을 지나가는 모습은 1970년대까지도 포르투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살라자르는 식민지에도 엄청나게 집착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 열강들은 하나둘씩 해외 식민지들을 독립시켜 나갔다. 전쟁으로 국가가 완전히 파탄이 난 마당에 도저히 식민지 유지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달랐다. 살라자르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절대 식민지 독립은 없다고 못 박았다. 포르투갈의 자존심을 걸어버린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식민지 독립운동가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즉각 무장 투쟁 단체들이 생겨났고 포르투갈과의 전면전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살라자르는 포르투갈을 '농자천하지대본'의 농업국가로 만들어버렸다. 만약에 아프리카 식민지들까지 떨어져 나가게 되면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가 몰락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래서 살라자르는 목숨 걸고 식민지들을 내놓지 않은 것이었다. 즉각 그는 대규모 부대를 아프리카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에 파견했다. 이 전쟁은 무려 15년을 끄는 기나긴 전쟁이 되고 말았다.
무려 세 지역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 포르투갈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의외로 잘 싸웠다. 앙골라와 모잠비크의 경우 공산권 국가인 소련과 쿠바가 도와준답시고 개입하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독립운동 단체 내부에서 민주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나누어지게 된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면서 알아서 무너지고 말았다. 발전소, 항만, 철도 등 사회 기반시설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며 주민들을 학살하는 바람에 현지 여론도 포르투갈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들은 인심을 잃고 자멸의 길을 택하고 만 것이다. 힘을 합쳐 포르투갈을 상대로 싸워도 될까 말까인데 자기들끼리 또 싸우게 된 것이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가뜩이나 낙후된 경제가 이 전쟁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리게 되었다. 손쓰기 어려운 수준까지 떨어져 버린 것이다. 전사자 수는 1만 명 가까이 되면서 왜 이 전쟁을 하는 것인지 국내 여론도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살라자르는 79세이던 1968년,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의자가 그만 부서지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이때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친 그는 실어증 증세를 보이며 사실상 정무 수행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굉장히 폐쇄적인 사람이었다. 평생 독신이었고 친구도 없었다. 집 밖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에 지방 순방 이런 것도 일절 없었다. 당연히 해외로 나가 국빈 방문하는 일도 없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던 시절도 아니니 세상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티브이조차 보지 않았다고 한다. 문명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랬던 덕에 의외로 부정부패는 없었다고 한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절대 퇴임하지 않았다. "나 아니면 이 나라는 안돼" 이 생각이 머릿속에 확고한 그였다. 참모들은 가짜 신문을 만들어 그에게 아침마다 주었다. 거기에는 모든 일이 다 잘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가짜 뉴스를 보고 그는 흡족해했다고 한다.
거짓된 환상 속에서 살아가던 그는 1970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무려 35년 간 포르투갈을 철권 통치했던 그가 무대 뒤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뒤를 이은 사람도 살라자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참다못한 군인들은 1974년, 마침내 정권을 뒤집어엎는 혁명을 일으켰다. 시민들은 이 군인들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군인들의 총구와 귓가에 카네이션을 꽃아 주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 혁명을 '카네이션 혁명'이라고 불렀다.
새롭게 들어선 군사정권은 살라자르의 모든 정책을 한 순간에 다 폐기하였다. 포르투갈이 보유한 해외 모든 식민지를 마카오 한 곳만 제외하고 모두 다 포기하였다. 자기들끼리 우익, 좌익 갈라서 싸우기 바빴던 앙골라, 모잠비크 등이 하루아침에 독립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이 나라들은 독립 이후에도 이념 때문에 수 십 년간 내전을 치르게 되었다)
우민화 정책이었던 3F 정책도 폐기되었고, 농업을 근본으로 하는 경제 정책도 포기하고 산업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지만 비로소 세계의 흐름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포르투갈은 여전히 유럽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국가이지만, 살라자르 때에 비하면 큰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포르투갈만이 지닌 매력은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살라자르가 펼쳤던 산업화 거부 정책이 역설적이게도 때 묻지 않은 중세 시대 느낌의 풍경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도 잘한 일이 하나쯤은 있나 보다.
리더 중에서도 팀원들이 교육받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사장 등 고위 임원 중에서 이런 성향 가진 사람들이 제법 있다.
직원들이 HR교육 신청하면 노조 만들려고 그러느냐고 의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점심시간에 개인 공부하는 것을 보면 일이 없어서 저렇게 한가한 거냐고 빈정거리기도 한다. 그들은 팀원들이 똑똑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이 알아봐야 이것저것 회사 일에 참견하고 피곤해진다고 생각한다. 공부 열심히 한 직원들 보면 결국 다 이직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교육에 상당히 부정적이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사장의 명령으로 하루아침에 교육팀이 공중분해된 적이 있었다. 경영이 어려워졌으니 이제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는 교육은 집어치우라는 것이었다. 나도 졸지에 인사팀으로 가게 되었다. 직원 교육에 소홀해진 결과, 그 회사는 채석장이 무너지며 여러 직원들이 사망하는 바람에 중대재해법 적용 1번 타자라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지금 시대는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이다. 과거처럼 시킨 일만 잘하는 순종적인 직원들이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는 어렵다. 교육도 안 시키고 회사 정보도 다 차단하는 우민화 정책으로는 회사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 포르투갈의 살라자르가 한 때 세계 무역을 독점하고, 브라질까지 식민지로 삼았던 초강대국을 한순간에 다 말아먹은 것처럼 그런 실수를 하지 말자.
팀원들이 배우고 성장하게 되면 스스로 일에 대한 만족을 느끼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이기에 외부의 창의적인 기법도 도입해 오게 되고 기존과는 다른 시도를 하면서 변화를 이끌기 때문이다. 이 점을 꼭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