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해 돌아보기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늘 회상하면서 살아간다. 그때 사귀었던 애인과 끝까지 잘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그때 서울에 무리해서라도 아파트를 샀었더라면, 당시에 합격했던 기업에 들어갔었더라면.. 늘 과거에 했던 선택을 두고 그 반대로 했었더라면 벌어졌을 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사실 과거의 선택은 이미 매몰비용이다. 지금 후회해 봐야 건질 수 없는 비용일 뿐인 것이다. 문제는 과거에 대한 내 기억은 왜곡되기 쉽다는 것이다. 당시 아무리 영끌을 해도 도저히 서울에 아파트 살 돈이 없었는데도 그때 당시 충분한 돈이 있었던 것으로 왜곡하고는 한다. 내 수능 점수로는 죽었다 깨도 그 대학교 합격 가능성이 전혀 없었는데도, 그 대학교를 지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역사상으로도 과거의 왜곡된 기억 때문에 늘 분란을 일으키던 사례가 있었다. 노예로 살아갈 때는 못 살겠다고 울부짖었으면서, 노예에서 해방되니 과거 노예 시절이 더 좋았다고 그때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 사건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들의 '출애굽' 사건이다.
애굽은 이집트를 한자식으로 표현한 단어이다. 출애굽은 Exodus,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집트에서 대이동을 했던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집트에서 400년 넘게 노예로 살아갔다. 벽돌 굽기, 신전, 궁전 건설하기 등 힘든 노역에 이들은 투입되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이집트는 주변 여러 민족들을 지배 하에 두고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부과하였다.
이집트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잔혹하게 다스렸다. 이스라엘 인구수가 너무 빠르게 늘어나게 되자 사내 아기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혹시 모를 반란 가능성을 미리부터 없애버리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꺾이지 않았다. 그들은 언젠가는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을 믿었기 때문이다. 구심점이 있었기에 그들은 쉽게 넘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기원전 1,500년 경, 지도자 모세의 인도 하에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이집트 땅을 탈출했다. 열 가지 재앙, 홍해바다가 갈라졌던 기적은 성경 속 출애굽기에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렇게 그들은 이집트를 탈출했다. 그들의 수는 무려 백만 명이 넘었다. 게다가 이집트 노예 생활을 청산하려는 수많은 다른 민족들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한 걸음씩 옛날 400년 전에 그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땅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땅까지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 지역은 사막에 황무지였다. 곡식은커녕 물도 없었다. 매일 걷는 통에 다리는 아파왔다. 처음에는 꿈과 희망에 부풀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조금씩 모세에게 불평하기 시작했다.
"먹을 음식도 다 떨어져 가고 도저히 더 못 걷겠어요"
"이집트에 우리가 묻힐 매장지가 없어서 여기서 죽게 하려고 데려왔소?"
날이 갈수록 이들의 원망과 불평은 늘어만 갔다. 급기야는 이런 불만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이집트에 있었을 때 우리가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
당시 이런 작물들은 이집트에서도 고급 작물들이었다. 그런데 무슨 노예가 이런 음식들을 먹었겠는가? 한두 번 먹어 봤을 수는 있지만 마치 매일같이 저 음식들을 먹었던 것처럼 저들의 기억은 왜곡되어 있던 것이다. 이들 중에는 심지어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서 노예생활을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집트에서 그토록 노예로 고생했으면서도 그 생활을 그리워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켰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이토록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을 미화했던 것일까? 기억이 왜곡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기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과거의 일을 녹화해서 그대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회상할 때, 뇌는 단편적인 정보를 불러와서 현재의 지식, 기대, 감정, 맥락에 맞춰 퍼즐을 맞추듯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빈틈을 채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추가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다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뇌는 중요한 정보나 감정만을 저장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덜 중요한 세부 사항들은 사라지고, 핵심적인 내용만 남게 된다. 기억을 회상할 때는 이 단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내용을 '재구성'하면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상태, 가치관에 맞춰 과거를 해석하고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부정적인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덜 고통스럽게 미화되거나, 반대로 현재의 우울한 감정이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까지 부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이집트에서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시간이 지나게 되자 그 고통스러웠던 노예 생활을 미화하게 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 상황이 고통스러우니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특정한 말을 하고, 혹은 강력한 암시를 받으면 존재하지 않았던 거짓 기억이 생겨날 수도 있다. '어렸을 때 쇼핑몰에서 길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경우, 참가자들 상당수는 그런 일을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대답하였다. 심지어 '에스컬레이터에서 엄마 손을 놓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스토리를 지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의 뇌는 불완전하다. 과거 경험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맞게 유연하게 해석하고 편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억의 왜곡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늘 왜곡되기 쉽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100퍼센트 다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현재 힘든 상황일 때, 자꾸 예전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과거에 머무르려고만 한다. 현실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힘든 상황 속에 있었음에도 마치 그게 아름다운 추억이었던 것처럼 왜곡되기도 한다.
사람은 앞을 보면서 나아가야 한다. 과거는 추억의 대상일 수는 있지만, 결코 미래를 대체할 수는 없다. 도로 과거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자기 계발서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 과거 방식대로 그냥 살아가면 되는데 뭐 하러 미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겠는가?
과거에만 머무르게 되면 현재의 삶이 힘들고 지겨운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개선하려는 노력에 소홀해지게 되고 자꾸 도피하려고만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심지어 과거 지옥 같던 노예생활로 돌아가려는 시도까지 하게 되기도 한다. 현실 인식 능력이 그 정도로 약해지는 것이다.
과거는 분명히 우리에게 추억을 주기도 하고, 거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에만 붙잡혀서 살고 있으면 자칫 현실도피로 이어지기 쉽다. 그렇다면 과거의 왜곡된 기억에 대처하는 현명한 자세는 과연 무엇일까?
잘못되었거나 기억하기 싫은 과거는 과감하게 끊어내야 한다. 이걸 그냥 내버려 두면 두고두고 끊지 못하게 되고 내 발목을 잡게 된다.
1995년 삼성 이건희 회장은 자사 휴대폰인 애니콜이 잦은 고장과 통신 품질 불량으로 소비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는 보고를 받게 되었다. 그 즉시 구미 사업장으로 내려간 이건희 회장은 전체 임직원들을 모두 운동장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구미 사업장에서 생산하고 보관 중인 애니콜 15만 대를 한가운데에 쌓아두고 화형 시켜버렸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였다. 과거와의 단절을 선포한 것이었다.
이 퍼포먼스 이후 애니콜의 불량률은 12퍼센트에서 불과 2퍼센트로 확 낮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삼성폰 신화는 그때 과거 관행과의 과감한 작별 덕분에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를 옭아매는 과거가 있으면 화형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예 내 눈앞에서 제거해 버리자. 그런 결심을 종이에 적고 찢어버리거나 태워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과거 조폭 세계에 발을 담갔던 사람이 있다고 하자. 교도소를 몇 번 들락거린 끝에 새사람이 되기로 하고 어둠의 세상과 인연을 끊고 깨끗이 손을 씻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어디 그쪽 세계가 그리 호락호락한가? 조직에 대한 배신은 곧 죽음이라며 과거 동료 조직원들이 매일같이 찾아와 그를 괴롭힌다. 나가려면 야쿠자 마냥 손가락을 잘라 바치라는 등 험악한 소리를 일삼는다.
이런 사람들은 과감하게 내쳐야 한다. 아예 이름도 바꾸고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새 출발을 하던지 하면서 인간관계를 싹 다 리셋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들었는데 과거의 망령을 되살아나게 하는 사람들은 과감하게 떠나보내야 한다. 나에게 걸림돌이 될 뿐이다.
현재와 미래에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목표나 계획을 세우고, 작은 것부터 실천에 옮기자. 카지노에 빠져 자기 집이며 차며 다 날려먹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정신이 번뜩 들면서 이 세계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단도박 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담배 연기 자욱한 카지노 안에서 바카라에 미쳐있는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불현듯이 떠오른다. 돈을 딸 때 그 쾌감은 어마무시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카지노를 상쇄할 수 있는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취미를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 자전거 전국일주가 될 수도 있고, 바다낚시일 수도 있다. 골프가 될 수도 있다. 다시는 카지노에서 칩이나 주물럭거리고 싶지 않다면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보자.
과거에 대한 생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를 때, 스스로에게 '생각 멈춤' 신호를 주다. 예를 들어, 손뼉을 치거나, "그만!"이라고 작게 외치며 의식적으로 다른 활동으로 주의를 돌리는 것이다. 방금 전 사례에서 갑자기 바카라가 생각났다면 아파트 계단을 딱 10개 층만 쉬지 말고 전속력으로 뛰어 올라가거나 찬물에 세수를 하자. 푸시업을 20번 미친 듯이 하는 것도 좋다.
몸이 힘들어지면 사람은 다른 생각에 빠질 겨를이 없다. 그렇게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서 과거에 대한 생각에 빠질 때 벗어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힘들게 이집트에서 탈출해 놓고도 툭하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던 때가 차라리 좋았네 그 타령만 했다. 우리로 치자면 차라리 일본 지배하에서 징용, 위안부 끌려가던 그 시절이 살기 좋았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벌로 하나님의 벌을 받았고, 출애굽 한 지 4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옛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못된 애인에게 시달릴대로 시달렸다가 간신히 헤어졌음에도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애인이 그래도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상한 직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퇴사한 뒤 그래도 그 회사가 근로조건은 좋았지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과거의 기억이 왜곡된 전형적인 사례이다.
현재가 어렵고 힘들다고 과거의 기억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극복할 방법을 찾아 뚫고 나가야지,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사람은 전진 아니면 후진만 있을 뿐이다. 정체는 없다. 나는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실은 후진하고 있는 것이다. 앞을 보고 전진하자.
"뒤돌아 보지 마. 후회가 있을 뿐. 반짝이는 눈동자로 힘차게 달려가자"
(피구왕 통키 가사)